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퇴치제, 아이들 때문에 만들게 됐어요"

[사회적 기업을 찾아서 1] 친환경으로 세상 바꾸는 티트리 손혜선씨

등록 2013.12.31 16:37수정 2013.12.31 16:37
0
원고료로 응원
"사회적 기업? 그거 정부 돈으로 사업하는 거 아니야?"

의심은 어쩌면 이 시대의 덕목일지 모른다. 얼마나 더 망가질지 가망이 없는 시대의 불안을 아슬아슬하게 견디면서 각종 거짓말과 뒷거래 상황 속에서 '멘붕'에 빠지지 않는 비결은 확신에 찬 사람의 약속을 의심하고 아름다운 미소에 속지 않는 것이다.

예비 사회적 기업 <티트리>의 손혜선씨를 만났을 때 기자의 생각도 그랬다.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나 들어보자, 비스듬하게 몸을 기대어 앉으면 목소리조차 잘 들리지 않았다. 명색이 회사 대표라는 사람이 이렇게 소극적이라니. 말은 머뭇거렸으며 부끄러움도 많았다. 그 속에서 단호함과 영민함이 반짝 보였다.

일하면서 받은 상처로 부두질친 강인함이 그 조심스러운 말투를 비집고 나왔다. 사회적 기업 대표라는 틀을 깨고 만나니 한 사람이 오롯이 기자와 마주하고 있었다. 궁금해졌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기업의 생리이자 자본주의의 뿌리인데, 이윤보다 앞선 그 무엇을 추구하는 사람을 인정한다면 그건 어쩌면 자본주의의 견고함을 깨는 아주 작은 시작이 될 지도 모른다.

a

손혜선 티트리 대표가 말라리아를 퇴치하는 모기기피제 제조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박선경


사회적 기업은 '사회적 목적'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면서 영업활동을 수행하는 기업을 말한다. 공익을 증진하고 취약계층에게 사회적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으로 인정을 받으면 정부가 인건비를 비롯해 경영컨설팅, 판로개척, 공공기관 우선 구매 등 각종 지원을 해준다.

사회적 기업은 사회적기업 육성법에 의해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증'을 받아야 하며, 예비 사회적 기업은 지방단체장이나 중앙부처장이 '지정'받는 것이 사회적 기업과 다르다. 지원 내용도 약간 차이가 있다. <티트리>도 2012년에 경기도에서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받았다.

하지만 천 개가 넘는 사회적 기업이 정말로 모두 사회적 목적을 우선으로 실현하고 있을까. 정부에서 지원을 잘 받아 돈 버는 방법이 바로 사회적 기업을 하는 것이라는 말이 포털 사이트에 상위에 링크되는 것이 현실이고 보면, 요즘 같은 때에 공익이라는 모토처럼 공허한 메아리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와 한국 사회적 기업진흥원에서 지난 4월 30일에서 5월 13일까지 총 5회에 걸쳐 사회적 기업 종사자를 대상으로 마케팅 교육을 했다. 그곳에는 총 20여 개 사회적 기업 및 예비 사회적 기업 종사자들이 참여해 소셜 플랫폼이니 공공구매니 지속가능을 위한 경영전략이니 하는 생소하고 꼭 알 필요 없을 것 같은 내용으로 '마케팅'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강의 내용은 사회적 기업으로 이윤을 내는 방법부터 사회적 기업의 순수성을 유지하면서 마케팅을 강화하는 관계망 구성론까지 다양했다. 상반기에 실시한 교육에서 관계망을 짠 참가자들은 기획자에게 하반기에 심화 교육을 진행해줄 것을 요청하게 된다. 그렇게 다섯 번의 강의를 더 챙겨 듣고 손혜선 티트리 대표를 비롯한 몇몇 사회적 기업 사람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를 지켜나갈 방법을 구체적으로 모색하기 시작했다. 티트리 손혜선(42)씨를 만난 것은 2013년 12월 18일이었다.

