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민원'에 해 넘긴 예산안 처리

재벌특혜 논란 '외촉법' 두고 밤샘 진통... 여야 '상설특검제 2월 처리' 약속

등록 2014.01.01 11:55수정 2014.01.01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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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만큼은 상정할 수 없어" 사회권 넘긴 박영선 박영선 법제사법위원장은 1일 새벽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외국인투자촉진법 처리에 반대하며 사회권을 이춘석 민주당 간사(왼쪽)에게 넘겼다. ⓒ 남소연


355조 8000억 원 규모의 2014년 예산안이 해를 넘겨 처리됐다. 국회는 1월 1일 새벽 4시를 넘겨서야 새해 예산안 및 주요 법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를 열었다. 지난 1년 동안 정국의 중심에 섰던 국가정보원 개혁 관련 법안 7가지와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첫 '증세'가 포함됐다.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의 '민원' 법안으로 불린 외국인투자촉진법(아래 외촉법)이 극심한 진통을 겪으며 어렵사리 본회의에서 처리됐다. 이는 2년 연속 해를 넘겨 예산안을 통과 시키게 된 가장 큰 원인이었다. 앞서 박 대통령은 지난 11월 시정연설에서 '외촉법'을 거론하며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사실 민주당은 그동안 외촉법을 '재벌 특혜법'으로 규정하고 반대 의사를 밝혀왔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이를 예산안 및 국정원 개혁법안 등에 연계하고 나서면서 이 같은 방침을 바꿨다. 이 같은 방침 변화에 대한 당내 반발은 거셌다. 박영선 법제사법위원장은 "이 법만큼은 내 손으로 상정할 수 없다"며 반대 선봉에 섰다. 그는 "잠자던 아이가 깨서 울 때 사탕을 입에 물려주면 울음은 그치지만 치아는 썩는다, (외촉법은) 그런 법"이라고 비판했다.

김현미 의원도 "우리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를 넘겨준 것은 세법개정안과 연계한 것이지 외촉법과 연계한 것이 아니"라며 "(외촉법까지) 연계돼 있다면 양도세 중과 폐지도 철회해야 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산업위·법사위·본회의 매번 위기... '최경환 쪽지예산 논란' 불똥 맞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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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투자촉진법, 국회 산업위 통과 쟁점법안이었던 외국인투자촉진법(외촉법)이 31일 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통과됐다. 강창일 산업위원장이 외촉법 가결을 선언하고 있다. ⓒ 남소연


결국, 외촉법은 새해를 불과 2분 앞두고서야 국회 산업통상위원회를 통과했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31일 저녁 의원총회에서 "나에게 맡겨 달라"면서 산업위 소집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산업위는 밤 10시 40분께부터 법안소위를 열어 외촉법 개정안을 논의했다.

민주당은 외촉법 통과로 일부 대기업집단의 경제력 집중 및 공정거래법 침해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외국인투자위원회 승인' 이전에 '손자회사와의 사업관련성 및 합작주체로서의 적절성 여부 등에 대한 공정거래위의 사전심의'를 거치도록 추가, 수정했다. 최종 수정안은 김제남 정의당 의원을 제외한 모든 위원들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최종관문인 법사위도 간신히 통과했다. 앞서 국정원 개혁법안 및 예산부수법안을 먼저 처리한 법사위는 이날(1일) 새벽 3시께 전체회의를 다시 열어 외촉법을 상정, 처리했다. 외촉법 상정을 끝까지 반대했던 박영선 위원장은 새누리당으로부터 '2월 본회의에서 상설특검제 및 특별감찰관제 처리' 약속을 받아냈다.

