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너마이트 던져 빵빵"... 아이들에게 '버럭'한 이유

[교단에서]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에서 밀양·강정을 떠올리다

등록 2013.12.16 17:51수정 2013.12.16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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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주로 5·6학년 담임을 했습니다. 몇 년 전에는 6학년에게 한국사를 가르쳤지만, 지금은 교육과정이 바뀌어 5학년에게 한국사를 가르칩니다.

지난 3월 선사시대를 시작으로 11월 한 달 동안은 조선시대 말과 일제 강점기 시대를 가르쳤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백성들이 어떤 취급을 받고 살아왔는지를 배우며 교실 안은 종종 안타까움과 슬픔에 젖은 한숨으로 가득 채워지곤 했습니다.

1910년 일제와 강제합병이 되고 나서 신속하게 추진했던 토지조사사업을 가르치는 날이었습니다. 가르칠 내용을 살펴 보니 국유지라는 표현이 나오더군요. 아이들에게 국유지와 사유지 개념을 먼저 알려줬습니다. 그리고 일제는 토지조사사업으로 어떻게 농민들의 땅(사유지)을 빼앗아 일제의 땅(국유지)으로 만들었는지, 이를 헐값에 일본 사람에게 되팔았는지를 살펴봤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한 아이가 질문을 하더군요. "선생님, 그럼 요즘에도 사유지가 국유지가 되는 경우가 있어요?" 질문을 듣고 잠깐 생각에 잠겼습니다. 지금까지 봐왔던 사유지가 국유지가 되는 과정에서 발생했던 가슴 아픈 사건들이 떠올라서였습니다. "음~음~" 빠르게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수업을 해야 하니까요.

답변으로 간단한 예를 들어줬습니다. 분필을 들어 칠판에 점 두 개를 찍고 "예를 들어 점과 점이 있어, 점과 점을 가장 짧고 빠르게 잇는 방법은?"하고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직선으로 연결해요!"
"그럼, 점과 점을 철도로 연결하려고 해. 또는 고속도로를 놓으려고 해. 그런데 직선으로 연결한 선 밑에 산도 있고 마을도 있고, 논도 밭도 있어. 그럴 때 국가가 산 주인, 집 주인, 논밭 주인에게 땅을 사들인 다음에 그걸 없애고 고속도로를 까는 거지. 이렇게 사유지가 국유지가 되는 거야."

"다이너마이트로 빵빵"? 버럭 화를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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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밀양주민 한 명이 지난 11월 30일 오후 경남 밀양시 상동면 여수마을 초입에서 122번 송전탑 공사현장 쪽을 향해 가던 중 대규모 경찰병력이 옆을 지나고 있다. ⓒ 이희훈


여기까지 말했는데 한쪽에서 남자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뭔가를 말하며 키득키득 거립니다. 들어보니 이렇습니다.

"야, 그럼 없앨 때 다이너마이트를 던져서 '빵빵' 터뜨리면 한 번에 되겠네."


이 말을 듣자 '빵빵'이란 말과 함께 제주도 강정마을(주민들이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벌이는 지역), 경남 밀양(주민들이 송전탑 반대 투쟁을 하는 지역)의 어르신들, 서울 용산(철거민 참사 사건이 일어났던 지역), 경기도 화성시 매향리(미군 폭격장 폐쇄 투쟁을 벌였던 지역), 경남 양산시 천성산(산 관통 고속철도 백지화 투쟁을 벌였던 지역) 등 여러 가지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때문에 아이들이 눈치채지 못하길 바라며 애써 누르려 했던 불편한 감정이 터져 나오고 말았습니다. 강정마을의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지 말라고 막아섰다가 경찰에게 질질 끌려가는 사람들 모습도 떠오르고, 8년이 넘게 더우나 추우나 싸우고 계신 밀양의 어르신들 모습도 생각났습니다.

이로 인해 잠시 말을 못하고 숨을 고르고 있는데, 아이들은 내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를 하며 웃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내 머릿속에서 어떤 영상들이 펼쳐지고 있는지 알 리 없을 텐데도 너무 쉽게 '빵빵 터뜨려버리자'는 아이들의 말이 왜 그렇게 끔찍하고 서운하던지. 한 아이가 질문을 한다며 손을 번쩍 들었는데, 결국 버럭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이제부터 질문하지 마. 질문에 답해 줬더니 그렇게 끔찍하고 폭력적인 상상이나 하고. 질문 안 받을 거야!"

