찬장에 처박힌 참치캔에 얽힌 '끔찍한 진실'

[서평] 환경저널리스트 찰스 클로버의 <텅 빈 바다>

등록 2013.10.24 09:59수정 2013.10.24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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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바다> 겉그림 ⓒ 펜타그램

주방에 가보자. 그리고 찬장에 처박혀 있는 참치캔을 살펴보자. 당신이 읽어볼 대목은 '재료'. 아마 '다랑어'라고 쓰여 있을 게다. 다른 참치캔을 보러 마트에 가 한참을 살펴봤다. 종류는 어찌나 많던지. 마트에서 어떤 사람은 이런 나를 되레 유심히 쳐다보기도 했다.

나는 이게 왜 궁금했을까. 기꺼이 시간을 내 타인의 눈총까지 받아가면서 말이다. 그러나 장담한다. 영국의 환경 저널리스트 찰스 클로버의 <텅 빈 바다>를 읽은 이라면 아마 나처럼 행동했을 게다.


다랑어는 어류 진화의 정점에 서 있는 종이다. 가속도는 고급 스포츠카를 능가하고, 100만 개의 알을 낳으며, 수명은 20년이 넘는다. 스펙(?)만 보면 어지간해서는 멸종하지 않을 어종이다. 오죽하면 마치 공장에서 찍어내는 생산품처럼 보일까. 저렴한 가격에 높다랗게 쌓여있는 캔을 보면 더 그렇다. 캔이 아니라 다랑어란 '부속품'도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어마어마한 수요가 슬며시 그들의 생명력을 압도하고 있다. 1980년대 밀렵 광풍을 일으켰던 상아와 코뿔소 뿔 수요가 아프리카 코끼리와 코뿔소를 멸종 위기로 몰아넣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참치캔이 다랑어를 멸종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체감할 때는 이미 늦었다. 이미 대서양 동부의 참다랑어는 판다와 같이 멸종 위기종에 등록됐다. 또 대서양 서부의 다랑어종은 검은코뿔소와 같은 멸종위기 위급 등급으로 판정됐다. 더 이상 어떤 증거가 필요할까.

참치캔 하나로 알 수 있는 '생선 수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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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캔'이 다랑어를 멸종 위기로 몰아넣는다. ⓒ sxc

더군다나 참치캔은 다랑어라는 한정된 어종에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미국 참치캔에는 다소 의아한 딱지가 하나가 붙어 있다고 한다. 돌고래 친화적으로 생산됐다는 설명과 함께 '돌고래 안전'이라고 적힌 이 스티커는 얼핏 보면 꽤 윤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게 참 무서운 작용을 한다. 인간과 친근한 돌고래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다른 생명체에 대한 무분별한 살상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된다. 왜 '거북이 친화적 참치'나 '새우 친화적 참치'는 없을까. 이는 다랑어 잡이가 거북이나 새우에게는 전혀 친화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텅 빈 바다>의 분석에 따르면, 이 딱지가 붙어서 돌고래는 덜 죽을지 몰라도 다른 생물 20여종이 희생된다고 한다. 그 전까지는 다랑어 무리가 보통 돌고래 아래에서 헤엄쳐 다닌다는 사실을 이용해 포획을 했다. 돌고래가 일종의 어군탐지기 역할을 한 것. 하지만 포획 과정에서 돌고래도 죽어 미국의 환경단체들은 업체들에게 돌고래가 있는 어역에서 포획을 하지 못하게끔 로비를 했다고 한다.

이후 업체들은 '돌고래 친화적'이기 위해 인위적인 집어장치를 바다에 등장시켰다. 그러다 보니 집어장치를 향해 몰려드는 다른 어종들이 '돌고래 대신' 희생됐다. 돌고래의 재앙을 막으려다 생태계 전체의 재앙이 발생한 셈이다. <텅 빈 바다>를 쓴 찰스 클로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낚싯줄에 잡힌 것이든 어망에 잡힌 것이든, 그 다랑어 요리에는 최소한 세 가지 큰 문제가 있다. 다랑어잡이 선단의 규모를 제한하기 위한 조치가 없다시피한 상황, 어장 관리를 시도조차 하지 않는 일부 당국의 문제, 멸종위기종 혼획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이가 없는 상황. 통조림 속에 예상치 못한 고기가 들어가는 사태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해당 통조림업체 중에 어자원 보존 대책을 마련하는 곳은 소수이며, 혼획 현황에 대해서는 비밀주의로 일관하는 기업도 일부 있다. '뭐가 잘못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 어찌 우리 탓인가' 하는 태도가 이들 기업의 정책이 아닌가 싶다."(본문 254쪽)

멸종위기 등급으로 분류된 눈다랑어의 치어(稚魚)가 당신이 먹는 '참치캔'에 황다랑어·가다랑어와 함께 섞여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문장의 해석만 놓고 본다면, 어떤 물고기가 섞여 있어도 먹는 우리는 절대로 모른다.

