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신 신부, '존경할 만한 범죄자' 목록에 오를까

[주장] 양심과 사상,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신공안 정국'

등록 2013.11.27 18:07수정 2013.11.27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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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의 퇴행적인 공안 통치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대량의 정치범이 생겨날 조짐마저 일고 있다. 전교조·전공노 문제가 그렇고, 소속 의원이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된 통합진보당이 그렇다. 정권과 격돌하고 있는 종교계도 마찬가지다. 며칠 전에는 시국 미사에서 나온 발언 때문에 고발 당한 신부가 생겨났다.

'신공안 정국'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회자되는 세상이다. 박근혜 정권이 반대자들을 억누르는 방식은 정형적이다. 사건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말이 있다. 이런 식이다. 좋은 '먹잇감'이 생겨나면 보수 언론이 나서서 분위기를 잡는다. 정부와 여권은 언론 보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상황을 부풀린다. 법적 고발은 극우 보수 단체가 맡는다. 검찰은 신속하게 사건을 배당해 수사에 착수한다. 박근혜 정권의 '신공안 정국'에서 공안 사건이 만들어지는 상투적인 패턴이다.

극우 보수 단체는 기꺼이 정권의 '홍위병'을 자처하는 듯하다. 스스로를 형식적인 법 논리에 가둔 검찰은 '빛의 속도'로 수사에 돌입하여 궁지에 몰린 권력에 돌파구를 마련해 준다. 정치 중립을 지켜야 하는 국정원은 청와대의 직속기관이 돼버린 듯하다. 나는 그들이 언제 대형 간첩 사건을 터뜨릴지 궁금하다. 국정원은 이석기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에서도 내사 과정과 수사 내용, 공개 수사 착수 시점 등을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대자들을 손보는 데 권력은 피 한 방울 묻힐 필요가 없다.

현재의 서슬퍼런 공안 분위기는 권력 최상층부와 여권의 합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홍원 총리는 "박창신 신부의 북한 찬양이 경악스럽다"며 '찬양·고무'를 기정사실화했다. 청와대의 이정현 홍보수석은 "그 사람들의 조국이 어디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막말 종결자'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박창신 신부를 "사제복 입은 혁명전사"라고 비난했다.

일부 언론은 현재의 신공안 정국의 핵심에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있다고 분석한다. 법무부 수장인 황교안 장관 역시 신공안 정국 조성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들 모두 '공안'이라는 말을 빼면 이력서의 빈칸을 채우기 힘들 정도다.

김 비서실장은 1974년 9월부터 1979년까지 5년간 중앙정보부5국장(대공수사국장)을 지내며 숱한 공안 수사를 이끌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과 제2차 인민혁명당 사건 당시에는 신직수 중앙정보부장의 법률보좌관이었다. 1989년 서경원 의원 방북 사건 당시에는 '좌익 발본색원'이라는 말로 사건을 총지휘했다. 청와대와 검찰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는 황교안 법무장관 역시 검찰 재직 기간 대부분을 '공안검사'로 보낸 사람이다.

권력 건드리면 발끈... 박근혜 대통령의 두 얼굴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현재 신공안 정국의 최대 핵심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은 박 신부의 발언 뒤 "용납하거나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경한 발언을 내놨다. 정권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절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나와는 무관하다"며 방관자적인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안보 문제나 정권의 정통성 문제가 불거지면 강경하고 공세적인 모습을 취한다. '두 얼굴'이다.

해럴드 래스키(1893~1950)는 영국의 정치철학자다. 그가 남긴 유명한 말 몇 마디를 따라가 보자.


