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자' 욕먹으며, 철도파업 대체인력 됐지만

'대체인력' 청년의 고백... 철도파업 철회 이후, '죽을 맛'입니다

등록 2014.01.10 19:58수정 2014.01.10 19:58
30
원고료로 응원
2013년 12월 철도파업이 장기화되자 코레일은 기관사 역할을 대신할 208명의 신규 인원을 채용했습니다. 12월 30일, 철도노조는 극적으로 파업을 철회했습니다. 대체인력이 출근한 첫 날입니다. 그들은 긴 한숨을 내뱉었습니다. 순간 머릿속에서 '계약기간은 철도공사 요청시'까지란 문구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파업이 종료된 지 열흘, 코레일 기관사 대체인력으로 채용된 박승원(28·가명)씨를 만났습니다. 그의 동의를 얻어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했습니다(제보자의 요청으로 지명은 익명 처리합니다). [편집자말]

코레일 '대체인력' 청년의 고백 "욕먹어도 어쩔 수 없어. 쓸 거야" 선배는 그날 밤 울분에 차 말했다. 세상에 대한 하소연이었다. ⓒ 김종훈


아버지는 "한 번 더 시도해 보는 게 어떠냐"고 말씀하셨다. 그날은 코레일 신규채용 원서마감이 하루 남은 12월 26일 저녁이었다. 책상에 앉아 코레일 홈페이지를 확인했다. 반 년 만에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어머니는 늘 '남자는 기술을 배워야 잘 산다'고 하셨다. 그래서 진로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유망하다는 지역의 철도학과를 선택했다. 후회한 적은 없다. 열심히 했다. 2012년 졸업과 동시에 기관사 자격증도 땄다. 아버지는 처음으로 "우리 아들 자랑스럽다"고 말씀해주셨다.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 2년, 두 번의 코레일 상반기 공채에서 연속으로 낙방했다. 실력이 부족해 떨어졌다는 걸 안다. 하지만 함께 시험 본 동기 30명이 모두 떨어졌다. 답이 보이질 않았다.

부모님께 더 이상 손 벌릴 수도 없었다.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았다.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 이력서를 다시 썼다. 자격증을 살피니 '철도기사'와 '대형면허'가 있었다. 군대에서 운전병하다 받은 대형면허가 새로운 직업을 갖게 할 줄 몰랐다. 2013년 11월부터 A와 B지역을 왕복하는 시외버스 기사가 됐다. 그렇게 새로운 일상에 적응해 나갔다.

"욕하라고 해, 어쩔 수 없어... 쓸 거야"

2013년 12월 철도 파업이 시작됐다.

"뉴스에서 철도인원들 새로 뽑는다고 하던데…"


어머니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지금 일하고 있잖아요."

괜히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모르지 않았다. 너무너무 들어가고 싶던 코레일에서 새로 사람 뽑는다는 소식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한 둘이 아녔다. '온 나라가 파업으로 인해 난리인데.' 선배들 자리 꿰차는 것 같아 우선 미안했고, 막상 들어가게 돼도 '대체인력'이라는 꼬리표가 걱정됐다.

12월 25일, 대학 선배·동기 넷이 만났다. 철도학과를 나왔지만,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눈치만 보며 내년 공채를 준비하거나, 다른 일을 찾아보고 있었다. 그나마 일을 하는 건 나밖에 없었다. 술이 오르자 3년 동안 시험을 본 경훈 선배가 말했다.

"나는 쓸 거야. 이건 또 다른 기회야. 욕하라고 해. 쓸 거야."
"그럼 나도 쓸게. 경험이라도 좋아."
"언제 잘릴지 모르잖아."
"어쩔 수 없어."

그 날 대화는 밤을 새우며 이어졌다. 술은 내가 샀다. 다들 거하게 취한 밤이었다. 아침에 돌아오니 어머니가 콩나물국을 끓여주셨다.

"아직 공채 안 끝났지?"

다시 한 번 어머니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12월 27일, 공채가 마감되던 날 선배·동기 4명과 함께 코레일 A지부를 찾았다. '방문접수'만 허용한 탓에 서울로 올라갈 시간이 부족했다. 원서를 내고 나와 집에 가기 위해 열차를 탔다. '철도파업으로 열차가 지연되고 있다'는 알림이 이어졌다.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하루 만에 하루살이 되다"

12월 30일 '대체인력' 첫 출근날, 떨리는 마음으로 교육장을 찾았다. 교육장엔 나를 포함해 대부분이 20대 중후반이었다. 그나마 친구 둘이 있어 마음이 든든했다. '퇴직 기관사'라며 "일당 15만 원씩 준다는 말에 지원하게 됐다"는 분도 있었다.

"여러분, 모두 아시겠지만 채용은...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채용은 철도공사 요청일까지'입니다."