아프지 말라고 엄마가 만들어준 비누 한 조각

손혜선씨 아이들은 환경에 예민했다. 두 아이 중 큰 아이는 모기에 물리면 피부에 과민반응이 일어나 여름이면 큰 곤욕을 치렀고, 작은 아이는 알레르기와 아토피를 심하게 앓으면서 큰 대학병원을 전전했다. 병원에서는 독한 약을 처방해줄 뿐이었고 아이들은 나아지지 않았다. 밤새 긁고 피부가 벗겨져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위해 자연치료를 선택하고 환경을 바꾸기 시작했다. 화학책부터 동의보감까지 꼼꼼히 읽고 수많은 정보를 찾았다. 노력은 아이의 변화로 나타났다. 덜 긁고 덜 아프게 된 것이다. 머리까지 빠지던 아이가 점점 나아지자 사람들이 그 방법을 묻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생활 전반을 친환경으로 바꾼 거예요. 먹을거리부터 옷, 비누, 로션 모두를 하나하나 바꿔나갔죠. 제가 만드는 천연비누, 화장품, 모기 기피제 같은 것은 아주 오래전에 벌써 입증이 된 방법이에요. 저는 그것들을 활용한 것뿐이죠. 그런데 사람들은 그 비누 어떻게 살 수 있느냐, 그 화장품 얼마나 파냐에 관심이 있더라고요. 저는 ... 이거요... 파는 게 아니라... 집에서 만들어 쓸 수 있는 데... 그랬어요. 그렇게 시작한 거예요. 아토피 치료는 약을 발라서 되는 게 아니라 아픈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어야 해요."

a

소셜 벤처 대회에 함께 참여한 티트리 직원들. ⓒ 박선경


그렇게 2005년 공방을 처음 열었다. 처음 공방으로 시작한 티트리는 2012년 9월에 법인으로 변경, (주)티트리가 되었다. 현재 티트리는 천연비누, 천연화장품 강의를 시작으로 바리스타, 목공 DIY까지 총 3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티트리에서 주요하게 여기는 사업은 분야가 아니라 사람이다. 혜선씨는 학업 중단 청소년, 중·고등학교 장애인반, 장애인 복지관의 부부 장애인반, 장애아동 어머니반 등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더 많은 강의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조차 쉽지가 않았다고 한다.

"복지관에는 예산이 한계가 있잖아요. 그래서 강사료는 받지 않고 재료비도 저희가 80% 부담하고 복지관에서 예산 있는 만큼만 받으면서 강의한 적도 있어요. 이분들에게는 꼭 하고 싶어서요. 예를 들어, 한 사람당 재료비가 만 원이 든다고 하면 저희가 8천 원 부담을 하고, 수강자가 2천 원만 부담하는 식으로 진행한 거죠. 그런 강의에서도 다섯 번 강의 중 본인이 한번 빠진다고 2천 원 환불해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저희가 재료비 들여서 하는 강의도 이런 식이에요."

무료라도 좋으니 강의를 열어보자고 복지관이나 문화센터 관계자를 찾아갔다가 잡상인 취급을 받은 적도 있고, 수강생에게 모욕적인 말과 태도를 겪으며 명예훼손 소송까지 간 적도 있다.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도 많이 들었다. 이제 쉬어야겠다고 생각하고 회사를 정리하는 중에 사회적 기업을 알게 되었다.

"호사다마라고 하죠. 그때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안 했으면 또 여기까지 안 왔겠지요. 소송까지 가면서 만신창이가 되었을 때 함께 있어주었던 사람들에게 감동도 받았고, 그 힘으로 사회적 기업까지 왔어요."

갑을 관계, 저는 몰라요

혜선씨는 어느 시점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까다로워졌다. 강의를 하기 전 듣는 사람들이 심하다고 할 정도로 세세한 부분까지 주의할 점을 수강생에게 일러둔다.

"한번은 이런 적이 있어요. 복지관 관계자가 문에 난 창문으로 기웃기웃 수업하는 것을 들여다보는 거예요. 꽤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다음 수업하기 전에 가서 이야기했죠. 그렇게 보는 것 불편하니까 안 하셨으면 좋겠다고요."

