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제사상 받는 나무... 늙었지만, 아름답다

[여행] 서울 신림동 천연기념물 굴참나무

등록 2013.11.20 11:47수정 2013.11.20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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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개발과 이산의 상징 도시 서울에서 마주친 반가운 노거수 나무. ⓒ 김종성


끊임없는 개발과 들고나는 사람들이 사는 도시의 틈바구니 속에서 나무가 긴 역사를 간직하고 오래 살아남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도시에 사는 대부분의 노거수(老巨樹)들이 보금자리를 빼앗기고 밀려나는 건,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가을철이면 고약한 열매 냄새를 풍긴다는 이유로 수십 그루의 가로수 은행나무가 베어지기도 한다. 서울 신림동에는 그런 서글픈 도시 나무의 운명을 짊어진 채 수백 년 넘게 생명을 유지하며 역사를 지켜온 천연기념물 (제 271호) 나무가 있다.


나무의 종류는 예부터 사람들 가까이에서 친근하게 지내온 굴참나무. 굴참나무는 참나무 과(科)의 나무로 크고 실한 도토리를 낳아 시골 어른들은 주로 도토리나무라고 더 많이 부른다. 만져보면 푹신하고 굵은 세로 주름이 골을 이룬 개성적인 나무라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경기도 지방에서는 '골'을 '굴'이라 했는데, 나무 이름은 껍질에 '굴이 지는 참나무'에서 굴참나무가 된 것이라고 한다. 방수와 내후성(耐候性)이 좋아 고려시대 이전부터 강원도 지역의 옛 토속 가옥인 굴피집 지붕에 사용되어 왔다.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등 참나무 과의 다른 형제들과 함께 사람들에게 친근하고 쓰임이 많은 나무이기도 하다.

참나무란 나무는 없다
참나무라는 이름의 나무는 없다. 참나무는 굴참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상수리나무 등의 나무를 한 묶음으로 부르는 과(科)이름이다.

우리 주변에 다른 어떤 나무보다 많이 자라고 있으며, 열매인 도토리는 음식으로 참나무로 구운 숯 등은 살림살이에 요긴하게 쓰였던 참나무 과의 나무들은 옛 부터 사람과 친근한 대표적인 나무다.
한국의 마을 풍경에서 오래된 노거수는 전설이요 신화였다. 마을 어귀에 어김없이 자리 잡은 당산나무는 때로 귀목(貴木)으로, 때론 마을의 섬김을 받는 신목(神木)으로 매년 당산제나 도당제를 지내며 주민들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놀랍게도 서울 신림동에그런 나무가 있는데, 고려시대 강감찬 장군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천연기념물 굴참나무로, 아직도 매년 제사상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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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한쪽 주차장 자리로 밀려난 나무가 안쓰럽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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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로 진 주름이 무척 개성적이라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굴참나무. ⓒ 김종성


신림동에서는 예부터 마을주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걷어 신성한 나무로 여겨지는 굴참나무에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내왔다고 한다. 그러나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20여 년간 당산제 맥이 끊겼다가 굴참나무 옆에 있는 작은 절 은천사(당시 화승사)에서 동네 어르신들을 모시고 18년 전부터 당산제 맥을 잇고 있다.


지금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지만, 예전에는 난초가 많이 있는 골짜기라 해서 '난곡(蘭谷)'이라는 옛 이름을 가진 신림동 지역은 고려시대 때 강감찬 장군이 태어나 자라고 천하를 호령하던 곳이기도 하다. 이 신림동 언덕배기 위에는 도시 개발로 들어선 아파트들이 빼곡하다. 길게 이어지는 아파트 단지 끝 부분까지 걸어 오르면 나무가 나타난다. 언덕 위쪽으론 고층 아파트가 솟아있고 주차장과 쓰레기 분리 수거대가 있는 단지 앞마당 한쪽에 움푹 파인 공간에 나무가 퐁당 빠지듯 서있다.