근무계약서를 내밀며 담당자는 '채용일'을 강조했다. 교육은 이론부터 시작됐다. 오전 11시, 점심시간을 기다리며 교육을 받고 있었다.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어머니셨다. 그런데 다들 무언가 급한 연락을 계속 받는 것 같았다. 순간 분주해 졌다. 그리곤 이내 누군가 말했다.

"철도노조가 파업 철회를 결정했데."

파업 돌입 22일 만에 철회를 선언한 것이다. 그날부터다. 머릿속에서 '철도공사 필요시까지'라는 계약 문구가 떠나질 않았다. 뉴스마다 우리 이야기가 보였다. 댓글엔 "(대체인력은) 잘라도 된다", "연대도 모르는 놈들이다", "대체인력 어떡할 거냐" 등의 내용이 달렸다. 언제 잘려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 됐다.

불안의 연속이었다. 오전 8시 30분 출근하면 제일 먼저 듣는 소리가 "우린 하루살이다"라는 자조였다. 다들 언젠가 이런 날이 오게 될 걸 알았지만, 그 시간이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하지만 교육은 이어졌다. 뉴스에선 여전히 우리 이야기가 나왔다. 이론 교육은 닷새 동안 계속됐다.

"하루 만에 하루살이 되다" 채용은 '철도공사 요청일까지'입니다. ⓒ 국토교통부 트위터 갈무리


"다들 벙어리가 됐다"

새해 벽두, 한 언론의 '속보'성 기사가 뒤통수를 후려쳤다. 그 기사에는 '철도파업 대체인력 208명 계약해지'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잠시 후 국토교통부는 보도자료를 내고 그 기사가 '오보'라고 했다.

"철도노조 불법파업에 따른 대체인력으로 채용한 217명 중 자발적으로 그만둔 9명을 제외한 208명은 현재도 근무 또는 교육 중임을 알려드립니다. 열차 운행이 정상화되는 시기(1월 14일) 이후에도 인력 부족 등을 고려하여 대체인력은 당분간 유지할 계획입니다."

안도의 숨을 내쉬는 것도 잠시, 보도자료 하단에 꼬리표처럼 달린 '대체인력 채용 근로 조건'은 다시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가. 근무기간 : 계약체결일부터 철도공사 요청일까지
나. 계약방법 : 일용근로계약

1월 3일, 최연혜 코레일 사장도 뉴스에 나와서 말했다.

"208명 중 코레일 퇴직자를 제외하고, 기관사 면허소지자와 인턴 수료자 171명은 근무를 이어갈 거다. 신규 채용 시 가산점이 있다."

이날 이후 더 이상 우리 '대체인력'들은 깊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그저 서로에게 "잘될 거"라는 말로 새해 인사를 대신했다. 다음 날 새로운 일정표를 받았다. 부기관사로 70시간 실습이 포함된 일정표였다. 하지만 1월 18일까지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빈 칸뿐이었다.

다들 겉돌았다. 서로 인사도 잘 안 했다. "이러다 잘리는 거지"란 말만 입에 달고 살았다. 아침 출근길에 어머니가 "괜찮은 거지?"라고 물었다. "괜찮다"고 했는데 막상 집을 나와 버스를 타니 괜찮지 않았다. '어렵게 구한 일자리를 왜 그만뒀나'하는 후회도 밀려왔다. 그제야 불안한 현실이 온전히 보였다.

회사에 도착해도 마찬가지였다. 복도에서 서로 만나면 고개를 먼저 돌렸다. 파업에서 돌아온 사람도, 파업 때 남았던 사람도, 파업 때문에 새로 채용된 사람도, 파업으로 대체인력을 고용한 회사도. 다들 눈치만 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70시간의 실습이 시작됐다. 처음 실전에 투입되는 거라 바짝 긴장했다. 기관사를 보조하는 부기관사 역할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박승원입니다."

선배는 "잘 왔다"고 답해줬다. 하지만 표정이 없었다. 어두운 기관실, 4시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열차는 운전 내내 덜컹거렸다. '채용은 요청일까지'란 말이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덜컹 거리는 열차 우리는 4시간 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 김종훈


덧붙이는 글 김종훈 기자는 오마이뉴스 19기 인턴기자입니다.
#철도파업 #대체인력 #코레일
댓글30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법조팀 취재기자. 오늘도 애국하는 마음.

AD

AD

AD

인기기사

  1. 1 모임서 눈총 받던 우리 부부, 요즘엔 '인싸' 됐습니다
  2. 2 카페 문 닫는 이상순, 언론도 외면한 제주도 '연세'의 실체
  3. 3 생생하게 부활한 노무현의 진면모... 이런 대통령은 없었다
  4. 4 "개도 만 원짜리 물고 다닌다"던 동네... 충격적인 현재
  5. 5 "4월부터 압록강을 타고 흐르는 것... 장관이에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