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타 듯 대출하라는 광고... 이제 퇴출합시다

[제윤경의 희망살림] 유해성 큰 대부업체 광고... 금지 방안 마련해야

등록 2013.11.22 09:55수정 2013.11.2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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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정의연대, 녹색소비자연대 7개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21일 서울 종로 엠스퀘어에서 '금융소비자네트워크 발족식'을 갖고 대출.대부업 광고 반대 등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15초의 마술이라 불리는 TV광고는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의 등장에도 흔들림 없는 광고계 강자다. 최근 모 기업에서 진행한 온라인 광고 현황이란 주제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 소비자와 마케터들은 여전히 광고 및 마케팅에 가장 좋은 매체로 TV, 신문 등 전통 미디어를 선택했다.

소비자들의 절반 이상인 53%가 TV를 통해 광고 보는 걸 선호했다. TV 화면 속의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는 우리 일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광고의 영향력은 때로 너무 효과적이어서 불편하고,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 마치 우리 귀에 대고 "네가 가진 것들은 모두 후져"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혹은 너무 기발해서 당혹스러울 때도 있다.

남자가 "나 오늘 (대부업체) OOOOO에서 대출 받았어"라고 말하자 여자친구가 "거기 이자 비싸지 않나?"라고 말한다. 그러자 남자친구는 "버스랑 지하철만 탈 수 있나. 바쁠 땐 택시도 타는 거지"라고 말한다. 고금리 대부업 대출 광고에 다정한 연인이 등장할 줄이야. 누가 쉽게 상상이나 했을까?

돈이 필요하면 OO머니?

물론 상당히 비현실적인 광고다. 멀쩡한 남자라면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리면서 여자친구에게 당당하기 어렵다. 돈이 없어 고금리 대출을 일으키는 게 창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비현실적인 광고가 현실로 바뀌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미 '15초의 마술'은 신용카드 광고를 통해 우리 일상에서 카드 외상이 현금 쓰는 것보다 멋있게 보이게 만든 탁월한 실적을 보여줬으니까.

중학생들과 사회적 기업에 관한 경제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학생들에게 "기업 설립에 필요한 돈 어떻게 마련할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몇몇 아이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OO머니" "1588-OOOO"라고 답했다. 광고 속 대부업체나 제2금융권 회사의 로고송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드라마, 영화, 스포츠 경기 한 편을 보는데도 대부업, 카드론 같은 대출 광고를 수차례 접하는 시대다. 광고의 질은 높지 않다. 그러나 저급하다고 효과가 없는 건 아니다. 

박현수 단국대 언론영상학부 교수가 작성한 케이블TV 광고 시청률과 노출효과 분석(2003년 10월 일주일간 분석)이라는 자료에 따르면, 케이블TV의 광고 효과는 공중파보다 효율적이다. 비록 오래된 분석 자료지만 지금도 그 분석 결과는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연구 자료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광고 시청률이다.


케이블TV에서 광고 시청률이 가장 높은 방송은 어린이 프로그램인 투니버스였다. 심지어 투니버스의 경우, 광고 시청률이 프로그램 시청률을 상회하기도 한단다. 이는 아이들이 광고와 프로그램을 정확히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광고 구분 여부만이 문제가 아니다.

아이를 키워본 부모라면 유독 어린 아이일수록 광고에 잘 몰입한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아이들은 경우에 따라 프로그램보다 광고를 더 좋아하기도 한다. 그만큼 광고가 말초신경을 자극하고 순간 몰입을 끌어내도록 공들여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어린이 프로그램에도 대출과 돈다발이 등장하는 광고가 예외없이 방영되었다. 최근에야 어린이 프로그램들끼리 자체 협약으로 대출 광고를 방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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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행인들이 서울역 인근의 한 대부업체 앞을 지나는 모습. ⓒ 연합뉴스


또한 부모가 시청하는 영화, 드라마 채널의 광고는, 광고 몰입이 높은 아이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광고의 품질은 저급할지 모르나 이미 아이들에게는 파블로프의 개 실험에서와 같은 조건반사가 형성됐을 수도 있다. 돈이 필요하다는 생각만으로도 대출을 떠올리는 조건반사 말이다. 이 얼마나 지독한가. 대한민국은 현재 광고를 통해 아이들에게 돈이 필요하면 고금리 대출을 일으키라고 학습시키고 있다.

