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차의 제항기르 마할
Dustin Burnett
제항기르 마할 옆에는 왕비의 궁전인 쉬시 마할(Sheesh Mahal)이 있다. 성 일부를 개조해 호텔과 식당으로 만들어 놓은 곳이다. 뜨겁게 쬐는 인도의 햇볕을 한 달 동안 등에 달고 다녔다. 그 햇볕을 시원하게 쓸어줄 시원한 맥주 생각이 간절하다.
"곧 발렌타인(밸런타인) 데이니까. 그 기념으로 오늘 여기서 저녁 먹자. 맥주도 한잔 하고."맥주! 간만의 사치를 위해 아직 오지도 않은 발렌타인 데이라는 변명을 구색해낸 우리는, 식당을 예약하고 남은 두 시간을 보내기 위해 다시 동네로 나갔다. 근 한 달 만에 마시는 맥주 생각에 신이 난다. 누구라도 용서하고,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배드민턴 칠래요? 돈은 안 줘도 돼요좁다란 골목에 들어서자 배드민턴을 치고 있는 두 명의 어린 여자아이가 보였다. 아이들은 골목을 들어선 이상한 아시아 여자와 백인 남자를 발견하고는 잡고 있던 배드민턴 채를 당장에 내던지고 우리에게 달려왔다.
"배드민턴 칠래요?"의심부터 들었다. 바라나시에서 내 손을 잡아주고 초콜릿을 요구한 꼬마를 만난 이후로, 아이들을 순수하게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가 망설이자 언니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내 팔을 붙잡고 칭얼댔다.
"노 머니, 저스트 플레이! 노 머니!(돈 안 줘도 돼요, 그냥 배드민턴만 쳐요)"내 의도를 눈치챘는지 여자아이는 "노 머니"라고 반복해 외친다.
"그냥 가자. 분명 바라는 게 있을 거야."더스틴이 속삭였다. 하지만 나를 올려다보는 여자아이의 간절한 눈빛을 보고 그냥 갈 수는 없었다. 정말 배드민턴을 같이 치고 싶을 뿐인 것 같았다.
"그래 치자."한참을 망설이다 내가 승낙하자 두 여자아이는 신이 나서 배드민턴 채를 다시 잡아들었다. 두 아이는 서로 내 상대가 돼서 플레이를 하겠다고 아웅다웅 다투었다. 이내 언니로 보이는 아이가 승리하여 나와 배드민턴을 치는 영광을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