국가가 그 권위에 대한 비판을 어느 정도까지 허용하는가는 그 국가가 사회의 충성심을 어느 정도까지 쥐고 있는가에 대한 가장 확실한 지표다. 지도자로서 성공하려면 자기 시대에서 너무 많이 앞질러 가면 안 된다. 지도자는 자기를 업고 있는 대중의 눈으로 사물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

래스키의 말에 있는 '국가'를 '권력자'로 바꿔 보자. 이 나라 최고 권력자인 박 대통령은 지금 '통 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두루 아는 대로 박 대통령은 자신의 권위에 대한 비판을 쉬이 허용하지 않는다. 박 대통령이 2인자를 두지 않는 것은 그 방증이다. 국가의 기반을 흔드는 부정 선거에 대해서는 거의 침묵하면서도 정권의 정통성을 건드리는 비판자들에게는 냉혹한 말을 쏟아낸다. 이런 상황에서는 국민 일반의 충성을 끌어내지 못한다.

박 대통령은 대중과 함께하는 '상식적인' 지도자의 모습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 그는 지금 평균적인 대중의 등에서 내려와 과거로 성큼성큼 내닫고 있다. 시대를 지나치게 앞질러서가 아니라 퇴행적인 과거를 답습함으로써 스스로 시민 대중으로부터 유리되고 있다. '구중궁궐'에 있는 박 대통령이 반대자와 비판자들의 말게 더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현명한 지도자는 추종자들의 아부보다 반대자들의 비판에서 훨씬 더 많은 것을 얻는다.

래스키가 한 또 다른 말이다. 안타깝게도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박 대통령 주변은 온통 '종박주의자'로 넘쳐난다. 현 정권에 비판적인 말을 던지면 신부든 목사든 '정치적'이라며 반격하고 법을 들이댄다. 찬양과 아부를 일삼는 이들은 실세 대접을 받으며 승승장구한다. '심기 경호'라는 해괴한 말이 나오고, 50대 국회의원이 60대 대통령을 '누나'라고 부르는 모습은 누가 봐도 징후적이다.

실정법 만능주의와 형식적 법치주의가 낳은 신공안

현재의 강경한 신공안 드라이브는 실정법 만능주의와 형식적 법치주의를 통해서도 힘을 얻고 있다. 극우 보수 단체의 '활빈단'이 박 신부를 고발한 근거는 국가보안법상의 찬양·고무죄 및 내란음모 혐의였다. 통합진보당의 이석기 의원을 잡아가둔 것도 역시 국가보안법이다. 해묵은 국가보안법이 현재의 '종북몰이'에 법적 근거를 제공하면서 화려하게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법과 정의는 일란성 쌍둥이다. 그리스어에서 '법(dike)'과 '정의(dikaiosyne)'는 같은 뿌리('dik-')에서 나왔다. 이는 로마어에서도 마찬가지다. 로마어의 '법(jus)'은 '정의(justitia)'와 동일한 어근('jus-')을 갖는다. 어떤 의의가 있는가. 법의 어원론은 법이 정의로워야 한다는 당위를 확인해 준다. 정의롭지 못한 법은 결코 그 존재의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

하지만 현실 속의 법은 이 당위를 벗어날 때가 많다. 정의롭지 못한 법, 정의에 배치되는 법이 존재하는 것이다. 양심과 사상, 표현의 자유를 옥죄는 법들이 그렇다. 과거 50여 년간 수많은 무고한 사람을 핍박한 악법 중의 악법, 말 한 마디를 빌미로 신부를 고발할 수 있게 하고, 총선에서 10.3%의 국민이 지지했으며 현직 의원이 여섯 명이나 있는 공당(公堂)을 순식간에 반국가단체의 소굴처럼 만들어 버리는 국가보안법과 같은 것 말이다.

어떤 양심과 사상, 표현을 처벌할 것인가. '나'의 자유로운 사상과 양심이 법에 어긋날 경우, 법은 '나'를 어떻게, 어느 정도로 처벌해야 하는가. 어려운 문제들이다. 하지만 국가보안법 아래에서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체제와 권력을 위태롭게 하는 양심과 사상, 표현이기만 하면 된다. 결국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나'의 입에는 재갈이 물린다. 최악의 경우 감옥의 차가운 창살이 '나'를 기다린다. 국가보안법은 그 존재만으로도 자기검열에 따른 심리적 위축 효과를 가져온다. 참으로 무시무시한 법이다.

