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 일어난다면 무코지마 지역 생존율 5%"

[일본 마을만들기 견학 ⑤] 네 번째 방문지, 무코지마 '히토코토카이' 방재마을

등록 2013.12.31 15:01수정 2013.12.31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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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코지마 '히토코토카이' 방재마을을 방문한 군포의제 21 방문자들 ⓒ 유혜준


일본, 하면 지진을 빼놓을 수 없다. '푸른희망군포21실천협의회(아래 군포의제21)' 일본 현장 방문 참가자들도 잠깐이나마 일본의 지진을 경험했다. 20일 밤이었다. 몇몇이 호텔 방에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어지러워졌다. 이 느낌이 뭐지? 일행은 서로를 쳐다보면서 "이거, 지진이지?" 물었다. 조금 뒤, 같은 흔들림이 다시 느껴졌다.

"맞아, 지진이야."

다행히 그 흔들림은 오래 가지 않았다. 두어 차례 더 이어지다가 사라졌던 것. 일본에서 이렇게 가벼운 지진은 일상적이라서 크게 놀랄 일은 아니지만, 일본 전체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지진은 일본에서 여러 차례 일어났다. 그 가운데 가장 큰 것을 꼽으라면 1923년의 관동 대지진, 1995년의 고베 대지진, 2011년의 동일본대지진일 것이다. 2011년의 동일본대지진은 후쿠시마 원전사고까지 불러온 가장 큰 피해를 입힌 지진으로 기록될 것 같다.

20일, 군포의제21 일본 현장방문 참가자들이 찾은 곳은 도쿄 스미다 구(區)의 무코지마. '히토코토카이 방재마을'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무코지마는 도쿄 도심에서 북동쪽으로 7km남짓 떨어진 스미다 구(區) 북부 일대를 말한다. 19세기까지는 스미다 강의 벚꽃과 함께 큰 별장이 들어선 아름다운 전원풍경이 펼쳐지는 지역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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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코지마 마을을 둘러보 있는 군포의제21 일본현장 방문자들 ⓒ 유혜준


이 지역이 주택 밀집지역으로 바뀐 것은 관동대지진 이후. 대지진의 피해를 입은 이들이 몰려들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주택이 밀집해서 지어지다 보니 좁고 구불구불한 길이 많은 마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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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이 문제가 된 것은 만일 도쿄에 대지진이 일어난다면 지역의 생존율이 5%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란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토시야 야마모토(메이지대· NPO 법인 무코지마학회 부이사장) 교수의 주장이다. 그래서 이 마을에서 시작한 것이 '이치테라고토토이 프로젝트'다.


'이치테라고토토이 프로젝트'는 대지진이 일어나도 다른 방재단지로 도망치지 않고 마을주민들이 협력해서 마을을 지키자는 목적으로 '마을만들기'를 하자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은 1985년.

"항상 좌절과 희망을 안고 28년 동안 활동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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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코지마는 좁은 골목길이 많은 주택 밀집단지. ⓒ 유혜준


군포의제21 일본 현장방문 참가자들을 맞이한 사하라 '이치테라고토토이를 방재마을로 만드는 모임' 사무국장은 19885년부터 시작된 '방재마을' 만들기 활동을 이렇게 요약했다. 28년 동안이나 마을사람들이 방재마을 만들기를 지속해왔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군포의제21 방문자들은 사하라 국장의 설명이 끝난 뒤, 다카하라씨의 안내로 마을을 둘러보았다.

무코지마에는 6개의 주민자치회와 지역유지 모임이 있는데, 그것이 하나의 모임으로 구성한 것이 '이치테라고토토이를 방재마을로 만드는 모임'이다. 일본의 고령화를 반영하듯 이날, 군포의제 21 방문자들을 맞이한 '방재마을 만들기' 관계자들은 전부 60대 중반을 훌쩍 넘어 보이는 노인들이었다.

이치테라와 고토토이는 무코지마에 있는 초등학교 이름이다. 그 이름을 딴 것은 "동네자치회가 어린이나 고령자들을 보살피는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만일의 경우 피난지가 이들 초등학교이기도 하다.

