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남자들, 왜 결혼날짜 잡은 여자에게 고백하나

[당신의 결혼, 안녕하십니까①] 6년간의 연애 그리고 결혼

등록 2013.11.14 11:36수정 2013.11.14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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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했다. 그때 그 고백의 순간. ⓒ sxc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던 날, 차가운 바람이 살갗을 여미게 했던 그 날. 겨울이 임박했다 알리는 찬 바람이 부는 것과 상관없이 서로의 온기만으로도 충분히 뜨거웠던 그때….


"오빠, 약속해. 평생 나랑 헤어지지 않겠다고."
"……"
"왜 말이 없어? 빨리 나랑 약속해."
"… 눈 감아봐."

그 사람의 말이 끝나는 순간 그 사람의 입술과 내 입술이 포개어질 것이라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척 미세한 떨림과 함께 수줍은 듯 눈을 감았다.

여느 영화에서처럼 그 사람의 차 안에서 그 사람의 입술이 처음으로 내 입술에 포개어졌다. 종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부드럽고 촉촉했던 그 감촉은 단언컨대 영화에서 보는 것 보다 더 달콤했다.

"부억~!"
"아오, 이게 무슨 소리야! 혹시 방귀 소리냐?"
"… 나 아니고 당신 딸이거든?"
"장난하냐? 아, 진짜…. 정떨어진다."

결혼날짜 잡았는데... 마음은 싱숭생숭


그렇다. 우리는 6년의 연애를 끝으로 연애 7년 차에 결혼식을 올렸다. 헤어짐이 두려웠던 연애초짜 소녀의 투정 섞인 6년 전 고백이 시간이 흐르고 돌아보니 철 없는 프러포즈였더라.

나는 그와 언젠가 헤어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없는 삶을 상상하는 것만 으로도 고통을 느꼈다. 그래서 연애 당시 나는 그가 이별을 고할 때도 맨발로 뛰어나가 그를 붙잡고 매달리기도 했으며, '너에게 질려서 당분간 연애가 하고 싶지 않다'는 모진 말도 꾸역꾸역 삼키며 그를 붙잡았다.

그리하여 나는 26세에 그의 아내가 됐다. '사랑하니까'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의 관계, 결혼이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결혼 날짜가 다가오면서 아주 쉽게 흔들렸다. 그 생각은 끝내 흔적도 없이 무너져 내렸다.

왜 한국 남성들은 결혼날짜를 받은 여성에게 뒤늦은 고백을 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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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갓. 내가 이렇게 매력적인 여자였다니... ⓒ 김지현


"나 예전에 누나 많이 좋아했었는데…, 이렇게 시집가네…?"
"나 당신이 좋아지려고 하는데 결혼한다니…. 우린 왜 이렇게 늦게 만난 걸까?"
"나 너랑 연애하고 싶었는데… 결국 결혼하는구나? 이제 기회가 없군."

오마이갓! 나 이렇게 매력적인 여자였던 거야? 이런 뒤늦은 말들을 듣자 나는 나의 존재 가치를 깨닫게 됐다. 지금 결혼을 한다는 게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오빠, 난 오빠랑 결혼하기 아까운 여자인거 같아"에서부터 시작해 그 사람의 내성적인 성향, 꾸미지 않은 수수함, 사회적 능력을 운운하며 그와 나의 결혼을 호시탐탐 깨트릴 기회를 엿보기 시작했다.

벼랑 끝에서 한 결혼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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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웠다 할 지라도 언젠가 식어버고 마는 모든 순간들. ⓒ 이지혜


결국 나는 그가 신발 신고 있는 내 엉덩이를 발로 살짝 걷어찼다는 이유로 그를 결혼 이후에도 날 두들겨 팰(?) 예비 가정폭력 가해자로 몰아 파혼을 요구했다.

"우리 결혼 여기서 관두자. 난 우리 부모님께 이야기 못해. 오빠가 잘못 했으니까 오빠가 말씀드려. 내가 헤어지자고 했다고는 이야기하지마. 오빠가 잘못해서 그런거라고 해."
"… 진심이야? 그러지마,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어…?"

우리는 결혼을 하느냐 마느냐 매일 전투적으로 싸우며 청첩장도 대충 찍어버렸고 대충찍은 청첩장을 줄 사람에게는 못 주고 주지 말아야 할 사람에겐 뜬금없이 스팸메일처럼 보냈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다. 그렇게 두어 달을 벼랑 끝에 서 있으면서도, 일생에 단 한 번뿐일지도 모르는 결혼을 준비했다. 그렇게 우리는 쉽지 않게, 결혼 준비의 쓴맛을 제대로 경험하면서 식을 올렸다.

여자로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아내로 한 평생 이 사람과 살 수 있을까? 정말 이 사람의 내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주민등록등본에 그 사람의 이름과 내 이름 석 자가 나란히 등재돼 있다. 하지만, 이런 당연한 것에도 물음표가 붙기 시작한다.

(*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결혼,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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