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 줄 수 없다"던 장모님...섭섭했습니다

[공모- 김장] 19년째 김장김치로 사위사랑 표현하시는 장모님

등록 2013.12.09 10:25수정 2013.12.09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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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모님이 올해 담근 김장김치의 모습.19년째 장모님이 담가주신 김장김치맛에 '개미'가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김장 노하우를 공개한다.
장모님이 올해 담근 김장김치의 모습.19년째 장모님이 담가주신 김장김치맛에 '개미'가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김장 노하우를 공개한다.심명남

"자네에게 내 딸을 줄 수 없네. 난 사윗감으로 키도 크고 듬직한 사람을 원하네."


처가에 첫인사 갔던 날, 장모님의 반대는 단호했다. 나를 보고 실망했던 장모님의 그때 그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김장'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바로 장모님이다. 맛의 고장 전라도에서 우리 어머님의 음식 맛은 최고였다. 어머님이 해주신 음식을 맛본 사람들은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운다. 더불어 장모님의 김장 솜씨도 보통이 넘는다. 결혼 후 지금껏 장모님이 담가주신 김장김치를 쭉 먹고 있으니 복도 이런 복은 없다. 하지만 한때 장모님에게 섭섭함을 느꼈었고, 그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그 기억은 오래갔다. 지금으로부터 19년 전의 일이다.

아내는 맏딸이었다. 예비 사윗감 자격으로 그녀의 집에 처음 인사를 간 날, 처갓집에는 친척들이 모여 날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혼기가 꽉 차 한창 미모를 뽐내던 아내는 여러 군데서 선이 들어와 몸살을 앓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번번이 거절했던 아내. 그런 만큼 집안 어른들의 궁금증은 커졌을 터. 장모님을 비롯하여 처가댁 식구들의 신랑감에 대한 기대치는 하늘을 찔렀다.

'사위사랑은 장모'라 했지만...

 김장하는 날이면 가까이 사는 자식들은 돼지고기를 사서 시골로 모인다. 지난달 말 처갓집에서 배추를 다듬는 장모님과 처남댁, 아내는 약 300포기 가까운 김장을 했다.
김장하는 날이면 가까이 사는 자식들은 돼지고기를 사서 시골로 모인다. 지난달 말 처갓집에서 배추를 다듬는 장모님과 처남댁, 아내는 약 300포기 가까운 김장을 했다. 심명남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특히 장모님의 실망은 컸다. 우리가 일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내가 너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울고 불고 한바탕 난리가 났다. 순식간에 집안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옛말에 사위를 두고 백년지객(百年之客)이요, '사위사랑은 장모'라 했거늘... 예비 장모님의 푸대접으로 나 또한 상실감이 컸다. 사실 결혼 승낙을 받으러 간 것도 아닌데 어찌 이럴 수가...


이내 술상이 들어왔다. 점잖던 장인어른과 처 이숙이 내게 술을 권하기 시작했다. 속이 탄 나는 술을 주는 대로 받아 마셨다. 금세 1.5리터 댓병이 바닥났다. 평소 같으면 쓰러질 주량이지만 장모님의 성화 때문에 정신이 더 또렷해졌다. 어차피 엎지른 물이라 생각했다. 사실 결혼을 말 할 단계는 아니었다. 이날 인사만 하고 다음에 진도를 나가겠다는 내 생각이 순진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 역시 질러버리고 말았다.

"제가 모타리는 작아도 수영(가명)씨하나는 행복하게 해드릴 자신 있습니다. 수영씨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저희 결혼 허락해 주십시오!"


예비신랑감의 면접테스트가 되어버린 첫 만남은 이렇게 끝이 났다. 이후 장모님의 반대로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집안의 반대는 그리 심하지 않았다. 이후 우리 결혼은 가속도가 붙었다. 아내를 만난 지 딱 1년만인 12월 24일. 첫눈이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이브에 우린 웨딩마치를 울렸다. 그 후 아내는 세 아이를 낳은 선녀가 되었고 나 역시 그런 아내에게 꽉 잡혀 사는 나뭇꾼이 되었다. 어느덧 결혼 19년째를 맞고 있다.