'아비규환'에서 건져 올려진 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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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속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처참한 아비규환의 현장을 목격할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 sxc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 것이다. 미안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바다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쉽게 생각하자. 저자는 멋진 비유를 내놨다. 간추리자면 이런 내용이다.

트롤어법(trawling)을 아시나요?
배를 이용하여 자루형 그물이나 날개형 그물 등의 어구를 수평 방향으로 끌어 바다에서 목표 어종을 잡는 어법. 바다 밑바닥 가까이 사는 저서어종을 대상으로 하는 저층트롤, 중층어종을 대상으로 하는 중층트롤로 나뉜다.

그물을 바다 밑바닥으로 끌고 다닌다는 점에서는 저인망 어법과 유사하지만, 그물 입구가 오므라들어 조업에 지장이 생기는 저인망의 단점을  그물 전개 장치를 달아 발전시킨 것이 트롤망이다. 혹자는 '지구상에서 가장 파괴적인 대량살상법'이라 표현한다.(<텅 빈 바다> 서문에서 인용)
'화면으로 많이 본 아마존 밀림을 떠올려보자. 이제 일정 지역의 경계에서 촘촘한 그물 하나가 쳐지는 모습을 상상하자. 그 그물은 광대한 지역을 감싸고 있다. 이제 완벽한 포위망이 형성돼 매우 작은 곤충 외에는 그 지역을 빠져나갈 수가 없다.

그리고 그물은 중심부를 향해 죄어온다. 동물은 말할 것도 없고 나무와 풀도 뿌리째 뽑힌다. 지역에 있던 모든 생명체는 그 그물 안에 담긴다. 압사당하는 동물도 있고, 으스러지는 나무도 있어,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된다. 새끼든, 임신 중인 동물이든, 굳이 잡지 않아도 될 동물이든, 멸종 위기종이든 그물은 이를 분별할 능력이 없다. 그렇게 죌 수 있을 만큼 죄어진 그물은 공중으로 들려져 사람들에게 향한다.'

사람들에게 생명체를 죄의식 없이(죄의식이란 단어가 너무 극단적이라면 감정의 동요 정도로 해두자) 바라보도록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될 수 있으면 자신과 상관이 없는 객체로 만드는 것이다. 생선이 그렇다. 바닷속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처참한 아비규환의 현장을 목격할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반려 돼지를 기르는 이가 돼지고기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른 이의 그것과 같을 수는 없다. 조금 더 확대시키면, 도살 장면이나 사육 환경을 목격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고기를 바라보는 생각 역시 같을 수 없다.

먹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과한 게 문제다

그렇다고 책 <텅 빈 바다>가 '생선을 먹지 말자'거나, '수산업을 금지하자'는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단지 '먹지도 않을 자원을 왜 낭비하느냐'는 문제를 제기할 뿐이다. 인류가 먹을 양은 지금 잡아들이는 생선의 3%면 충분하다고 한다. 또한 거기서 파생되는, 종의 위협에 비해 관대하기 그지없는 보호종의 선정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지금 바다에서는 인간에게 필요한 양의 40배에 달하는 어류가 포획되고 있다. 1년에 바다에 던져지는 그물의 길이는 지구를 550번 감을 수 있는 길이다. 수산업에서 사용하는 가장 큰 그물은 보잉747기 13대를 가둘 수 있는 크기다. 어류는 단 1%만이 보호종으로 지정돼 있다. 인류가 과다포획으로 자연에 미치는 영향은 오염으로 인한 피해보다 크다고 한다. 가히 충격적이다.

바다는 수산 기업의 전유물이 아니다. 시민의 것이자, 나아가 인류, 후손들, 자연 만물과의 공유물이다. 난 우리 후손들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바다를 똑같이 볼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인류가 영원히 번영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최소한 생선도 타의에 의해 절멸의 길로 다다르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이 책은 슬프게도 뭔가 변화가 있지 않으면 이 소박한 바람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덧붙이는 글 <텅 빈 바다>, 찰스 클로버 지음, 이민아 옮김, 펜타그램 펴냄, 2013.09, 2만원

텅 빈 바다 - 남획으로 파괴된 해양생태계와 생선의 종말

찰스 클로버 지음, 이민아 옮김,
펜타그램, 2013


#펜타그램 #찰스 클로버 #텅 빈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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