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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관 일기] 엄마 역할 제대로 하지 못한 죄책감... 국회는 노동권 사각지대

등록 2013.12.27 12:00수정 2013.12.2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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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은행 직원이야? 넌 돈 달라는 거 말고는 엄마한테 할 말이 없니?"

큰 아이가 시험기간이라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겠다고 했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립도서관을 찾았다고, 사설 독서실처럼 돈이 안 든다고 했다. 그런데 집에서 거리가 좀 있어서 오가는 시간이 걸리니 저녁밥을 사먹겠단다. 즉, 밥값을 달라는 거다.

벌써 10년... 아들은 고교생이 됐다

아이는 일 주일에 한 번 아빠에게 용돈을 받는다. 아빠한테 말하라고 하니, 주무시는데 용돈 달라고 깨우기가 좀 그렇다며 이번만 엄마가 주면 안 되냐고 한다. 그런데 그만 말이 저렇게 나가고 말았다.

나도 안다. 잘못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날 바라보는 아이의 눈빛을 보면서 후회했다. 그런데도 그 새벽, 말을 주워 담기가 어려웠다. 심지어, "알겠다"며 그냥 가는 아이에게 휴대폰 메신저로 연이어 잔소리를 했다.

"(지금은) 그냥 서로 말 안 하는 게 좋은 것 같아."

아이의 이성적인 답변에 더 화가 났다. 오전 6시를 조금 넘긴, 아이가 학교 가는 시간에 일어난 일이다. 종일 마음이 안 좋았다.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아이 밥 먹여 보내려면 나는 5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십 분 간격으로 맞춰 놓은 알람이 세 번은 울려야 눈이 떠진다. 잊지 않고 예약 취사를 누르고 잔 덕에 밥은 다 되어 있다. 보글보글 김치찌개를 올려 놓고, 버섯을 볶는다. 새 김을 자르고, 부족한 비타민 공급을 위해 오이나 과일을 깎아 놓고, 계란 세 알 들고 망설인다. '어제는 계란찜을 했으니 오늘은 계란말이를 해줄까.' 그냥 간편한 계란 프라이로 결정한다.

밥상을 다 차려놓고, 아이를 깨운다. 용하게도 벌떡 일어난다. 아이가 밥 먹는 동안 마른 빨래를 개고, 어제 밤늦게 해놓은 빨래를 널고, 걸레를 빤다. 6시가 넘어 큰 아이가 나가면 이제 내 차례다. 출근 준비를 시작한다. 씻고, 화장하고, 옷을 챙겨 입으면 아무리 서둘러도 한 시간은 후다닥 지난다.

찌개를 다시 데우고, 밥을 떠놓고, 둘째와 막내를 깨운다. 아이들은 두 번 세 번 깨워야 겨우 일어난다. 추우니 따뜻한 옷 입고 가고, 날씨 흐리니 우산도 챙기라고, 얼굴에 로션 바르고, 꼭 머리 빗고 가라고, 비몽사몽 겨우 눈뜨고 있는 아이들을 향해 고장 난 라디오처럼 떠들고, 머리 한 번 쓰다듬고, 부리나케 집을 나선다.

새벽부터 서둘렀건만 정작 난 아침밥도 못 먹었다. '통상적' 엄마 역할에는 못 미치지만 청소, 빨래 등 기본적 집안일은 늘 쌓여 있다.

친정 어머니가 와 계시는 주중 며칠은 여유가 있어 새벽 수영을 다닌다. 몇 년 전 일하다 두 번 쓰러지고 나서 마음 먹고 시작한 운동이다. 젊을 적엔 일하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나이가 드니 살면서 오래 일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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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풍을 타고 날아온 중국발 미세먼지로 인해 '초미세먼지 주의보 예비단계'가 발령된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 하늘이 미세먼지로 뿌옇게 보이고 있다. ⓒ 유성호


보좌관 일은 체력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어지는 야근에도, 며칠 밤을 새워도 흔들림 없는 집중력을 가져야 한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일이 많다. 우리끼리 "국회는 바쁜 때와 아주 바쁜 때가 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일할수록 부족함을 느끼니 공부도 해야 한다. 정보도 실력으로 취급되는 곳이라 인간관계도 중요하다. 회의도, 모임도, 행사도 많다. 일 주일이 분주하다.

