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의 권리' 강조한 미국
'국정원 기득권' 움켜쥔 한국

[주장] 미국과 한국, 정보기관 불법 행위에 대한 상반된 대처 방안

등록 2013.12.13 11:56수정 2013.12.13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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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닉슨 사임  1974년 사임을 발표한 닉슨. 뉴욕타임스 1면에 게재됐다.

닉슨 사임 1974년 사임을 발표한 닉슨. 뉴욕타임스 1면에 게재됐다. ⓒ 뉴욕 타임스 PDF

▲ 닉슨 사임 1974년 사임을 발표한 닉슨. 뉴욕타임스 1면에 게재됐다. ⓒ 뉴욕 타임스 PDF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미국 닉슨 대통령이 사임했다. 미국의 충격은 컸고 그와 같은 일의 재발방지를 위한 의회의 노력이 시작됐다. 그중 하나가 불법행위에 연관된 것으로 드러난 미 정보기관 CIA 개혁안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CIA는 한국의 국가정보원과 유사했다. 미국을 넘나들면서 불법과 탈법을 아우르는 왕성한 첩보활동과 정치공작을 폈지만 그들의 실체는 공개되지 않았다. 즉, '보이지 않는 권력'이었다.

 

a  처치위원회의 보고서

처치위원회의 보고서 ⓒ wiki commons

처치위원회의 보고서 ⓒ wiki commons

행정부와 CIA의 방해공작이 있었지만 1975년 미 의회는 단호했다. 상원과 하원이 수년에 걸쳐서 별도의 위원회를 운영해 조사에 나섰다. 상원에서는 처치위원회(the Church Committee), 하원에서는 파이크위원회(Pike Committee)로 대표되는 위원회를 설치해 CIA·FBI의 불법정보활동에 대한 진상규명에 돌입했다.

 

처치위원회는 프랭크 처치를 위원장으로 다수당인 민주당 상원의원 6명과 소수당인 공화당 상원의원 5명으로 구성됐다. 처치위원회는 "이 위원회 설립 결의의 가장 중대한 강조점은 미 정부기관의 정보활동이 '미국 시민들의 권리'를 위협했는가의 여부에 있다"고 강조했다.

 

의회의 시도가 처음부터 환영받지는 않았다. 백악관과 CIA는 '정보기관이고 사안에 따라서는 외교 갈등을 야기할 수 있음'을 강조하며 비공개 조사를 요구했다. 그렇지만 의회는 공개 원칙을 고수했다. 미 의회의 CIA 청문회는 TV로 중계됐다.

 

정보기관의 비밀스러운 활동이 TV를 통해 국민들에게 낱낱이 공개된 것이다. 행정부는 법원까지 동원해서, 법원에 TV중계를 금지시켜 달라고 요청했지만 법원은 거절했다. 국가기관은 법 위에 존재하는 게 아니고, 국민의 알 권리가 중요하다고 판시한 것이다.

 

처치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사람들이 모두 진실만을 고백했던 것은 아니었다. 일부는 위증을 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범죄 처벌을 받았다. 처치위원회는 CIA 치부가 낱낱이 기록된 외국 요인 암살 음모 등이 담긴 CIA 보고서를 일반에 공개했다. 여러 한계가 존재했음에도 처치위원회는 의회의 정보기관에 대한 감시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상원 정보위원회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결실을 거뒀다.

 

지켜진 적 없는 국정원의 '셀프 개혁'

 

a 국정원개혁특위에 출석한 남재준 국정원장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개혁특위에 국정원 자체개혁안 보고를 위해 출석하고 있다.

국정원개혁특위에 출석한 남재준 국정원장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개혁특위에 국정원 자체개혁안 보고를 위해 출석하고 있다. ⓒ 남소연

▲ 국정원개혁특위에 출석한 남재준 국정원장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개혁특위에 국정원 자체개혁안 보고를 위해 출석하고 있다. ⓒ 남소연

국가정보원이 지난 12일 소위 '셀프 개혁안'을 국회에 보고했다. '셀프 개혁안'이라는 말 자체가 난센스다. 미국 처치위원회 사례에서도 확인했듯이 CIA는 조직에 유리하게 위증을 했고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개혁이 이뤄질 리 만무했지만 미 의회는 TV 중계를 통해 국민들의 지지를 얻었고 정보기관에 대한 개혁안 마련에 성공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국정원은 어떠한가?