첫 만남에 사위에게 쌀쌀했던 장모님. 당신의 업보(?)때문인지 전라도 말로 '겁나 미안해' 하신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당신이 키가 작아 키 크고 듬직한 사위를 간절히 원했단다. 이후 난 장모님의 원죄탓에 사위대접을 톡톡히 받고 산다. 그 대표적인 증표가 '김장김치'다. 처음은 몰랐다. 자식을 키우고, 살림을 살다보니 매년 느껴지는 김치의 고마움을 말이다. 자랑같지만, 한해도 거르지 않고 19년 동안 장모님이 담가준 김장김치는 우리 집의 든든한 재산이다. 김장 뒤 김치 냉장고 2대에 가득 찬 김치로 일 년을 버틴다. 김치만 보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

19년째 김장 담가주신 장모님... "고맙습니다"

 장모님 김치 맛의 노하우는 배추의 숨을 죽이는 절임 간에 있다. 장모님은 바닷물과 소금을 이용해 배추를 절인다. 미네랄이 풍부한 청정 여자만 바닷물로 절임간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장모님 김치 맛의 노하우는 배추의 숨을 죽이는 절임 간에 있다. 장모님은 바닷물과 소금을 이용해 배추를 절인다. 미네랄이 풍부한 청정 여자만 바닷물로 절임간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심명남

장인어른이 살아계실 때 자식들 주려고 두 분이 오순도순 김장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장인 어르신이 돌아가시고 난 후에도 홀로 농사를 지어 자식들에게 김장 김치를 보내주는 일은 장모님의 큰 낙이다. 김장하는 날이면 가까이 사는 자식들은 돼지고기를 싸들고 시골로 모인다. 처갓집은 지난 달 말 김장을 마쳤다. 장모님은 올해도 4남매에게 주려고 300포기 가까운 김장을 했다.

장모님이 담근 김치 맛에 '개미'가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장모님의 김장팁을 공개하면 이렇다. 우선 유기농 고추와 배추를 직접 재배해 쓰다 보니 맛이 신선하다. 무엇보다도 장모님 김치 맛의 노하우는 배추의 숨을 죽이는 절임 간에 있다.

장모님은 바닷물과 소금을 이용해 배추를 절인다. 집 앞에 있는 미네랄이 풍부한 청정 여자만 바닷물을 떠다 쓴다. 또 멸치와 디포리, 다시마 달인 육수를 낸다. 여기에다 풀을 쑤고 당근, 생강, 마늘, 파, 사과, 배, 무에 싱싱한 새우를 듬뿍 넣고 고추와 함께 믹서기에 간다. 이것이 장모님표 최고의 '김장 레시피'다. 마지막으로 김장 양념을 배추에 버무리면 맛난 김장김치가 탄생한다.

 마당에 놓인 장모님표 '김장 레시피'다. 멸치와 디포리, 다시마 달인 육수를 낸다. 여기에다 풀을 쑤고 당근, 생강, 마늘, 파, 사과, 배, 무에 싱싱한 새우가 준비된 모습.
마당에 놓인 장모님표 '김장 레시피'다. 멸치와 디포리, 다시마 달인 육수를 낸다. 여기에다 풀을 쑤고 당근, 생강, 마늘, 파, 사과, 배, 무에 싱싱한 새우가 준비된 모습. 심명남

김장을 하고 나면 장모님은 파김치가 된다. 자식들이 다 출가했는데 해마다 왜 힘든 고생을 사서 하는지 그 이유를 물었다.

"김장 하고 나면 내가 몸살나 죽제. 그래도 죽기 전까지는 내가 움직여가 자식들이 편해. 내가 뭘 바라겠어? 결혼한 자식들 안 싸우고 잘 살았으면 하는 그 바람뿐이제. 내년부터는 즈그들이 제발 해먹었으면 좋겠어."

올해 처갓집 김장하는 날, 때 아닌 눈이 내렸다. 세월의 흔적은 장모님의 머리에도 쌓여간다. 흰 눈처럼 하얗게. 이렇듯 김장이 끝나야 장모님의 일 년 농사도 끝이 난다. 얼마 전 김장 후유증으로 장모님은 병원에 입원 하셨다. 요즘 부쩍 병원에 가는 일이 잦다. 맘이 아프다. 하지만 장모님의 손맛이 담긴 김장김치를 오래도록 먹고 싶은 이유는 뭘까?

"장모님 퍼뜩 완쾌 되시요 잉~. 저 미워했으닌께 그 원수 갑을라믄 김치 오래오래 담가 주시요. 아~따 이 심서방 장모님 겁나 사랑해부요."
덧붙이는 글 김장 응모글
#김장공모 #김장이야기 #장모님 #김장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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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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