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공주' 사전에는 '정치'도 '야당'도 없다

[김당의 톺아보기] '안하무민'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등록 2014.01.07 09:56수정 2014.01.07 14:27
10
원고료로 응원
a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후 첫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집권 2년차 국정운영 구상을 발표하고 있다. ⓒ 청와대


대통령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이었다. 기자회견을 기피해온 '묻지마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를 씻을 모처럼의 기회였다. 새해 초이기에 덕담에 대한 일말의 기대도 했다. 그러나 2년차 대통령의 정국에 대한 인식은 실망을 넘어 절망적이었다.

이번 회견은 모두 발언과 12명의 기자가 나선 질의-응답까지 80분이 걸렸다. 기자회견이 국민과 '소통'하는 한 방식이라면, 이번 회견은 겉보기에는 합격점을 받을 만하다. 모두 발언의 대부분은 경제 분야에 할애되었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캐치프레이즈인 '국민행복시대'를 열기 위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과 이를 구현하기 위한 '3대 추진 전략'을 밝힌 것은 2년차 국정 운영 방향과 기조에 대한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해주었다.

박 대통령이 밝힌 3대 추진 전략은 ▲ 비정상적 관행을 정상화하는 공기업 개혁 ▲ 창조경제를 통해 역동적인 혁신경제 만들기 ▲ 내수 활성화를 통한 내수와 수출의 균형으로 요약된다. 이 가운데서 박근혜 정부의 트레이드마크인 '창조경제'는 여전히 그 실체가 애매모호하다. 하지만 공기업 개혁을 통한 이른바 '비정상의 정상화'와 '내수 활성화'는 경제 정책의 방점이 어디에 찍혀 있는지 가늠케 한다.

절반 넘는 국민과 야당 무시한 '안하무민' 태도

우선,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내건 의제와 공약의 파기에 대해 사과부터 했어야 했다. 알다시피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지난 대선에서 진보정치의 의제인 경제민주화와 복지공약을 내걸고 표를 구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회견에서 지난 대선 때 위원회까지 만들었던 '경제 민주화'에 대해서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경제 활성화'나 '경기 회복'을 강조했다. 경제민주화와 4대 중증질환 진료비 지원 같은 복지공약은 대선 야바위꾼의 미끼상품이었던 셈이다.

정책은 곧 선택이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반대가 수반된다. 선택되지 않은, 또는 우선순위에서 밀린 정책의 이해 관계자는 반대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경제 활성화'에 방점이 찍힌 2년차 국정 운영 구상이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거나, 또는 지지했지만 그후 지지를 철회한 절반 이상의 국민과 그 지지 정당에 대해서는 어떤 동의나 협조도 구하지 않고 있는 점이다. 이는 상식의 정치와 정당 정치의 근간에 반(反)하는 것이다.

정당 정치에서 야당(the opposition party)은 본래 '반대하는 당'이다. 야당을 설득해 반대를 최소화하거나, 야당에게 명분 또는 실리를 제공해 반대를 철회하게 하는 것은 대통령과 집권당의 몫이다. 그것이 상생과 타협의 정치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모두 발언에서 국내정치는 언급조차 안했다. 또 '경제'는 24번이나 언급하면서 경제정책에 대해 야당을 비롯한 정치권의 협조조차 구하지 않았다.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사건에 대해서는 사과는커녕 국론과 국력의 발목을 잡은 것으로 본질을 호도했다. 누리꾼 말투를 빌리면 이건 '개무시'다. 안하무민(眼下無民)이자 안하무야(眼下無野)의 태도다.


야당 지도부는 '고스톱 판의 흑싸리껍질'만도 못한 존재였다. 한 기자는 대통령에게 노사 갈등이 예상되는 공기업 개혁을 예로 들어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제안한 사회적대타협위원회 구성과 정치권에서 제기한 개헌론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박 대통령은 '개헌 이슈는 블랙홀'이라는 논거를 들어 전날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가 제안한 개헌론을 일언지하에 거부했다. 또 기존의 노사정위원회에서 모든 문제를 논의하면 된다는 논거로 김한길 대표의 사회적대타협위 구성 제안을 거부했다.

그러면서도 나중에 다른 기자가 증세와 복지공약에 대한 입장을 묻자 "조세와 국민이 바라는 복지수준에 대해서 국민의 합의가 필요하다"면서 "국민대타협위원회 같은 것을 설치해서 어떤 것이 최선의 조합이 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야당 대표가 사회경제적 양극화 해결을 위해 구성을 제안한 '사회적대타협위원회'는 안되지만 자신이 거론한 '국민대타협위원회'는 필요하다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껄끄러운 질문에는 여전히 '유체이탈 화법'으로 무시

a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후 첫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집권 2년차 국정운영 구상을 발표하고 있다. ⓒ 청와대


곤란하거나 껄끄러운 질문에는 여전히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으로 '디스'(무시)했다. 한 기자가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에 대한 입장을 묻자 "지난 1년간 이 문제로 인해 국론이 분열되고, 국력이 소모된 것을 정말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이제는 이런 소모적인 논쟁을 접고 우리가 함께 미래로 나갔으면 한다"고 답변했다. 지난 대선에서 이뤄진 국가기관의 불법행위로 인한 가장 큰 수혜자가 피해자이자 주권을 훼손당한 야당과 국민의 진상규명과 사과 요구를 '국론 분열'로 호도하거나 '소모적인 논쟁'으로 폄하한 것이다. 이쯤 되면 똥 뀐 놈이 성내는 격이었다.