"무코지마 마을은 면적이 7헥타르이며, 5천세대로 약 1만2천여 명이 살고 있다. 도쿄 안에서도 인구밀도가 높은 곳 중의 하나인데, 목조건물도 많다. 좁고 막다른 골목이 많고 목조건물이 많아서 재난의 피해를 입기 쉬운 곳이기도 하다. 이런 마을에 타지 않는 건물을 세우고 길을 넓혀 지진에 쉽게 대응할 수 있는 마을로 만들자는 게 활동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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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코지마 히토코토카이로 넓어진 마을 길. ⓒ 유혜준


당연히 쉽지 않다. 아니, 어렵다. 이 지역은 토지주와 건물주 그리고 사는 사람이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건물 하나에 관련자가 3명인 것이다. 이들이 전부 동의해야 재건축이든 재개발이든 이뤄질 수 있는 상황.

사하라 국장은 "땅 주인이 허락하면 전면철거하고 다시 만드는 식의 도시계획이 통하지 않는 마을"이라며 "이 지역은 '수복형 마을만들기'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살면서 조금씩 고쳐나가는 마을만들기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이 지역은 가내수공업형 공장이나 상점이 주택가 안에 들어와 있는 특색이 있다.

"이런 지역이지만 이곳에 계속 살고 싶다는 주민들이 많다. 도쿄의 다른 지역에서는 이웃집과 인사하거나 교류를 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삼기도 하지만, 이 지역은 다르다. 지진 등이 일어나면 옆집과 이웃집의 상황을 빨리 알아서 대응하는 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손자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마을만들기를 하고 싶다. 거북이처럼 속도가 늦지만 확실한 마을만들기를 하려고 한다."

방재마을 만들기를 시작하면서 마을 주민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대지진과 같은 재난이 일어났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넓은 길이다. 도망칠 수 있는 길이 필요한데, 이 지역은 좁은 골목길을 넓혀야 하는데, 그러려면 땅이 필요하다.

"히토코토카이를 하기 전에는 누구도 자기 땅을 공짜로 내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히코토토카이를 시작하면서 방재마을 만들기를 이해하게 되고 조금씩 양보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마을에서 하는 일에 할 수 있는 한 협력하자고."

이렇게 해서 조금씩 길을 넓힐 수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아직도 좁은 길이 많지만 100년 후에는 전부 다 넓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막다른 골목도 많은데 이것 역시 없애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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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손으로 불리는 빗물 저장시설. 지하에 저수 탱크가 있으며 펌프로 물을 퍼올릴 수 있다. 이금순 군포의제21 운영위원장이 물을 퍼올리고 있다. ⓒ 유혜준


그뿐이 아니다. 주민들은 예전에 공동우물에 착안, 빗물을 이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찾아냈다. 가옥의 지붕에 내리는 빗물을 지하탱크에 모아서 저장한 뒤 그 물을 펌프로 길어 올려 사용한다는 것으로 마을 곳곳에서 이런 시설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을 '로지손(路地尊)이라고 한다. 이 물은 지진이 일어났을 때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며, 현재는 빈 터에 채소 등을 재배하는데 사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디자인을 제안해서 마을 분위기를 바꾸는 작업도 더불어 해나가고 있다. 어린이놀이터를 새로 디자인하거나 창고에 페인트칠을 해서 새롭게 단장하는 일, 상점가와 협력해서 가로등을 설치해 어두운 길을 밝히는 일 등도 포함된다.

또한 마을 정보지를 직접 발행하고 있으며, 방재마을 만들기에 젊은 사람들의 참여를 높이기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마을주민들은 '중학생'들을 관심의 대상으로 꼽았다.

"여기는 도심과 가까운 지역이기 때문에 만일 대재난이 일어난다면 젊은 사람들이 다 불려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럴 때 마을에는 노인과 어린이들만 남게 된다. 그래서 중학생들이 마을을 위해서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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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코지마 마을을 군포의제 21 일본 현장방문 참가자들이 돌아보고 있다. ⓒ 유혜준


문제는 중학생들이 방재마을 만들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공부'. 중학생들의 참여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짜내고 있다는 게 사하라 국장의 주장이다. 방재훈련을 '놀이'로 만들어서 아이들의 참여를 유도한다는 것.