박 위원장은 "이 법안은 내 손으로 상정하기가 힘들다"면서 법사위 민주당 간사인 이춘석 의원에게 외촉법 처리를 맡겼다. 그는 위원장석을 떠나기 앞서 "외촉법 개정안은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을 막기 위해 입법화한 지주회사법의 근간을 흔든다, 경제 체제를 80년대로 회귀시키는 법"이라고 꼬집었다. 또 "이 법 통과를 대통령이 고집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의 건강한 경제 구조가 뭔지, 경제민주화가 뭔지 대통령이 제대로 인식 못했거나 주변에서 (정보를) 잘못 입력 시킨 거"라고 일갈했다.  (관련기사 :마지막 본회의, 외국인투자촉진법 때문에 '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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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선, 산업부 장관이 내민 손 거절 박영선 법제사법위원장은 1일 새벽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외국인투자촉진법 처리에 반대하며 사회권을 이춘석 민주당 간사에게 넘겼다. 법안이 통과된 후 회의장을 나서던 윤상직 산업부 장관(오른쪽)이 악수를 청했으나 박 위원장은 거절했다. ⓒ 남소연


외촉법의 법사위 통과 후, 여야는 본회의를 열고 신속하게 국정원 개혁법안 및 예산부수법안, 2014년 예산안 등을 빠르게 처리했다. 그러나 위기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2014년 예산안 처리 직후,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쪽지예산' 논란이 불거지면서 사달이 벌어졌다.

국회 예결위 민주당 간사인 최재천 의원은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대구지하철 1호선 연장사업 설계비 50억 원을 새로 편성하는 과정에서 국회법상 새 비목 설치를 위해 소관 상임위(국회 국토교통위)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 과정을 어기고 예산안에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대구 안심역에서 경산 하양역까지 지하철 노선을 연장하는 해당 사업은 '경북 경산'을 지역구로 둔 최 원내대표의 '쪽지예산' 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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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헌 "최경환이 직접 해명하라" 국회 예결위 민주당 간사인 최재천 의원이 1일 새벽 본회의에서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국회법 절차를 무시하고 '쪽지예산' 끼워넣기를 시도했다고 폭로했다. "최 원내대표가 직접 해명하라"며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가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 남소연


야당 의원들은 즉각 최 원내대표의 해명과 예산 배정 취소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새누리당 예결위 간사인 김광림 의원이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이는 (국토위의 동의가 필요한) 신규예산이 아니다, 기존 예산 80억 원에 50억 원의 재원을 보태 계속사업으로 추진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관련 기사 : 새해 꼭두새벽 국회 파행... 최경환 '쪽지예산' 때문? )

그러나 여야 의원들이 서로 고성을 지르고 대치하면서 본회의장의 소란은 걷잡을 수 없게 됐다. 이상규 통합진보당 의원은 트위터에 "민주당의 강력 항의에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은 '외촉법 나가리(무산)시키려고 저런 거야'라며 새누리당 의원들을 독려하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강창희 국회의장은 결국, 새벽 5시 53분께 정회를 선포했다.

본회의는 이날 오전 9시 30분께 다시 열렸다. 외촉법은 이날 오전 10시 찬반토론 끝에 재석 254인 중 찬성 168인, 반대 66인, 기권 20인으로 가결됐다.

소득세 최고세율 인하가 부자증세?

2014년 예산안은 정부 제출안에서 1조9000억 원 가량 줄어든 355조8000억 원 규모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가 5조4000억 원을 깎고, 3조5000억 원을 늘린 결과다.

'박근혜 표' 창조경제 예산 대부분은 원안을 유지했다. 창조경제기반구축 예산 45억 원, 디지털콘텐츠코리아펀드 예산 500억 원이 원안대로 통과됐다. 4대악 사범단속 예산 46억 원,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한 금융정보분석원(FIU) 전산망 구축운영 예산도 거의 원안을 유지했다.

반면, '새마을 운동 지원 예산' 23억 원 중 18억 원이 삭감됐고, 세계 새마을지도자대회 예산도 전액 삭감됐다.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국가보훈처, 군 사이버 사령부 예산은 모두 삭감됐다. 국회는 국가보훈처의 '나라사랑정신계승 발전'예산을 12억 원 삭감해 25억 원으로 통과 시켰다. 기획재정부 예비비에 포함된 국정원 예산도 상당 부분 삭감된 것으로 전해진다. 군 사이버 사령부 예산으로 절반 수준인 9억 원으로 깎였다.