내가 보좌관 생활을 시작했던 2004년, 큰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1학년 학부모가 챙겨야 할 것이 그렇게 많은지, 그때는 전혀 몰랐다. 학교에 데려다 준 적도, 숙제나 받아쓰기를 봐준 적도 없다. 알림장에 사인은커녕 준비물도 챙겨준 적이 없다.

진보정당에서 시작한 보좌관 생활

진보정당이 국회의원을 배출한 첫 해였기에 그 책임감은 너무도 막중했다. 아이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기회가 될 때마다 아이에게 말했다. "네 인생은 너 스스로 책임져야 하며, 인간은 궁극적으로 외로운 존재니까 혼자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이다. 이렇게 말해 놔야 할 것 같았다. 늘 바쁜 엄마의 도움을 기대하다 상처 받을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아이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더는 말하지 않아도 자기 인생은 온전히 자기 책임이라는 것을 안다. 이제는 내가 시간이 있어도, 아이의 시간이 부족하다. 점차 함께 나눌 말도 줄어들고 있다. 청소년이 용돈을 매개로 부모에게 말을 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의 과한 반응은 '아무것도 못해주는 바쁜 엄마'라는 죄책감이 잠재의식 속에 있었기 때문이리라. 게다가 그 새벽, 나는 졸리고 힘들었다.

일반적 기준에서 보좌관이 '괜찮은 직업'인지는 잘 모르겠다. 의원실마다 보좌관(4급 상당 별정직국가공무원) 2인, 비서관(5급) 2인, 비서 3인(6급 1인, 7급 1인, 9급 1인), 인턴 2인을 둘 수 있다(보좌관은 4급 이상을 칭하지만 이 글에서는 편의상 보좌직원 전체를 통틀어 보좌관으로 명기함).

보좌관의 임명권자는 누구일까?  5급 이상은 국회의장이, 6급 이하는 사무총장이 임용한다. 국회의원이 임용을 요청하면 국회의장과 사무총장이 일종의 '수락'을 하는 형식적 절차다. 실질적으로는 국회의원이 '알아서' 채용한다. 공채보다 인맥을 통한 채용이 더 흔하다.

보좌관의 임기는 얼마나 될까? 국회의원 임기는 4년이지만 보좌관 임기는 '국회의원 마음대로'다. 국회의원 도장이 찍힌 면직요청서 한 장이면 언제든 해고가 가능하다. 유독 보좌진 교체가 잦아 악명(?) 높은 의원실도 있다. 고용안정성은 바랄 수 없는 곳이다.

보좌관은 사실 법률적 근거가 모호한 특별한 직업이다. 보좌관에 대한 법적 근거는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 제9조에 있다. 법 제명에 의하면 "등"에 해당한다. (인턴은 별도의 '국회인턴제 운영지침'에 따라 채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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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개혁 특위' 국회 본회의 통과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정치적 중립성 강화를 위한 제도개선 특별위원회 구성결의안이 찬성198표, 반대7표, 기권29표로 가결됐다. 국회의원은 홀로 활동하지 않는다. 여러 보좌진들과 함께 활동한다. ⓒ 유성호


또, 보좌관은 국가공무원법에 의한 '별정직공무원', 즉 '특정한 업무를 담당하기 위하여 별도의 자격 기준에 따라 임용되는 공무원으로서 법령에서 별정직으로 지정하는 공무원'이다. 정당법에서는 정당가입이나 정치활동이 가능한 공무원으로 '특별한' 예외자라 규정하고 있다. 임용 및 퇴직은 국회인사규칙, 국회별정직공무원 인사규정 등에 의하여 이뤄진다. 보수는 '공무원 보수규정'의 적용을 받고, 그 밖의 사항에 대해서는 국가공무원법, 공무원수당 등에 관한 규정, 국회공무원 복무규정의 적용을 받는다.

