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행인들이 서울역 인근의 한 대부업체 앞을 지나는 모습.
연합뉴스
또한 부모가 시청하는 영화, 드라마 채널의 광고는, 광고 몰입이 높은 아이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광고의 품질은 저급할지 모르나 이미 아이들에게는 파블로프의 개 실험에서와 같은 조건반사가 형성됐을 수도 있다. 돈이 필요하다는 생각만으로도 대출을 떠올리는 조건반사 말이다. 이 얼마나 지독한가. 대한민국은 현재 광고를 통해 아이들에게 돈이 필요하면 고금리 대출을 일으키라고 학습시키고 있다.
행동경제학자들의 실험에 따르면, 피실험자에게 돈을 떠올리는 작업을 시키면 그는 더욱 이기적이고 개별적이며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돈 생각만 하게 만들어도 사람은 그렇지 않을 때에 비해 이기적이고 이해타산적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돈은 그 자체로 대단히 자극적인 도구다. TV 화면에 돈다발이 등장하는 게 위험한 이유다.
당장의 생계비 걱정에 하루하루 쫓기는 입장이라면, 빚에 쫓겨 추심에 시달리고 있다면, 최선을 다해 살아도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 한숨 짓고 있다면, 화면 속 돈 뭉치에 흥분하는 것은 당연하다.
돈뭉치가 날아다니는 광고, 규제가 필요하다토스트 기계에서 돈다발이 튀어나오고, 전화로 1588-OOOO만 찍었을 뿐인데 천장에서 돈뭉치가 떨어진다. 현관문 초인종을 눌렀더니 현금인출기처럼 문이 열리고 돈 다발이 나온다. 이런 자극적인 광고는 사실상 광고 시청자들을 흥분시킬 수밖에 없다. 어린이뿐 아니라 당장 돈이 부족해 한숨 짓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돈다발이 등장하는 대출광고는 '필요하면 빌려 쓸 수도 있지'라고 속삭인다. 이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속삭임은 어느새 사람들에게 빚에 대한 책임감과 경계심을 무너뜨리는, 그야말로 무의식에 주입하는 무서운 학습이다.
대부업계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위해 대부업 광고 제한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소비자에게 상품의 유해성을 숨기는 광고를, 선택권 보장으로 해석하는 것은 억지로 보인다. 대부업체 측에서 "왜 나만 갖고 그래!"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오해다.
대부업 대출만 문제 삼는 게 아니다. 사실상 대출 광고 모두가 문제다. 거의 모든 금융권은 이자제한법상의 법정 최고 이자율 30% 규제를 받지 않는다. 대부업법 상의 39% 규제에 적용되는 특혜를 받고 있다. 은행을 제외하고 카드사 저축은행, 캐피탈 모두 20~30% 이상의 살인적인 이자 폭탄으로 소비자를 괴롭힌다. 이들의 광고도 모두 규제 대상이 되어야 한다.
가계 부채 1000조 원 시대인데, 돈 빌려 쓰라는 아우성을 광고로 접해야 할까? 돈 빌려 쓰는 걸 정당화하고, 생활비가 부족하면 전세든 자동차든 뭐든 담보로 대출 받아 쓰라고 권장하는 일은 이미 미친 짓이다. 생활비조차 부족한 마당에 무슨 수로 갚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이자 30% 짜리 대출을 권할까. 이렇게 무책임한 대출을 판매한 뒤 채무자가 돈을 못 갚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금융권은 모든 책임을 채무자에게 돌리고 인권을 무시하는 추심도 재산권 행사라는 명목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우리의 금융환경은 말 그대로 약탈적이다.
아이들 교육적 관점, 더불어 심리적으로 위험한 자극이라는 점에서 대출 광고 규제는 이제 사회적으로 크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현재 담배 광고는 전면 금지됐고, 알콜 광고는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취급돼 규제를 받고 있다. 이처럼 대부업 광고는 담배와 같이 전면 금지하는 게 옳다. 그에 아니라면 최소한 제2금융권 고금리 대출 광고는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규제해야 한다.
대부업 광고는 TV에서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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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가계발 금융부실이 크게 우려된다. 채무자 보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수많은 채무자들을 빚독촉의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
채무자들 스스로도 이제 국가를 향해 의무만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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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타 듯 대출하라는 광고... 이제 퇴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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