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한 '사랑'? 새롭게 '썼어'!

[서평] 김려령의 <너를 봤어>를 읽고

등록 2013.11.21 20:13수정 2013.11.2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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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느낌으로 다가온 김려령 작가의 <너를 봤어> ⓒ 창비

참 기묘한 소설이다. TV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의 미해결 살인 사건을 연상시킨다. <사랑과 전쟁>에 단골로 나오는 위험한 연애사 같기도 하다. 시사 프로에 나옴직한 약육강식 사회에 대한 비판도 보인다. 화룡정점은 '심령물'도 있다는 것. 심령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가슴속까지 오싹해지는 심령물. 이 다양한 장르의 내용이 짧은(200p) 한 권의 책에 담겨 있다니….

'막장 드라마'적인 요소들이 마구 뒤범벅된 정체불명의 요리를 작가가 들고 왔다. 이 요리 앞에 독자들은 허를 찔린 듯 멈칫한다. 마치 작품 속 인물 '영재'가 만든 형편없이 맛없는 음식처럼 보인다.


그런데 어쩌지? 이거 새로운 맛이다. 이전에 못 보던 맛이다. 비록 요리의 비주얼은 좀 그래 보여도, 들어간 재료는 과해 보여도 그 맛은 괜찮다. 맛있고 잊히지 않는다. 오래 잔상이 남는다. 이 책은 내게 그랬다. <너를 봤어>

'사랑'을 봤어!

이 책이 궁극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의외로(?) '사랑'이다.

어느 언어 천재가 조어 하나 만들었으면 싶을 정도로 진부한 저 사랑이라는 말이 내 글로 들어왔다. 때로는 터무니없고 미련하고 살벌한 사랑마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수많은 당신을 죽이며 갈망했던 것이 결국 사랑이었나보다. 지리멸렬한 삶일지라도 끝내 버릴 수 없는, 그러면 안되는 사랑, 그것으로 이제 독자를 만난다. (p.203, 작가의 말 중에서)

주인공 '수현'은 문학계에서 좀 알아주는 소설가이자, 베테랑 편집자이다. '영재'는 이제 막 문학계에 발을 디뎠다. 전도유망한 신예이기도 하다. '도하'는 수현의 후배 작가로 이 셋은 잘 붙어 다니며, 문학과 삶의 이야기를 나눈다.


이 중심인물 곁에 수현의 가족들과 여러 문학계 인사들이 있다. 수현의 가족은 온전한 모습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실패한 인물들의 전범, 표본이겠다. 자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던 아버지는 결국 폭력이 부메랑 되어 죽음의 강물로 이끌린다. 아버지의 폭력을 이어받아 폭력을 행사하던 형 역시, 폭력으로 죽음의 강물을 건넌다. 과거의 불미스러운 일을 갖고 있는 어머니 역시 현재의 쓸쓸한 강을 건너고 있다. 당최 속을 알 수 없던, 타인에게 좋은 평을 듣지 못했던 아내도 스스로 자신을 죽음에 내던진다. 이런 가정사는 수현의 삶을 짓눌러 온다. 조금이라도 방심할 수 없는 문학계, 편집계의 탁한 공기 역시 수현을 목 죄어 온다. 결국 수현이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결국 '사랑'뿐이었을 게다.   

사랑은 잘 놀고 있는 고무줄 끊고 도망가는 게 아니라, 무거운 쓰레기통을 살짝 들어주는 거거든. 좋아하는 건지 싫어하는 건지 헛갈리게 굴지 않는다고. 고무줄 끊는 건 진짜 나쁜 놈도 하잖아. 사랑은 앞뒤 잴 것 없이 명확한 거야. (p.117)

하지만, 이 사랑의 모습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상상하는 그런 종류와 모습의 사랑은 아니었다. 지고지순하고 아름다운 장밋빛 같은 그런 사랑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사회에서 통용하지 않는, '결혼 밖의 사랑'이었고, 심지어 '폭력으로 이어지는 사랑'이었다. '도덕'의 잣대로만 이 작품을 비추어 보자면, '쓰레기'소설과 다름없다. '사랑'과 '폭력'이 어떻게 동전의 양면이란 말인가?

그런 명확한 의문이 존재하기에 이 작품을 제대로 해석하는 데는 또 다른 프리즘이 필요하다. '시점'의 변화, 관찰자가 아닌 '참여자'의 시점 말이다.