300개 의원실에 9명씩, 무려 2700명이 일하고 있으며 입법부를 지탱하는 막중한 책무를 지니는 사람들의 법적 지위는 이처럼 복잡하고 엉성하다.

역할 및 임무가 보좌관과 유사한 또 하나의 별정직 국회공무원 '교섭단체 정책연구위원'에 대해서는 소속, 임면 등에 관한 사항을 국회법에서 규정하고, 국회법의 위임에 따라 '교섭단체정책연구위원 임용 등에 관한 규칙'에서 정원·직급·자격 및 임면절차 등을 별도로 정한 것과 차이가 있다.

게다가 2013년 8월, '국회의원수당 등에 관한 법률'에 보좌직원의 당연 퇴직, 결격사유에 관한 2개 조항이 신설되었다. 국회 회의를 방해하여 5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 받고, 그 형이 확정되면 당연 퇴직 대상이 되며, 이후 5년 동안은 보좌직원으로 임용될 수 없도록 했다.

'정치 1번지' 국회에서 노동은...

회기 중 수당 없는 야근과 공휴일 근무는 기본, 밤샘·재택근무는 옵션, 해고는 아무 때나 가능, 근속 여부 예측불가 등 근로조건만 보면 국회는 '정치 1번지'가 아니라 '노동기본권 사각지대 1번지'로 보인다. 반면, 앞서 말한 것처럼 처벌 및 결격사유는 강화되었다. 그럼에도 집단행동을 할 수 없는 게 보좌관이라는 직업세계의 본 모습이다. 그러니 직업인 보좌관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한 번 더 신중히 생각해 보기 바란다.

물론 정책전문가로 직업적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보좌관도 상당수 있다. 해당 상임위에서 오래 일하는 것이 특징이다. 훌륭하다.

하지만 국회의원의 정책은 정치철학과 신념이 담긴 것이며 소속 정당의 입장과 무관하지 않다. 또, 아무리 정책 담당자라해도 정책만 하는 건 아니다. 선거도 뛰어야 하고, 지역도 알아야 한다. 정치에서 무색무취 중립적인 정책이란 없다.

따라서 보좌관은 직업인이기에 앞서 기본적으로 정치인이다. 동시에 정치인의 참모다. 때문에 함께 일하는 의원과 정치적 동반자라는 신뢰가 없으면 괴로운 직업이다. 나는 진보정당 소속이라는 행운으로 동지애를 바탕으로 일할 수 있었다.

내가 보좌관으로 10년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아이들은 스스로 컸다. 나와 아이들의 시공간은 앞으로도 좀체 겹치지 않을 것이고, 엄마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는 죄책감은 끝까지 생채기를 남길지도 모른다. 그래도 가능하면 오래 일하고 싶다. 정치를 통해 실현하고 싶은 것이 아직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정치가 나빠진 사회에 아이들을 남겨 놓고 싶지 않다.

어쨌든 지금은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 큰 아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실은 엄마도 후회하고 있어. 도서관 가서 공부한다고 한 걸 먼저 들었어야 하는데, 왜 돈 달라는 말이 먼저 들렸는지. 엄마가 일종의 불안감이 있는지도 몰라. 돈이라는 매개체도 없으면 너랑 아무런 대화도 없겠구나 싶은. 그래서 자꾸 민감하게 반응하나봐. 아침부터 맘 상하게 해서 미안하다."

아이는 종일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았고, 나는 밤늦게 들어온 아이를 붙잡고 입으로 같은 말을 했다. 우리는 앞으로 나가고 있다. 그렇게 믿는다.

PS) 며칠 뒤 아이는 운동화를 사달라고 했다. '엄마가 한국은행으로 보이냐'고 소리 지를 뻔했으나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고, 살짝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안 돼."
덧붙이는 글 박선민 기자는 박원석 정의당 의원실 보좌진입니다.
#국회의원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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