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 수도원에서 1박을 하다

등록 2014.01.10 17:08수정 2014.01.11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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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처음으로 수도원 구경을 하고 수도원에서 1박을 했습니다. 젖먹이 시절에 세례를 받고 평생 동안 천주교 신자로 올곧게 살아왔지만, 수도원 구경을 해보기는, 더욱이 수도원 안에서 잠을 자보기는 정말 처음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획기적인 일이기도 해서 글 하나 쓰고 싶은 마음이 동했습니다. 지난 글에서 6일 경기도 화성시 기산동 기산성당을 간 것이 올해 들어 첫 먼 길 나들이라는 말을 했지만, 그건 개인적이고 자발적인 나들이였고, 4일의 출타는 성당 행사로, 즉 단체로 움직인 일이었습니다. 아무튼 올해의 내 첫 나들이는 4일이었던 것으로 바로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대한문미사 때 많이 들었던 '성가소비녀' 수도회

a 김현남 수녀님 강의  웃음치료사인 성가소비녀회 김현남 메히틸다 수녀님은 이틀 동안 2시간씩 논스톱으로 강의를 했다. 73세 할머니 수녀님이신데도 전혀 노인 같지가 않았다.

김현남 수녀님 강의 웃음치료사인 성가소비녀회 김현남 메히틸다 수녀님은 이틀 동안 2시간씩 논스톱으로 강의를 했다. 73세 할머니 수녀님이신데도 전혀 노인 같지가 않았다. ⓒ 송정희


내가 적을 두고 있는 대전교구 태안성당은 올해 본당 설정 50주년을 맞았습니다. 8년 동안의 공소 시절을 마감하고 1964년 8월 사제가 상주하는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니 어언 50년(공소 시절을 포함하면 58년)의 역사를 갖게 된 것이지요.

지난해 1월 제14대 주임으로 부임하신 최교선 토마스 신부님은 본당 50주년인 올해 연초에 특별한 기획 하나를 시행하였습니다. 사목위원들과 단체장들의 1박 2일 피정을 수도원에서 갖기로 한 것이지요. 그동안 본당 직책봉사자들의 피정 행사는 성지 '피정의 집'이나 신학교 교육관 등에서 가져왔고 더러는 휴양지에서 갖기도 했는데, 수도원에서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몇 년 전에 태안성당 사목회장(총회장)을 역임한 바 있는 나는 현재 50주년 준비위원회 위원장 겸 50년사 편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어서, 이번의 사목위원·단체장 피정에 당연히 참가해야 했습니다.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못 자는 습성에다가 건강 문제도 있었지만, 하느님께서 잘 돌보아주시리라는 믿음을 저버릴 수 없었습니다.


이번 사목위원·단체장 피정에는 주임신부님과 분원장 수녀님을 합해 34명이 참가했습니다. 우리 일행은 4일 오전 8시 30분 관광버스로 본당을 출발했습니다. 우리가 먼저 간 곳은 서울 용산구 이촌2동의 새남터 순교성지 성당이었습니다(새남터 순교성지는 내가 처음 가본 곳이어서 죄스러움과 부끄러움을 동반하는 각별한 감회가 있었습니다만, 그 얘기는 다음번 글에서 들려 드리겠습니다).

새남터 순교성지 성당과 '순교자 기념관' 등을 둘러본 우리 일행은 곧 정릉에 있는 '성가소비녀회' 수도원(본원)으로 이동했습니다. 성가소비녀회 수도원은 언덕 위에 있었지만, 고층아파트들에 둘러싸여 있어서 언덕 위라는 지형적 특성은 별로 실감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수도원 건물이 처음 건립되었던 1969년 당시에는 한적한 언덕 위에서 지형적인 고고함도 지녔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a 웃음 만발 김현남 메히틸다 수녀님의 '웃음강의'를 들으며 우리 일행은 수없이 폭소를 터뜨리곤 했다.

