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이 만들어준 흥겨운 자리입니다.
이승숙
안치환씨와 박광숙 선생님은 어떻게 아는 사이일까. 어제 오늘 만난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어떤 인연으로 만난 것일까. 안치환씨가 김남주 시인의 시에 곡을 붙여 노래로 많이 만들었는데, 그래서 서로 아는 사이일까?
김남주 시인과 가수 안치환김남주 시인은 민주화운동으로 십 년 가까이 옥살이를 했다. 감옥에서 나온 1988년 12월부터 1994년에 돌아가실 때까지 각종 재야 집회에서 시 낭송으로 힘을 보탰다. 그때 가수 안치환씨를 만나 여러 시위와 집회에서 함께 활동을 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안치환 씨와 김남주 시인 그리고 박광숙 선생님은 오랜 동지이자 벗이었다.
1980년대, 그때는 암울하고 혼란스러웠던 시대였다. 엄혹한 군사 독재를 끝내고 민주화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것은 그 시대가 젊은이들에게 부여한 사명이었다. 박광숙 선생님의 부군이신 김남주 시인은 감옥 안에서도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시인이 피를 토하듯 쓴 시는 시대의 어둠을 불사르는 불씨가 되어 타올랐다.
김남주 시인은 시로 투쟁을 한 '전사(戰士)'였다. 그래서 시인을 떠올릴 때면 강렬한 전투적 이미지가 연상된다. 그는 은유나 상징으로 문제를 드러내기보다 예리한 육성으로 직설적으로 주제를 드러냈다. 끝까지 저항하며 온 몸으로 시를 쓴 사람이 바로 김남주 시인이었다. 그래서 그에게는 전사라는 명예로운 칭호가 붙었다.
"만인을 위해 노력하고 싸울 때 나는 자유"라고 시인은 말한다. "땀 흘려 힘껏 일하지 않고 또 피 흘려 함께 싸우지 않고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도 말한다. 강물 위에 파문을 그리고 가라앉는 돌맹이 하나가 되고자 했고 새날을 밝힐 불씨 하나 되고자 했던 시인은 돌에 실릴 역사의 무게와 불이 밀어낼 어둠의 영역이 얼마일지 알 수 없어도 그리 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