기묘한 나무 위치가 궁금해 경비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가파른 언덕 비탈 위에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려다 보니 나무의 보금자리가 이렇게 됐다고 한다. 도시개발로 금싸라기가 된 땅에 나무가 넓은 자리를 차지하는 건 언감생심이었을 거다. 낮은 지대에 있다 보니 옆 주차장에서 자동차가 배출하는 매연을 고스란히 들여 마셔야 한다. 그런 모습을 보니 아파도 말 못하는 짐승을 보듯 마음이 짠하다. 사정이야 있었겠지만 천연기념물 나무 옆에 이렇게 주차장을 놓아야 했나 원망과 아쉬움이 남는다.


이 굴참나무는 강감찬 장군이 이 마을을 지나다 우물가에서 물 한 잔 얻어 마신 뒤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땅에 꽂은 게 자란 것이라고 한다. 그런 전설과 함께 강감찬 장군이 살았던 시대를 생각하여, 나무의 나이는 1000살쯤이라고 천연기념물 안내 게시판에 적어놨다. '강감찬 나무'라는 별명은 그래서 붙은 것이다. 굴참나무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동네 어르신들을 모시고 매년 당산제를 지내는 작은 절의 스님과 마주쳤다.

스님에 의하면 원래 나무는 고사해 죽고 이 나무는 후계목으로 약 250살 정도 되었단다. (현대과학으로 100살이 넘은 노거수의 나이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은 딱히 없다고 한다) 어쨌거나 수백 년을 살아온 노거수는 이렇게 전설을 품고 있어 재미있다.

지팡이가 자라나 나무가 된 삽목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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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은 쇠퇴가 아니라 완성임을 보여주는 노거수 나무의 미덕.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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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살 나이를 먹었지만 아직도 가을이면 토실토실한 도토리를 맺는다. ⓒ 김종성


공부하는 유생들을 위해 수나무로 성전환을 한 은행나무, 삼월 삼짇날이면 막걸리 스물네 말에 취하는 나무, 스님의 지팡이가 자라나 나무가 된 이야기, 애절한 사랑을 나누던 연인의 넋이 나무로 환생했다는 사연 등··· 나무를 아끼고 잘 보호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심정과 지혜가 담긴 이야기들이 흥미롭다.

그 중에서도 지팡이가 자라나 큰 나무가 됐다는 전설을 '삽목(꽂을 삽揷, 나무 목木)설화'라고 한다. 이름 모를 스님이 길을 가다가 우물가에서 물을 마시고 꽂아둔 지팡이가 나무로 자라났다는 이야기가 대표 전설로 경북 청도 운문사의 처진 소나무, 강원도 원주 문막 반계리의 은행나무 등이 있다. 산신령이 꿈결에 나타나 절터로 점지해 준 자리를 표시하려고 꽂아둔 지팡이가 자라났다는 충남 태안 흥주사의 은행나무, 신라의 대학자 최치원이 꽂은 지팡이에서 자라난 경남 하동 범왕리의 푸조나무 등도 삽목설화를 가진 나무다.

비록 쳐진 가지에 지지대를 하고 있지만 설화를 지닌 노거수답게 장대하고 위엄이 있다. 키 17미터, 가슴높이 둘레 2.5미터의 큰 나무다. 줄기는 위로 곧게 솟아오르면서 여러 가지로 나누어져 멋들어진 수형(樹形)을 갖추었다. 하늘을 향해 기묘하게 뻗친 가지들과 굵고 깊게 진 세로 주름이 무척 인상적이고 원숙한 아름다움까지 느껴진다. 신림동 난곡의 언덕 꼭대기까지 올라온 수고를 금세 잊게 한다.

늙음을 슬퍼하거나 추하게 생각하고 심지어 혐오하기까지 하는 시대에, 늙어갈수록 빛을 발하는 나무의 아름다움은 그래서 부럽고 나무를 더 좋아하게 된다. 세상에 나이가 들고 늙어가면서 점점 더 아름다워지는 것은 나무 밖에 없는 것 같다.
덧붙이는 글 ㅇ 나무 위치 ; 서울시 관악구 신림13동 721-2 (난곡 초등학교 옆, 건영2차 아파트 단지 내)
ㅇ 지난 11월 3일에 다녀 왔습니다.
ㅇ 서울시 온라인 뉴스에도 송고하였습니다.
#굴참나무 #천연기념물 나무 #신림동 #참나무 #노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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