 

국정원이 이날 공개한 셀프 개혁안에 대한 여야의 평가는 극명하게 대비됐다. '국정원 개혁 특위' 여당 간사인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은 "혁신하려는 노력이 보인다"며 강한 긍정의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민주당 간사인 문병호 의원은 "상당히 미흡하다"며 정반대의 평가를 내렸다.

 

국정원이 이날 보고한 셀프 개혁안에 어떠한 내용이 담겨 있는지 살펴보자. ▲ 국회·정당·언론사에 대한 정보요원(IO) 상시출입 제도 폐지 ▲ 국정원 직원의 정치개입금지 서약 제도화 ▲ 방어심리전 활동 시 특정정당·정치인 관련 내용에 대한 언급 금지 등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는 말장난일 뿐이다. 상시 출입 제도 폐지란 '필요할 때마다 출입한다'란 말의 다름 아니고, 정치개입금지 서약 제도화 역시 이미 '국가정보원법'으로 정치적 중립을 명문화한 국정원 직원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까지 국정원은 여러 차례 개혁이 진행됐다. 1961년 중앙정보부로 창설된 국정원은 1994년 문민정부 들어와서 업무범위가 현재와 같이 구체화됐고, 정치관여 금지 조항이 강화됐다. 직권남용에 대한 처벌조항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개혁안이 도입됐음에도 국정원은 중요한 순간마다 법을 위반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1997년 대선 때에는 안기부가 '북풍사건'을 조작해 대선에 개입했고, 2002년 대선 때 역시 국정원은 정치인과 공직자 등 1800여 명에 대한 불법 도감청을 했다. 셀프 개혁안이 무의미하다는 걸 보여준 구체적 사례들이다.

 

'셀프 개혁'에 뻣뻣한 국정원... 실망스럽게 첫발 뗀 개혁특위

 

a 대화 나누는 정세균-김재원-문병호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개혁특위 전체회의에서 정세균 위원장과 새누리당 김재원, 민주당 문병호 간사가 국정원 업무보고를 받기 앞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대화 나누는 정세균-김재원-문병호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개혁특위 전체회의에서 정세균 위원장과 새누리당 김재원, 민주당 문병호 간사가 국정원 업무보고를 받기 앞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 남소연

▲ 대화 나누는 정세균-김재원-문병호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개혁특위 전체회의에서 정세균 위원장과 새누리당 김재원, 민주당 문병호 간사가 국정원 업무보고를 받기 앞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 남소연

이제 또다시 국가정보원이 개혁을 위한 심판대 위에 섰다. 이번 개혁은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런데 그 결과는 낙관하기 어렵게 됐다. 먼저 국정원의 태도가 굉장히 뻣뻣하다. 지난 12일 국정원 개혁특위에 출석해 셀프 개혁안을 보고한 남재준 원장부터 "정보기관 예산을 공개하는 나라는 없다"며 야당의 국정원 견제에 대해 돌직구를 날렸다.

 

새누리당은 국정원의 셀프 개혁안을 비공개로 국정원 개혁특위에서 청취할 것을 주장했고, 결국 관철했다. 미국의 처치위원회가 했던 것처럼 비위 사실과 관련된 증인을 불러 TV로 중계되는 청문회는 이번 국정원 개혁특위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국정원은 실망스러운 '셀프 개혁안'을 내놨고, 남재준 원장은 이에 더해 예산 등의 국회 통제를 언급한 민주당에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1975년 활동했던 처치위원회는 TV중계를 통해 CIA의 민낯을 낱낱이 공개했다. 그 결과 CIA는 의회의 통제를 받는 조직으로 탈바꿈됐다. 한국의 국정원은 민낯 공개는커녕 야당에 의해 실망스럽다는 평가를 받는 셀프 개혁안을 내놨다. TV중계는 꿈에도 꾸지 못한다. 셀프 개혁안이라는 이름으로 '개혁안'을 방해하는 게 아닐까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두루뭉술하게 넘어갔으면 하는 분위기도 느껴진다.

 

새누리당의 집중된 반응을 보노라니 셀프 개혁안이 이번 특위 논의의 시작점이고 국정원 개혁특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변곡점으로 해석된다. 과연 정보기관의 정치 불개입 등의 원칙을 제도화할 수 있을까. 앞서 봤듯이 셀프 개혁안을 놓고 보면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렇게 국정원 개혁특위는 실망스럽게 출발했다.

#처치위원회 #국정원 #셀프 개혁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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