보기보다 까칠한 면모다. 복지관이나 문화센터는 어떻게 보면 사용자 '갑'이고 프로그램을 들고 가 수업을 하는 혜선씨는 '을'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 구조이다. 이런 구조 안에서도 이윤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사회적 가치를 앞에 두기에 아닌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을 수 있다.

"사회적 기업을 하는 분들 모임에 나간 적이 있어요. 저기엔 정말 다양한 분들이 오시더라고요. 그냥 정부 돈은 눈먼 돈이니까 잘 받아서 쓸 수 있는 만큼 써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놀랐어요. 사회적 기업이라는 틀을 지키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사람들에게 사회적 기업은 이렇게 사회에 보탬이 되려고 노력을 해요. 믿어주세요, 하는 게 부끄럽더라고요. 저는 그냥 제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잊지 않고 그걸 지키면서 살아가려고 해요. 저희처럼 돈도 못버는 회사 취재하시느라 고생하셨고 죄송해요."

거대 기업들은 우리 삶 속 깊숙이 파고들어 이윤을 챙기고 우리는 그런 기업의 행태에 만성이 된 지 오래다. 사회 공공의 가치는 이제 내놓기도 민망할 정도로 퇴색했고, 나눔은 연말연시 행사로 전락했다. 그 속에서 공공성은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이 의지로 지켜지고 있다.

a

티트리 전문 강사 양성 과정 중 천연 비누, 천연화장품 전문 강사 체험 수업 중입니다. ⓒ 박선경


a

티트리 공방 내부 여기서 모기퇴치제를 만들기도 하고 만드는 방법도 배운다. ⓒ 박선경


말라리아 퇴치, 주사 없이 지역 주민 스스로 가능해요!

혜선씨는 또 한 번 우연한 기회를 만났다. 직원들과 '모퉁이화원'이라는 이름으로 11월 20일에 열린 소셜 벤쳐 경연대회에 참가한 것이다. 국내 대회에서 모기 퇴치제 제조 방법으로 최우수상을 받고, 이어 12월 6일 경희대학교에서 열린 2013 아시아소셜벤처대회(SVCA)에 한국 대표로 참여해 타이완과 홍콩 등에서 선발된 14팀과 겨루어 1등을 차지했다. 여기서 선보인 모기 퇴치제는 제품 자체가 아니라 제조 방법이 핵심이다. 동남아 현지에서 쉽게 재배 가능한 시트로넬라 허브를 이용한 모기 기피제는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다.

말라리아는 약과 주사로 예방할 수 있지만, 값이 비싸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먼 이야기이다. 혜선씨는 동남아 현지에 공장을 세워 원료생산에서 완제품까지 공정을 마쳐 말라리아도 몰아내고 개발도상국들의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을 주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말라리아 발생 지역에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이 프로젝트의 가장 큰 장점이다. 현재 말라리아 질병 관리 시장은 거대 다국적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예방약, 진단키트, 치료약 모두 말라리아 발생 현지주민이 아니라 그 지역을 여행하는 관광객의 눈높이와 수준에 머물러 있어 가격도 높고 방법도 까다롭다.

모기가 기승을 부리는 지역 사람들 누구나 쉽게 만들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모기기피제로 혜선씨는 내년 세계 대회를 앞두고 있다.

"다른 이야기는 다 써도 괜찮은데, 이건 좀..."

대표 포함 직원 수 겨우 네 명뿐인 작은 회사가 소셜 벤처로 세계 대회까지 올라간 이야기를 꺼리는 이유는 무얼까? 왜냐고 물으니 그냥 창피해서란다. 사람들이 이런 회사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어두운 세상에 불이 탁 켜지는 훈훈함을 느끼지 않을까.

이제, 기자는 의심의 눈을 걷고 사람을 바라볼 용기를 내어본다. 이 시대의 폭력을 헤치는 길은 사람을 통해 찾을 수 있다.

<사회적 기업을 찾아서는 계속 됩니다. 쭈~욱.>
#사회적 기업 #예비 사회적 기업 #티트리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한국방송광고공사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4. 4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5. 5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