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배추 안에 먼지 있을 것 같아"... 무슨 섭한 말씀을

[사연이 있는 농사④] 양배추 이야기

등록 2013.12.17 13:55수정 2013.12.17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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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잎을 애벌레에게 내주면서도 잘 자란 양배추 ⓒ 오창균


텃밭농사를 시작한 이후로 해마다 양배추를 심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양배추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는 희로애락이 있으며,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음식재료로서의 매력도 빼놓을 수 없다. 5월 초순, 양배추 모종을 심고 있었다.


"케일이네요. 쌈으로 먹으면 맛있겠다. 몇 개만 줄 수 있어요? 팔아도 되고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양배추의 둥근 속잎이 생기기 전에는 열명 중 아홉은 케일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양배추와 케일 잎이 거의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며, 케일은 잎을 먹는반면에 양배추는 잎을 떼어낸, 둥글게 속이 꽉찬 하얀배추만 먹어봤기 때문이리라.

"케일 아니고 양배추입니다. 처음에는 똑같아서 구분하기 어렵죠. 잘 키워보세요."

재배법과 관리요령등을 알려주면서 같은 농장에서 텃밭을 하는 아주머니께 모종 대여섯 개를 드렸다. 날이 점차 더워지면서 성장속도도 빨라지는데, 손바닥 만큼 잎이 자라게 되면 케일로 착각하고 잎을 몇 장씩 따가는 경우도 생긴다. 상추를 조금씩 가져가는 것은 괜찮지만 잎이 뜯겨나간 양배추를 보면 쓴웃음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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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만 보면 케일과 구분이 어렵다. 모종에서 양배추로 자라는 과정(왼쪽 상단에서 시계방향으로) ⓒ 오창균


"잎과 같은 보호색으로 위장한 애벌레"


많은 사람들이 양배추를 벌레 때문에 키우기 어렵다고 말한다. 봄과 여름에 두 번 심을 수 있는 양배추는 나비가 활동하는 시기와 겹치기 때문이다. 나비애벌레의 식성이 보통은 아니라서 숫자가 많으면 며칠새 잎맥만을 남기고 모두 갉아먹을 정도다. 그래서 한달에 두세 번 텃밭에 가는 도시농부에게는 쉽지 않을 수 있다. 더구나 살충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사라면 일일이 손으로 잡아줘야 한다.

배추흰나비의 애벌레와 양배추 잎의 색깔은 같아서 천적의 눈을 속이기 쉽다. 다른 색깔을 가진 나비들은 양배추에 알을 낳지 않는다. 쉽게 눈에 띄기 때문일 것이다. 풀과 함께 키우는 텃밭에서는 신기하게도 애벌레피해가 거의 없다. 아마도 천적 곤충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닐까. 애벌레에 심하게 공격을 당하게 되면 속잎을 채우는 결구(배추과 작물의 속잎이 안으로 오그라드는 현상) 가 늦어지거나 성장을 멈춘다. 그래서 나비가 날아다니면 경계해야 한다.


양배추는 잎이 부채만큼 크게 되면 줄기의 가운데서 탁구공처럼 작은 결구가 시작된다. 이때부터는 애벌레에 의한 피해도 줄어든다. 즉, 양배추는 속이 차는 결구가 시작될 때까지만 잘 키우면 애벌레 피해는 거의 없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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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배추잎과 같은 색깔의 애벌레(왼쪽 상단)에 피해를 심하게 당하면 수확이어렵다. 재식거리(작물간의 심는 간격)도 너무 좁아서 잘 자라지 못해 피해를 키웠던 기사속의 아주머니 양배추 ⓒ 오창균


겹겹이 싸여있는 양배추 잎속에 먼지는 없다

"양배추가 이렇게 크는군요. 먹어만 봤지 자라는 건 처음봐요. 그런데 먼지가 (결구) 잎속에 들어가서 깨끗할 것 같지는 않아요."

양배추의 속잎이 단단하게 생기는 결구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잎이 안으로 접히면 먼지같은 개 그 속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렇지 않다. 양배추의 결구는 바깥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고, 첫 결구잎이 생기면 그속에서부터 한 잎 두 잎 겹치면서 위로 자라기 때문에 먼지와 같은 이물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모종을 심은 뒤 약 80~90일이면 수확을 할 수 있는 양배추는 1년에 두 번 심는 이모작이 가능한 작물로서 7월 중순에서 8월 초에 모종을 심으면 늦가을에 수확할 수 있다. 애벌레에 의한 피해말고도 조심해야 할 것이 한여름 고온다습한 장마철에 뿌리부분과 결구가 된 배추통이 짓물러지는 무름병이다. 또한 가을에도 이상고온으로 더운날씨가 지속되면 배추통이 쪼개지는 열과현상이 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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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기후가 원산지인 양배추는 고온다습한 기후에 짓물러지는 무름병(왼쪽)과 높은 기온의 날씨가 지속되면 통이 쪼개지는 열과현상(오른쪽)이 발생할 수 있다. ⓒ 오창균


양배추를 수확하는데 모종을 나눠드렸던 아주머니가 찾아왔다. 자신의 양배추는 잘 안됐다면서 원인을 알려달라 했다. 그의 텃밭에서 본 양배추는 재식거리(작물과 작물사이의 거리)가 일단 너무 좁았다. 보통 60~70cm는 되어야 하는데 절반에 그쳐서 영양분을 두고 서로 다툼을 하느라 크지 못했으며 제때에 애벌레를 퇴치 못해 광합성을 통한 양분공급도 이뤄지지 않아 결론적으로 양배추 농사가 망했다. 원인을 설명해주고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작지만 통통한 양배추 두 통을 안겨주자 실망했던 얼굴이 금방 양배추처럼 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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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곤충들이 살고 있는 풀밭에서는 천적으로 인해 양배추의 벌레피해가 거의 없다. 풀을 잘 활용하면 농사에 유익한 것들이 많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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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통통한 양배추를 수확했다. ⓒ 오창균


#양배추 #도시농업 #케일 #텃밭 #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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