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6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후 첫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집권 2년차 국정운영 구상을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
곤란하거나 껄끄러운 질문에는 여전히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으로 '디스'(무시)했다. 한 기자가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에 대한 입장을 묻자 "지난 1년간 이 문제로 인해 국론이 분열되고, 국력이 소모된 것을 정말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이제는 이런 소모적인 논쟁을 접고 우리가 함께 미래로 나갔으면 한다"고 답변했다. 지난 대선에서 이뤄진 국가기관의 불법행위로 인한 가장 큰 수혜자가 피해자이자 주권을 훼손당한 야당과 국민의 진상규명과 사과 요구를 '국론 분열'로 호도하거나 '소모적인 논쟁'으로 폄하한 것이다. 이쯤 되면 똥 뀐 놈이 성내는 격이었다.
야당의 특검 도입 요구에 대해서도 "지금 현재 재판 중인 사안이기 때문에 대통령으로서 이런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피해갔다. 박 대통령은 정홍원 국무총리가 국회 예결특위에서 비슷한 답변으로 피해가려다가 예결위 민주당 간사인 최재천 의원에게 된통 당한 것을 모르는 것 같다.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정책질의 동영상으로는 보기 드물게 11만 조회수가 넘은 그
동영상을 한번 봤으면 한다.
보수와 진보 언론에 대한 노골적인 편 가르기도 여전했다. 기자회견에선 이정현 홍보수석의 지명으로 12명의 기자가 질문했다. 그 가운데 2명은 <동아일보>와 그 자회사인 <채널A> 기자였다. 반면에 <경향><한겨레><오마이뉴스> 같은 진보 언론 기자들에게는 질문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경제 활성화' 다음으로 강조한 핵심과제는 '한반도 통일시대의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뉴스는 뜻밖에도 '통일 비용'에 대한 자문자답에서 나왔다. 대통령은 단호한 제스처로 손까지 흔들며 "한마디로 통일은 대박이다, 이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통일은 대박'의 논거는 <조선일보>의 '통일이 미래다'라는 신년기획에서 차용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회견에서 "남북통합이 시작되면 전재산을 한반도에 쏟겠다"고 한 세계적 투자전문가 인터뷰 사례를 직접 거론하며 "한반도 통일은 우리 경제가 실제로 대도약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역설했다.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국제 금융기관 골드만삭스는 2040년 한국 경제가 영국·프랑스·독일을 추월하고, 2050년에는 미국 다음으로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 보고서를 이미 몇 년 전에 내놓았다. 앞서의 투자전문가는 골드만삭스 전망치를 참고한 것이다. 반면에 지난해 OECD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31년이 되면 0%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내놓았다. 이처럼 정반대의 예측 전망이 나온 까닭은, 전자는 북한 경제와의 평화적 결합을 전제한 것이고, 후자는 남북한 분리를 전제로 남한 단독경제를 기준했기 때문이다.
'통일은 대박'은 경제 민주화처럼 본래 진보의 논리다. 고 김대중 대통령과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이 강조해온 이른바 '평화경제'의 캐치프레이즈다. 남북 경제협력을 '퍼주기'라고 비판했던 박 대통령과 <조선일보>가 정반대의 관점에서 손을 잡은 것이다. 하지만 평화경제와 달리 '통일은 대박이다'는 사실상 북한 붕괴론과 흡수통일을 상정한 명제다. 아직 장밋빛 환상이다.
'짐이 곧 국가'니 잔말 말고 따르라?신년 기자회견의 메시지는 "'경제혁신 3개년계획'을 세워 임기 내에 3만 달러 시대를 열겠다, 통일은 경제 대도약의 지름길이다"로 요약된다. 그러나 3개년계획은 아직 실체가 없다. 창조경제와 혁신경제도 실체 없는 과정일 뿐, 이행 정도가 수치로 평가되기는 어렵다. 큰 틀에서 보면, 박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은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을 떠올리게 한다. 박정희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은 박근혜의 경제혁신 3개년계획으로 부활했다. 특히 야당 원내대표의 개헌론을 경제 논리로 일축한 것은 유신 긴급조치를 떠올리게 한다.
"올해는 다른 생각 말고 우선 이 불씨를 살려내서 확실하게 경제회복을 시키고 또 국민도 삶의 안정감과 편안함, 희망을 갖고 3만 불, 4만 불 시대를 열어가는 기틀을 만들어야 될 때라고 생각한다."그러나 지금은 대통령 한 마디에 유정회 의원을 포함해 여당 의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유신 시절이 아니다. 국민과의 소통, 야당과의 타협 없이는 정치도 경제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그런데 회견에서 '불통' 지적 관련, 청와대의 민원 해결을 여러 번 언급한 것을 보면 소통을 민원 해결쯤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
소통(疏通)은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을 의미한다. 소통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나를 믿고 따르라'는 소통이 아닌 통보다. 야당과 소통 없는 정치는 정치가 아니라 통치다. 그런데 대통령은 국민과 야당에게 타협은 소통이 아니라고 '고집불통'을 부리고 있다. 더구나 박 대통령은 아직 청사진도 없는 '경제혁신 3개년계획'을 세우겠다는 선언만으로 국민과 야당에게 잔말 말고 따를 것을 강요하고 있다. 아무래도 박 대통령은 '짐은 곧 국가'로 통한 유신 시절로 착각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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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공주' 사전에는 '정치'도 '야당'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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