실정법 만능주의자들이 있다. 가령 국가보안법을 신봉하는 이들이 그렇지 않을까. 이들은 형식적인 법 정의를 중시하고, 법적 안정성과 사회 질서를 강조한다. 이른바 법치주의자들이다. 그들은 양심과 사상, 표현마저도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국익과 공익, 공공질서와 안녕의 논리를 앞세워 법 밖의 양심과 사상, 표현을 처벌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정법으로 유지되는 질서를 교란하는 행위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강압적으로 제압해야 한다고 부르짖는다.

박창신 신부, 존경할 만한 범죄자 되나

그런데 법치주의자들의 반대편에 전혀 다른 사람들이 있다. 법을 초월하여 궁극적인 정의를 추구하는 이들이다. 이들에게 정의롭지 못한 실정법은 법이 아니다. 그들이 고수하려는 양심과 사상, 표현은 가치관과 세계관의 문제다. 이성적인 인간이라면 실정법 때문에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바꾸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들은 기꺼이 실정법의 그름을 비판한다. 실정법을 타파하거나 위반하는 것이 좀 더 수준 높은 정의와 선을 실현하는 행위라고 확신한다.

그들은 기꺼이 법을 위반한다. 법이 정의롭지 못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상과 양심, 표현을 '위법'이라고 말하는 권력자들의 '경고'를 무시한다. 법의 위반으로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위협'에도 결코 굴하지 않는다. 그들은 확신을 갖고 자신의 행위를 밀고 나간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사상범이나 정치범은 자신의 (위법적인) 양심과 사상, 표현을 확고부동하게 고수하는 확신범이 된다. 실정법상으로 '범죄자'이나 "존경할 만한 범죄자"가 되는 이유다.

권력이 정의롭지 못하면 진정한 자유가 질식당한다. 확신범이기도 한 정치범이 생겨나는 또 다른 배경이다. 정의롭지 못한 권력은 자신이 증오하는 사상과 이념을 핍박한다. 권력의 부당성을 비판하는 이들에게 재갈을 물리려고 한다. 그들을 핍박하고 제거하는 데 몰두한다. 그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 실정법에 어긋나는 그들의 양심과 사상, 표현만 걸고 넘어지면 된다.

자유로운 정치 현실에서는 정치범이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진정한 '자유'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직된 사회에서는 정치범이 양산된다. 관제 사상의 지배를 받는 전체주의 국가나 공산주의 국가에서 극한적인 정치범 수용소가 비대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이원은 이미 감옥에 가 있다. 실제 발언과는 무관하게 북한 찬양·고무죄라는 무시무시한 범죄 혐의로 고발당한 박 신부는 검찰 수사를 앞두고 있다. 그는 지금 '종복몰이'를 끝낼 수 있다면 기꺼이 감옥에 가겠다고 말하고 있다. '종북몰이'를 멈추게 하기 위한 정치적 희생양을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조만간 박 신부는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존경할 만한 범죄자"의 목록에 오를지도 모른다.

진정한 정치적 자유는 양심과 사상, 표현의 자유, 완전한 언론의 자유에 기반한다. 그때의 자유는 완전한 100%여야 한다. 시인 김수영식으로 말하면, '이만하면'이란 중간사가 도저히 있어서는 안 되는 자유다. 99%나 98%의 압도적인 자유가 아니다. 고작 1%나 2% 모자라지만, 그렇다고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말할 수 없는 그런 자유여야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최소한의 정치적인 의견 표명도 쉽게 하지 못하는 억압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자기 양심과 사상에 따라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할 권리가 갈수록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정의롭지 못한 현실을 비판하면 불온주의자의 낙인이 찍힌다. 권력을 조금이라도 비판하면 '빨갱이'와 '종북'으로 몰아 법정에 세워 버린다. 폭압적인 전체주의 사회와 무엇이 다른가. 그렇게 해서 "존경할 만한 범죄자"가 넘쳐 나니 행운이라고 해야 하나. 정치범이 양산되는 대한민국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신공안 정국 #박근혜 대통령 #정치적 자유 #국가보안법 #정치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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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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