"지난 2월에 행사를 했다. 지진이 언제 올지 모르지만 추운 계절인 2월의 한밤중에 지진이 일어났다는 가정을 했다. 여러 가지 코너를 만들었다. 난방시설을 만드는 법, 은신처를 만드는 법, 요리하고 남은 것으로 불을 만드는 방법, 통나무로 난로를 만드는 법, 숯으로 버섯을 구워먹는 방법 등을 직접 했다. 아이들은 자연에서 불을 접한 적이 없어서 재미있어 했다. 버섯을 굉장히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방재마을 만들기가 계속 잘 이뤄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급격한 고령화가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으며, 빈집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주거주택단지로의 변화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것은 결국 마을공동체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고, 공동체 의식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을만들기는 공무원이나 그들의 실적을 위해 있는 게 아니다. 마을은 주민의 것이다. 주민들과 같이 협력한다는 것이 의미 있다. 그러려면 주민들이 자기 마을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 마을 멋있지?'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점점 쌓여가면서 (마을의) 역사가 된다."

사하라 국장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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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시야 야마모토 메이지대 교수 ⓒ 유혜준


1998년 8월, 무코지마에서는 국제디자인 워크숍이 '가와노테 클럽'이라는 시민단체 주최로 열린다. 2주간 동안 워크숍을 열렸고, 15개국에서 150여 명이 참석했다. 한국에서도 최효승 교수 등 2명이 참석했다. 가와노테 클럽은  NPO 법인 '무코지마 학회'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게 토시야 교수의 설명.

하지만 1990년대의 일본은 거품경제가 붕괴되면서 경제 불황이 닥쳤고, 그 영향은 무코지마에도 끼칠 수밖에 없었다. 공터와 빈집이 늘어나면서 마을의 장래에 대한 전망이 보이지 않게 되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가와노테 클럽이 중심이 돼 무코지마 지역단체와 함께 '무코지마 박람회'를 열게 된다. 2000년 10월이다. 박람회가 열리면서 무코지마에는 예술가들이 몰려와 다양한 예술전시회가 열렸다.

이후 무코지마에서는 매년 '아트 프로젝트'가 열리게 되는데, 그 중심역할을 무코지마 학회가 하고 있다. 히토코토카이 방재마을과 무코지마 학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때문에 군포의제21 방문자들은 무코지마 마을을 방문한 뒤, 토시야 교수를 만났던 것이다.

"무코지마 학회는 단순히 무코지마 지역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무코지마에 대한 학술적, 예술적 성과를 지역에 환원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

토시야 교수의 말이다.

"무코지마 학회는 전문가나 교수, 예술가들이 중심이기는 하지만 그들이 전부는 아니다. 히토코토카이와 상점가나 다른 NPO 단체, 지역의 다른 단체들과도 연계해나가고 있다. 아트 프로젝트와 같은 이벤트는 내부의 성과를 발표하는 장이며,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 생각하는 자리가 된다."

이런 이베트와 관련, 도쿄도에서 지원을 한다.

"아트 이벤트 부분에서는 도쿄도에서 돈을 받아 진행하지만 방재만들기 부문에서는 돈을 받지 않는다. 도시재생사업에서 하드적인 부분, 도로건설이나 공원 조성 등은 행정에서 참여하지만, 지역을 움직이고 조정하는 역할은 행정에서 하지 않고 있다."

아트 프로젝트에 히토코토카이 즉 방재마을 만들기 주민들이 함게 참여한다는 것이 토시야 교수의 설명이다.

주민과 NPO가 함께 하는 무코지마의 도시재생 사업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금까지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뒀지만 이것이 '지속가능'하려면 사하라 국장의 말대로 주민들이 언제까지나 마을이 자신의 것이라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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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시야 야마모토 메이지 대학 교수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군포의제 21 일본 현장 방문 참가자들. ⓒ 유혜준



#군포의제?21 #일본대지진 #방재마을 #무코지마 #마을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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