세제개편안 관련, 여야는 소득세 최고세율 과표구간 '1억5000만 원 초과(현행 3억 원 초과)'로 인하,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과표 1000억 원 초과 대기업 최저한세율 17%(현행 16%)로 인상, 쌀 목표가격 18만8000원(현 17만 4083원)으로 인상 등을 처리했다.

소득세 최고세율 과세 표준 구간을 낮춘 데 대해서는 '부자증세'가 이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에 따르면 최고세율을 적용 받는 납세자는 12만 4000명 늘어나고, 연 3200억 원의 세수 증대 효과가 예측되기 때문이다. 또 여야가 과표구간 1000억원 이상의 대기업 최저한세율(비과세·감면 등을 받고도 최소한 내야 하는 세율)을 16%에서 1%p 높이기로 해 여기서도 연 2930억 원의 세수증대 효과가 점쳐진다.

하지만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YTN 라디오에 출연해 "(우리나라는) OECD 국가들과 비교할 때, 근로소득자가 부담하는 세 부담 수준은 굉장히 낮은 수준"이라며 "그런 상태에서 과표구간을 3억 원에서 1억5000만 원으로 낮춘 부분에 대해 지나치게 부자증세라고 얘기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대기업 최저한세율 1%p 증가에 대해서도 "대기업이 부담하는 실질적 세 부담은 크지 않다"며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 감세 혜택이 대기업에 집중됐는데, 2011년 매출액 기준으로 상위 10대 기업 실효 법인세율은 13%에 불과했다, 이런 측면을 고려했을 때 최저한세율을 1%p 올리는 것은 미약하고 20%까지는 높여야 과세 공평성 측면에서 적절하다"고 짚었다.

상설특검제·특별감찰관제 2월 처리키로

본회의를 통과한 핵심 법안으로는 일단, 국정원 개혁안이 꼽힌다. 국회 국정원 개혁특위는 이날 오후 '대국민 심리전 금지, 정보관의 불법적 국가기관 상시 출입 금지'를 골자로 하는 개혁안을 통과시켰다. 또, 겸임 상임위인 국회정보위를 전임 상임위로 전환키로 했다. (관련 기사 : '댓글 환부' 못 도려낸 국정원 개혁안 )

처리에 진통을 겪은 외촉법은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외국 회사와 합작 투자해 자회사를 설립할 때 100% 지분을 보유해야 하는 현 규정을 50%로 낮추자는 것이 골자다.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민주당 일각에서는 SK 종합화학과 SK 루브리컨츠, GS 칼텍스 등이 일본회사와 추진하는 합작 건을 위한 특혜 법안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 외에 신규 순환출자금지 법안, 이자상한선을 25%로 낮추는 이자제한법, 밀양 송전탑 지원법 등도 처리됐다.

특히, 신규 순환출자금지 법안 통과에 따라, 당장 내년 7월부터 자산합계 5조 원 이상인 대기업의 계열사 간 신규 순환출자는 금지된다. 1%도 안 되는 지분으로 재벌 총수 일가들이 계열사의 지배력을 확장해 온 부작용을 막기 위한 법안이다. 다만, 기존에 진행된 순환출자에 대한 규제는 가하지 않기로 했다.

민주당이 처리를 요구한 전월세상한제는 새누리당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핵심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상설특검제와 특별감찰관제 도입 등은 오는 2월 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앞서 여야는 상설특검제를 제도특검(정치적 의혹 사건 발생 시 특검을 임명해 수사하도록 보장)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고, 특별감찰관에게 감사원에 준하는 조사권을 부여하는 것에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특검 실시를 위한 요건과 관련해서 이견이 컸다. 특별감찰관 감찰 대상에 국회의원을 포함시킬지 여부도 정리되지 않았다.

한편, 올해부터는 개정된 국회법으로 예산안이 자동상정돼 이번처럼 해를 넘겨 예산안을 처리하는 일은 없어지게 됐다.
#본회의 #2014 예산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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