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차 성 뒷편의 밭길
Dustin Burnett
새로운 도시에 도착한 여행자들에겐 모든 게 낯설다. 그 도시의 문화도 모르고 역사도 모르고, 특히 물가를 모른다. 가이드북만 보물처럼 손에 꼭 쥔 채, 무엇을 할지, 먹을지, 살지, 그리고 어디에서 잘지,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을 믿어도 될지에 대한 모든 결정을 가이드북 어딘가에 적혀있을 몇 가지 문장을 보고 판단한다.
힘들게 떠나온 여행을 효과적이고 성공적으로 마치려면 충고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이드북을 지나치게 신봉하다 보면 내가 여행을 하고 있는 건지, 가이드북에 나온 미션을 수행하러 다니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어지는 묘한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나는 이들을 해방시켜 주고 싶었다.
"에이. 셋이서 400루피면 괜찮죠. 저희는 둘인데 300루피 냈어요. 내일 또 카주라호로 가신다면서 예상한 것보다 조금 더 내더라도 빨리 짐 풀고 쉬는 게 좋지 않겠어요?"세 친구는 내 말을 듣더니 우물쭈물 망설이는 눈치였다. 더스틴과 나는 가이드북의 말을 곧이곧대로 잘 듣는 착한 어린아이 단계에서 벗어나, 보라는 거 안 보고 괜히 딴 길로 새거나 먹으라는 거 안 먹고 혀가 이끄는 대로 먹어버리는 은근한 반항을 시작한 청소년기에 접어든 터였다.
나는 가이드북이 하는 말 따위 집어치우고 그냥 여기에 짐을 풀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그녀들을 살살 꾀었다. 야밤에 갈 곳도 없던 세 친구는 가격을 350루피로 합의 보고 우리가 있는 호텔에 짐을 풀었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모두 다르듯 여행자마다 여행하는 방식도 다르다. 빨리 가고 많이 보는 것이 무조건 더 좋은 여행이 아니듯, 느리고 천천히 가는 것만이 정답도 아닐 것이다.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여행 방식을 찾는 것이, 삶의 방식을 공부하기 위해 길을 나선 여행자의 오랜 숙제일 거다.
세 친구는 다음 날이 되자 자취를 감췄다. 아마도 카주라호로 떠났겠지. 그리고 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행복하고 아름다운, 때로는 슬프고 성질나는 그녀들만의 여행을 계속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