아이들은 '선생님이 갑자기 왜 저러실까' 놀라며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아이들 잘못이 아닌데…. 난 왜 못난이마냥 아이들에게 화를 낼까 씁쓸한 마음으로 다시 숨을 고르고 수업을 이어갔습니다. 그렇게 수업을 하다가 또 어떤 아이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그럼 국유지가 사유지가 되는 경우도 있나요?"

이 질문에 일제 강점기 때 토지조사사업으로 억울하게 땅을 빼앗긴 수많은 농민들이 해방 이후 다시 땅을 제대로 돌려받았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동양척식주식회사를 통해 싼값에 땅을 사들였던 일본인들은 해방 이후 땅을 어떻게 처리하고 일본으로 돌아갔을까요? 친일파가 가지고 있던 땅들을 국가가 다시 제대로 돌려받았을까요? 아니면 원래 주인에게 제대로 돌아갔을까요? 아이들이 질문을 하면 할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과거는 반복된다

우리는 21세기 최첨단 아이티(IT) 세상을 산다고 합니다. 그래서 휴대전화도,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없던 일제 강점기는 아주 머나먼 옛날 일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수업을 하면서 알았습니다. 100년 전 토지조사사업 때처럼 21세기인 지금도 사유지가 국유지가 되는 과정은 여전히 생존권을 지키고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가슴 아프고 눈물 나며 억울한 일들로 가득하다는 것을. 일제 강점기를 가르치면 가르칠수록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과거는 반복된다"는 누군가의 말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토지조사사업을 가르치고 나니 다음 시간 수업 내용은 '전쟁에 동원된 우리나라'였습니다. 나라 없는 설움을 가장 크게 느낄 수 있는 내용이지요. 그런데 늘 이 부분을 가르칠 때 교과서에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설명이 너무 적은 데다 불분명하게 설명해 놓아 속이 상합니다. 교과서 내용은 딱 이만큼입니다.

'끌려간 사람들 중에는 여성들도 많았는데, 그중 젊은 여성들은 전쟁터로 보내져 일본군에게 많은 고통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교과서에는 세 줄도 안 되는 이 부분을 아이들에게 더 자세히 설명해 줬습니다. 아직 5학년이라 '성노예'라는 개념을 설명하는 것이 조심스럽긴 했지만, 우리가 절대 잊으면 안 되는 역사이기에, 전쟁이 약하고 어린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겨 주는지 알려 주기 위해 보충설명을 했습니다.

"어서 일본 정부에 사과도 배상도 받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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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1076차 수요집회' 당시 모습. 충남 대천여자고등학교 한국사동아리 학생들이 참석해 일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손으로 하트모양을 만들며 응원하고 있다. ⓒ 유성호


수업을 듣고 나서 쉬는 시간, 여자아이가 와서 물었습니다. "선생님, 그럼 '위안소'에 갔던 일본군인들 가운데 이 일을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은 없나요?"

아마 이 사건에 대해 증언할 수 있는 할머니가 60여 명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 이야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져서 물었나 봅니다. 아이는 "빨리 일본 정부한테 사과도 받고 배상도 받았으면 좋겠어요, 할머니들이 너무 안 됐어요"라며 안타까워 했습니다.

'위안부' 피해를 입은 여성의 수가 통계에 따라 최소 4만에서 최대 30만 명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80~90%가 식민지 조선 여성이었다고 하니 위안소 문제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군인부터 행정 관료·민간인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을 알고 있으면서 입을 다물고 있는 걸까요.

1990년 시작해 200명이 넘는 할머니께서 한 주도 쉬지 않고 해온 '수요집회'가 20년을 훌쩍 넘겼고, 이제 할머니들은 몇 분 남아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과서에조차 '위안부' 문제를 이렇게 간단히 다루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70~80%는 위안부 문제를 모르고 있다는 기사도 보입니다. 이렇게 보니 다시 그 말이 떠올랐습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과거는 반복된다.'

대한민국 국민이 모두 눈을 부릅뜨고 '위안부' 문제가 바르게 해결되는 것을 끝까지 지켜볼 것이라는 믿음 속에서 할머니들이 안심하고 눈을 감으시길 바라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사인천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한국사수업 #토자조사사업 #일본군위안부 #친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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