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통연구원 이재훈 본부장의 2011년 보고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철도 경쟁체제 도입'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이 보고서는 '경쟁체제 도입'이 '민영화'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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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코레일 자회사 설립을 밀어붙인 정부 인사들이 국민에게 두고두고 칭찬받기는 어려워보인다. 그들이 내세운 '경영정상화'나 '경쟁체제 도입'의 근거가 매우 부실하기 때문이다. 특히 '철도 개혁'을 주도한 국토부와, 이 기관으로부터 용역을 받아 연구를 수행한 교통연구원은 남에게 '개혁'을 주문하기에는 지은 죄가 너무 많다.
비록 철도노조와 여야가 30일 '철도산업발전을 위한 소위원회' (철도소위) 구성을 전제로 파업을 철회하기로 합의했지만, 코레일을 망쳐놓은 장본인들을 정상화의 주체로 세울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코레일 사태의 책임을 따져 묻는 것은 철도가 제대로 된 '시민의 발'로 기능할 수 있게 만드는 첫 걸음인 동시에, 온갖 실정과 비리로 얼룩진 정부기관들이 책임있게 행동하게 만드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수서발 KTX 분리는 국토부발 '먹튀'정부는 '경쟁체제의 도입을 통한 경영정상화'만이 살 길이라며 자회사 설립을 통한 수서발 KTX의 분리를 강행했다. 이 결정에 반발한 철도노조가 파업을 시작하자, '경영방만'으로 누적된 '17조 원의 부채'의 책임을 져야 할 연봉 '6천만 원'대의 '귀족노조'가 '철밥통'을 지키려 한다며 공권력을 투입했다.
현오석 부총리는 지난 26일 발표한 담화문에서 "방만경영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적자를 국민의 혈세로 매년 메워 넣어야 하겠느냐"고 주장했다. 물론 방만경영의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하지만 책임이 국토부와 국무총리실에 있다면 어떨까? 정부의 '방만정책'으로 발생한 적자를 국민의 혈세로 메워넣는 것은 괜찮은 일일까? 더구나 이들이 억대 연봉까지 받고 있다면?
우선 코레일 적자 내용을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2004년 철도청을 해체하고 이듬해 코레일을 공기업 형태로 출범시키면서 5조 8000억 원의 부채를 떠넘겼다. 그 가운데 4조 5000억은 고속철도 건설부채였다. 당연히 이 부채는 코레일이 고속철도(KTX)의 수익을 통해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빚이었다.
흔히 코레일에서 KTX만이 흑자를 낸다고 알려져 있지만, KTX 누적 흑자로 고속철도 건설 부채를 모두 갚기 전까지는 결코 '흑자'라는 말을 쓸 수 없다. <동아일보>조차 고속철도 개통을 알리는 2004년 3월 기사([고속철 개통 D-29]저속구간 축소-요금할인 개선 과제로)에서 "건설기간에 빌린 부채상환은 개통 27년 뒤인 2031년에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이 시점에서 KTX 황금노선을 분리해 매각하는 것은 '재주는 코레일이 부리고 돈은 자회사가 챙기는' 꼴이 된다.
코레일이 이사회에 보고한 내부 문건에 따르면, 수서발 KTX가 분리될 경우 연간 5천억 적자가 예상된다. 적자가 가중될 때 일반철도를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새마을호나 무궁화호는 원가의 절반 수준에서 요금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2010년 기준으로 새마을호는 원가의 56.8%, 무궁화호는 48.6%이다. 오직 KTX만이 106.7%로 원가 이상을 받는다.
애초부터 KTX를 제외하고는 적자를 내도록 설계된 것이다. 시민들이 부담없이 이용할 수 있는 이동수단을 제공하는 것이 공공서비스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KTX 흑자'와 '일반철도 적자'의 교차보조는 매우 훌륭한 시스템인데, 싼 요금을 원하는 시민은 느리더라도 값싼 일반철도를 이용하고, 금전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조금 더 내고 고속철도를 이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코레일 사측도 지난 1월 "국민편의 증진 및 철도의 공익적 기능유지를 위해 고속철도 수익으로 결손을 충당하여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런 면에서 건설부채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KTX 자회사를 분리하는 것은 철도의 공공성 포기를 넘어, 국토부발 '먹튀'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철도선진화 추진으로 영업적자가 줄었다"더니?왜 박근혜 대통령은 이 시기에 수서발 KTX 분리를 강행한 것일까? 정부는 '경영비효율이 심각하기 때문에 그대로 둘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상한 일이다. 분명히 코레일 사측은 2013년 초에 전년 대비 "1383억원의 영업적자를 줄였다"고 자랑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