야당의 특검 도입 요구에 대해서도 "지금 현재 재판 중인 사안이기 때문에 대통령으로서 이런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피해갔다. 박 대통령은 정홍원 국무총리가 국회 예결특위에서 비슷한 답변으로 피해가려다가 예결위 민주당 간사인 최재천 의원에게 된통 당한 것을 모르는 것 같다.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정책질의 동영상으로는 보기 드물게 11만 조회수가 넘은 그 동영상을 한번 봤으면 한다.

보수와 진보 언론에 대한 노골적인 편 가르기도 여전했다. 기자회견에선 이정현 홍보수석의 지명으로 12명의 기자가 질문했다. 그 가운데 2명은 <동아일보>와 그 자회사인 <채널A> 기자였다. 반면에 <경향><한겨레><오마이뉴스> 같은 진보 언론 기자들에게는 질문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경제 활성화' 다음으로 강조한 핵심과제는 '한반도 통일시대의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뉴스는 뜻밖에도 '통일 비용'에 대한 자문자답에서 나왔다. 대통령은 단호한 제스처로 손까지 흔들며 "한마디로 통일은 대박이다, 이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통일은 대박'의 논거는 <조선일보>의 '통일이 미래다'라는 신년기획에서 차용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회견에서 "남북통합이 시작되면 전재산을 한반도에 쏟겠다"고 한 세계적 투자전문가 인터뷰 사례를 직접 거론하며 "한반도 통일은 우리 경제가 실제로 대도약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역설했다.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국제 금융기관 골드만삭스는 2040년 한국 경제가 영국·프랑스·독일을 추월하고, 2050년에는 미국 다음으로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 보고서를 이미 몇 년 전에 내놓았다. 앞서의 투자전문가는 골드만삭스 전망치를 참고한 것이다. 반면에 지난해 OECD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31년이 되면 0%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내놓았다. 이처럼 정반대의 예측 전망이 나온 까닭은, 전자는 북한 경제와의 평화적 결합을 전제한 것이고, 후자는 남북한 분리를 전제로 남한 단독경제를 기준했기 때문이다.

'통일은 대박'은 경제 민주화처럼 본래 진보의 논리다. 고 김대중 대통령과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이 강조해온 이른바 '평화경제'의 캐치프레이즈다. 남북 경제협력을 '퍼주기'라고 비판했던 박 대통령과 <조선일보>가 정반대의 관점에서 손을 잡은 것이다. 하지만 평화경제와 달리 '통일은 대박이다'는 사실상 북한 붕괴론과 흡수통일을 상정한 명제다. 아직 장밋빛 환상이다.

'짐이 곧 국가'니 잔말 말고 따르라?

신년 기자회견의 메시지는 "'경제혁신 3개년계획'을 세워 임기 내에 3만 달러 시대를 열겠다, 통일은 경제 대도약의 지름길이다"로 요약된다. 그러나 3개년계획은 아직 실체가 없다. 창조경제와 혁신경제도 실체 없는 과정일 뿐, 이행 정도가 수치로 평가되기는 어렵다. 큰 틀에서 보면, 박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은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을 떠올리게 한다. 박정희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은 박근혜의 경제혁신 3개년계획으로 부활했다. 특히 야당 원내대표의 개헌론을 경제 논리로 일축한 것은 유신 긴급조치를 떠올리게 한다.

"올해는 다른 생각 말고 우선 이 불씨를 살려내서 확실하게 경제회복을 시키고 또 국민도 삶의 안정감과 편안함, 희망을 갖고 3만 불, 4만 불 시대를 열어가는 기틀을 만들어야 될 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은 대통령 한 마디에 유정회 의원을 포함해 여당 의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유신 시절이 아니다. 국민과의 소통, 야당과의 타협 없이는 정치도 경제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그런데 회견에서 '불통' 지적 관련, 청와대의 민원 해결을 여러 번 언급한 것을 보면 소통을 민원 해결쯤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

소통(疏通)은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을 의미한다. 소통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나를 믿고 따르라'는 소통이 아닌 통보다. 야당과 소통 없는 정치는 정치가 아니라 통치다. 그런데 대통령은 국민과 야당에게 타협은 소통이 아니라고 '고집불통'을 부리고 있다. 더구나 박 대통령은 아직 청사진도 없는 '경제혁신 3개년계획'을 세우겠다는 선언만으로 국민과 야당에게 잔말 말고 따를 것을 강요하고 있다. 아무래도 박 대통령은 '짐은 곧 국가'로 통한 유신 시절로 착각하는 듯하다.
#박근혜 #유신공주 #경제혁신 #불통 #최재천
댓글1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4. 4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5. 5 "윤 대통령, 류희림 해촉하고 영수회담 때 언론탄압 사과해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