행동경제학자들의 실험에 따르면, 피실험자에게 돈을 떠올리는 작업을 시키면 그는 더욱 이기적이고 개별적이며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돈 생각만 하게 만들어도 사람은 그렇지 않을 때에 비해 이기적이고 이해타산적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돈은 그 자체로 대단히 자극적인 도구다. TV 화면에 돈다발이 등장하는 게 위험한 이유다.

당장의 생계비 걱정에 하루하루 쫓기는 입장이라면, 빚에 쫓겨 추심에 시달리고 있다면, 최선을 다해 살아도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 한숨 짓고 있다면, 화면 속 돈 뭉치에 흥분하는 것은 당연하다.

돈뭉치가 날아다니는 광고, 규제가 필요하다

토스트 기계에서 돈다발이 튀어나오고, 전화로 1588-OOOO만 찍었을 뿐인데 천장에서 돈뭉치가 떨어진다. 현관문 초인종을 눌렀더니 현금인출기처럼 문이 열리고 돈 다발이 나온다. 이런 자극적인 광고는 사실상 광고 시청자들을 흥분시킬 수밖에 없다. 어린이뿐 아니라 당장 돈이 부족해 한숨 짓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돈다발이 등장하는 대출광고는 '필요하면 빌려 쓸 수도 있지'라고 속삭인다. 이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속삭임은 어느새 사람들에게 빚에 대한 책임감과 경계심을 무너뜨리는, 그야말로 무의식에 주입하는 무서운 학습이다.

대부업계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위해 대부업 광고 제한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소비자에게 상품의 유해성을 숨기는 광고를, 선택권 보장으로 해석하는 것은 억지로 보인다. 대부업체 측에서 "왜 나만 갖고 그래!"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오해다.

대부업 대출만 문제 삼는 게 아니다. 사실상 대출 광고 모두가 문제다. 거의 모든 금융권은 이자제한법상의 법정 최고 이자율 30% 규제를 받지 않는다. 대부업법 상의 39% 규제에 적용되는 특혜를 받고 있다. 은행을 제외하고 카드사 저축은행, 캐피탈 모두 20~30% 이상의 살인적인 이자 폭탄으로 소비자를 괴롭힌다. 이들의 광고도 모두 규제 대상이 되어야 한다.

가계 부채 1000조 원 시대인데, 돈 빌려 쓰라는 아우성을 광고로 접해야 할까? 돈 빌려 쓰는 걸 정당화하고, 생활비가 부족하면 전세든 자동차든 뭐든 담보로 대출 받아 쓰라고 권장하는 일은 이미 미친 짓이다. 생활비조차 부족한 마당에 무슨 수로 갚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이자 30% 짜리 대출을 권할까. 이렇게 무책임한 대출을 판매한 뒤 채무자가 돈을 못 갚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금융권은 모든 책임을 채무자에게 돌리고 인권을 무시하는 추심도 재산권 행사라는 명목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우리의 금융환경은 말 그대로 약탈적이다.

아이들 교육적 관점, 더불어 심리적으로 위험한 자극이라는 점에서 대출 광고 규제는 이제 사회적으로 크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현재 담배 광고는 전면 금지됐고, 알콜 광고는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취급돼 규제를 받고 있다. 이처럼 대부업 광고는 담배와 같이 전면 금지하는 게 옳다. 그에 아니라면 최소한 제2금융권 고금리 대출 광고는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규제해야 한다.

대부업 광고는 TV에서 사라져야 한다.
#대부업 광고 #러시앤캐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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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가계발 금융부실이 크게 우려된다. 채무자 보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수많은 채무자들을 빚독촉의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 채무자들 스스로도 이제 국가를 향해 의무만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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