작품속 문학계 인사들처럼 멀리 떨어져서 관찰하는 것이 아닌, 한잔 술을 걸치며 쉬고 있는 수현 바로 옆에서 그를 지켜본다면 그의 사랑이 조금이나마 이해된다. 영재와 도하의 눈을 가진다면 더 정확하겠다. 완전 비틀린 가정에서 자라난, 갑갑한 갑과 을의 사회에서 버텨온 그에게 이 '사랑'이라는 것. 이놈은 최소한의 숨 쉴 구멍이지 않았을까.   

수현의 이런 사랑에 결국 영채도 비합리적으로 반응한다.

사랑은 매우 비합리적인 감정이었어. 대책 없이 몸과 마음이 막 달려가는 미친 현상이야. 이거다 하고 정의할 수 없는 게 사랑이더라고. (p.193)

이 소설은 이제 어떻게 전개될까? "둘은 사랑에 빠져 결혼했고, 문학계의 아름다운 커플이 되었고, 많은 독자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었더라"라고 끝나면 좋으련만. 이 작품은 끝까지 독자들의 기대를 배반한다. 일반 드라마 공식을 따르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소설의 표현대로 하자면, 수현은 카론의 배를 타고, 스틱스강을 건넌다. 끝까지 막장드라마 공식이다. 평이하게 소설을 마무리하면 되지 '왜' 죽여? "왜?"라는 질문이 자연스레 따라온다.

'영재를 지키기 위해서였겠지'라는 어정쩡한 대답을 나름 내리고, 마저 책을 읽어 갔다. 영재와 도하가 수현과 같이 작업해 온 책을 저 세상의 수현에게 소개한다. 그 책의 제목 역시 <너를 봤어>. 숨 가쁘게 읽어온 이 소설을 겨우 닫는다. 휴~ 내 안에 묵혀 왔던 깊은 한숨이 비로소 터져 나왔다.

'문장'을 봤다

이 정체불명의 소설을 쓴 이는 김려령이다. 성장 소설의 전범인 <완득이>를 쓴 사람, 김려령이 이런 작품을 쓰다니. 우리가 알고 있던 김려령은 주로 청소년 소설을 써 오지 않았나. 놀랍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명배우는 어떤 역할을 맡든지 그 역할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다더니 김려령의 얘기 아닌가? 어떤 한 장르를 잘 쓰면, 작가는 그 장르에만 전념하기 쉽다. 그러면 그 장르 외에는 부진하기 마련일 터. 김려령은 지혜롭게 그 실수를 비껴 간 듯하다.

또 하나 돋보이는 건 이것이다. 문장력!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를 한 권에 잘 넣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그녀의 문장력이 아닐까? 그중에서도 더 칭찬할 것은  '단문'의 올바른 사용이다. 마치 권투의 잽을 치듯이 독자들의 허를 마구마구 찔러 온다. 잘 벼려진 문장의 매서움을 제대로 맛보았다. 많은 대화 장면에도 이 단문은 유용했다.

혹여 단문이라 무게가 떨어진다 생각할 수 있지만, 오산이다. 잠언처럼 곱씹을 수 있는 명문(名文)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마치 보석처럼 박혀 있어 "나를 좀 읽어 줘요"라며 빛을 낸다. 독자들은 보석들을 캐내며 희열을 발견한다. 그것이 이 책이 주는 덤이다.

-나는 공소시효라는 게 참 그래요. 그동안 안 잡히고 버텼어? 대단한 놈이구나. 집에 가라! 죽은 사람의 원한이 풀리지 않으면 억년이 흘러도 진행 중인 거예요. (p.113)

-아내는 어떤 외상으로 거짓말이 습관화된 게 아니라 그것을 태초의 언어로 가지고 태어난 사람 같았다고. (p.151)

-몸에 오한이 일었다. 습하고 더운 밤, 나는 추웠다. (p.169)

-어머니와 나의 세상은 무서운 게 아니라 무거운 것이었다. (p.186)

성과 폭력 수위 높은 미국드라마에 어울림직한 소재를 잘 버물려서 작가는 기어코 '사랑'이라는 단어를 수면 위에 올려놓았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 단어를 발견하기 힘들다. 아무도 찾지 않는 저수지에 이리저리 뒤엉켜진 폭력, 죽음, 간음의 쓰레기만 보일 뿐. 하지만, 그 사랑이라는 조각을 찾는다면, 비로소 이 작품의 진가를 발견한 것이다.

아내의 죽음 앞에서 차분히 '사랑'을 읊조리는 수현, 그의 말이 처연하다.

목숨으로 흥정하는 사랑은 죽어서도 그것을 얻지 못한다. 사랑은 흥정이 아닌 삶의 모습으로 얻는 것이다. (p.64)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었습니다. http://blog.naver.com/clearoad

너를 봤어 - 김려령 장편소설

김려령 지음,
창비, 2013


#너를봤어 #김려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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