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견고한 줄 알았는데 허술해
분단도 우스꽝스럽게 작동하고 있다"

[저자와의 대화]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 펴낸 노순택 작가

등록 2013.12.18 18:08수정 2013.12.23 16:06
6
원고료로 응원
a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 저자 노순택 사진가(왼쪽)가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인권중심 사람 다목적홀에서 열린 저자와의 대화에서 "사회에 나오기 전에는 사회가 굉장히 견고하다고 생각했는데, 나와 보니 허술한 점도 많이 보이듯 분단도 그렇다"며 "분단이 남긴 잔해들을 수집하다 보니 분단이 상당히 우스꽝스럽게 작동하더라"고 말했다. ⓒ 유성호


"나를 처음 연평도로 보낸 사람은 안상수가 아니었지만, 두 번, 세 번, 네 번에 걸쳐 나를 연평도로 보낸 사람은 안상수였다. 분단정치의 작동법을 보여주던 몸짓, 보온병을 포탄으로 승화시키던 고상한 상상력, "전쟁이 나면 곧바로 입대해 싸우겠노라"는 단호한 의지 앞에서 나는 늘 갈팡질팡했다." -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 15쪽

사건은 2010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천시 연평면 연평도에서 벌어진 포격사건 후, 모두가 사건을 파악하느라 정신없던 때. 안상수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연평도의 한 민가에서 "이것이 포탄"이라며 새카맣게 그을린 보온병을 들고 외친다.

이를 접한 노순택 작가는 당시 일기에 "적나라한 블랙코미디.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태 앞에서 우리는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라고 썼다. 이후 그는 연평도에서 '포탄이라 불린 보온병'의 행방을 추적하는 한편, '분단정치인 안상수'의 행보와 서적·발언들에 대해 일기형식으로 기록한다. 3년간의 일기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통해 펴낸 것이 바로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다.

17일 오후 7시 30분 서울 마포구 서교동 <인권재단 사람> 강의실에서 열린 '저자와의 대화'는 노 작가와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의 대담으로 진행됐다. 이날 행사에서 그는 "분단의 잔해들을 수집하다 보니 분단이 상당히 우스꽝스럽게, 다시 말해 '오작동'으로 작동하더라"며 "안상수 전 대표의 '포탄 발언'도 코미디지만, 웃을 수만은 없는 코미디였다"고 말했다.

"안상수는 내게 애증의 정치인... 허술하게 작동하는 분단의 모습"

a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 저자 노순택 사진가가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인권중심 사람 다목적홀에서 열린 저자와의 대화에서 "사진은 내면이 아닌 표면을 담는 매체이다"며 "내면에 대해 생각하고 의심하는 것은 사진을 보는 사람의 몫이고 찍는 사람은 표면을 담아내는 작업이다"고 말했다. ⓒ 유성호


"사회에 나오기 전에는 사회가 굉장히 견고하다고 생각했는데, 나와 보니 허술한 점도 많이 보이듯 분단도 그렇습니다. 분단이 남긴 잔해들을 수집하다 보니 분단이 상당히 우스꽝스럽게 작동하더라고요. 또 판결 난지 하루 만에 사형 집행한 인혁당 사건과 이번 내란음모 사건도 그렇고, '이걸 그대로 믿어도 되는 거야?'란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는 특히 안상수 전 대표는 군 경험이 없지만, 당시 안 대표 옆에서 함께 보온병을 '포탄'이라고 주장하던 사람들은 각각 포병육군 중장과 공군 중위 출신이라며 "안 대표는 그렇다 치더라도 명색이 장군이었던 사람들이 그렇게 표현한다는 건 코미디 아닌가"라 비판했다. 육군중장 출신인 당시 황진하 국회의원이 안 대표가 든 보온병을 가리키며 "이게 76mm, 저게 122mm 방사포 같다"고 한 말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나만이 옳은 존재고 정치인 안상수를 틀린 존재로 놓고 싶지는 않았다"며  안상수에 대해 애증을 느낀다고 말했다. '보온병 포탄'을 찾는 과정과 정치인 안상수에 대한 내용을 책으로 펴내면서, 한편으로는 안상수의 시선으로 바라보려 노력했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책에 실린 사진들을 청중들에게 하나씩 보여주며 설명을 이어갔다.

"(포탄이 발견된) 목조건물이 왜 여기 있었을까요. 이곳이 다방이었기 때문입니다. 시골 어촌마다 꼭 하나씩 있는 곳이 다방인데, 왜냐면 뜨내기 어부들이 머물 시설이 별로 없으니까요. 그럼 왜 이 자리에 보온병이 있었나? 다방마다 반드시 필요한 게 스쿠터와 커피를 담을 보온병 아닙니까. 그렇다보니 보온병이 발견됐던 겁니다."

강연 말미 노순택 작가는 "우리 안에 또다른 북한의 모습이 없는지 항상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한 사회가 '김일성'이라는 이름만 나와도 경기를 일으키는 모습은 지나친 과민반응일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김수영 시인이 1960년에 썼다는 '김일성 만세'라는 시를 예로 들며 "김수영 시인이 살아있었으면 종북 시인이라고 몰리지 않았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우리 사회가 북한보다 근사하고 우월하다면 그런 것에 대해서도 얘기해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김일성 만세'라는 얘기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를 말하는 것이 인신을 압박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 얘기는 전부 종북으로, 친북으로 몰리는 게 요즘 사회잖아요. 우리에게 정말 표현의 자유, 정치의 자유가 있다면 지금과는 달라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반공'이라는 이름 아래 진행되는 시민 탄압을 지적하며 "김일성을 가장 적절하게 사용한 사람들은 반 김일성주의자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일성을 때려 죽여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김일성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었다"고 꼬집으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다음은 '헌법 위에 김일성이 있다'던 저자의 에필로그다.

"박근혜 정부는 오롯이 오작동으로써 탄생했다. 국가정보원이 댓글로 국가 정보를 교란하고, 국군 사이버사령부가 트위터로 시민과 전투를 치르고, 경찰과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쓰레기통에 처박는 사태, 그 '대남 심리전'의 혁혁한 전과가 이 정부를 가능케 했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무단공개로 시작돼 내란음모 사건 수사와 정당해산심판 청구로 이어지는 이 숨 가쁜 공안몰이가 모두 나라사랑의 이름으로, 고로 반공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다.

이 얼마나 김일성에게 감사한 일인가. 김일성은 반김일성주의자의 만능보검이다. 세상에, 헌법 위에 김일성이 있다." -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

a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 저자 노순택 사진가가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인권중심 사람 다목적홀에서 열린 저자와의 대화에서 참석자들의 사인 요청이 있자, 직접 책에 사인을 해주고 있다. 이날 노 작가는 "어떻게 하면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사진을 잘 찍고 싶으면 세상과 사람에 대해 관찰을 하는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 유성호


#노순택
댓글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4. 4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5. 5 하이브-민희진 사태, 결국 '이게' 문제였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