웃음 만발 김현남 메히틸다 수녀님의 '웃음강의'를 들으며 우리 일행은 수없이 폭소를 터뜨리곤 했다. ⓒ 송정희


성가소비녀회(聖家小婢女會)라는 수도회 이름은 내게 친숙하고 정다운 이름이었습니다. 2012년 7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2년 동안 대한문미사에 참례하면서 매번 성가소비녀회라는 이름을 들었습니다. 대한문미사의 사회를 보시는 신부님들은 영성체 후에는 매번 미사에 참례한 수도회들을 소개하곤 했는데, 성가소비녀회는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수많은 수도회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나는 뜨겁게 손뼉을 치곤했는데, 고마운 마음이 한량없었지요.         

1943년 12월 25일, 서울 혜화동성당 주임이었던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프랑스인 성재덕(Pierre SINGER, 1910~1992) 신부에 의해 설립된 성가소비녀회는 성모 마리아께서 예수님의 잉태를 알리는 가브리엘 대천사에게 "주님의 종이오니…"라고 하신 말씀과 한국의 순교성녀 김효임 김효주 자매가 관장 앞에서 "주님의 작은 여종"이라고 대답한 것을 생각하여 '소비녀'라는 이름을 채택하였답니다.

그후 수도회의 이름을 '성가소비녀회'로 명명하였는데, 한동안은 수도회 주보인 '나자렛 성가정(예수·마리아·요셉)'과 명확히 부합하기 위해 '성가수도회'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1986년 원래의 이름인 '성가소비녀회'를 되찾아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또 남성 신자들에게도 수도원을 개방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고….

나는 대한문미사와 2010년 11월부터 2011년 11월까지 만 1년 동안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길거리에서 매주 월요일 저녁 봉헌되었던 4대강 파괴사업 중단을 위한 생명평화미사에서도 많이 들었던 성가소비녀회라는 이름을 즐겁게 떠올리며 난생 처음 수도원 건물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그리고 안내를 맡으신 젊은 수녀님을 뵙는 순간 낯익은 분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인사를 건네자마자 "대한문미사 때 많이 뵌 수녀님 같습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더군요. 그 수녀님은 미소를 지으며 "네, 대한문미사에 많이 갔었어요"라고 답해 나는 나도 모르게 반갑다고 하면서 손을 내밀었고, 수녀님과 악수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수도원을 보고, 수도원에서 1박하다

a 즐거운 강의 김현남 메히틸다 수녀님의 강의를 들으며 일행 모두 어린애들처럼 즐거워했다.

즐거운 강의 김현남 메히틸다 수녀님의 강의를 들으며 일행 모두 어린애들처럼 즐거워했다. ⓒ 송정희


우리 일행은 각자 방으로 들어가 짐을 들여놓으며 모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인 1실이었습니다. 방은 따뜻했고, 침대와 책상과 의자와 작은 옷장이 있었으며 화장실이 딸려 있었습니다. 아늑하고 쾌적한 혼자만의 침실이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충분히 휴식을 하고 오후 3시 30분 강당에 모여 웃음치료사인 김현남 메히틸다 수녀님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김현남 수녀님은 73세이신 할머니 수녀님인데 전혀 노인 같지가 않았습니다. 나비 모양의 차림을 하고 나오신 수녀님은 2시간 동안 온 강당 안을 웃음의 도가니로 만들었습니다.

김 수녀님은 유치원 원장으로 오래 일하셨고, 유치원 복무 후에는 오랫동안 교도소에서 봉사하시면서 웃음치료사 자격증을 받아 웃음전도사로도 전국 곳곳을 다닌다고 했습니다. 우리 일행은 하나같이 '웃음천국'을 맛보는 기분이었습니다. 폭소를 연발하면서 어린애들처럼 즐거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김 수녀님은 말씀 사이사이에 성가소비녀회에 관한 얘기도 들려주었습니다. 현재 가족은 500명가량인데, 전에는 도시의 큰 성당들에도 나가 있었지만, 큰 성당들에서는 모두 철수하고 시골의 작은 성당이나 공소·어린이 시설·병원과 교도소 등에서 일한다고 했습니다.

샬트르 바오로회 소속인 우리 본당의 분원장 수녀님도 어린 시절에 김현남 수녀님의 지도를 받았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습니다. 김 수녀님은 우리 본당 이 아녜스 노엘 수녀님의 어린 시절을 잘 기억해서 짧은 에피소드도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김 수녀님은 웃음강의 사이사이에 "우리 성가소비녀회 수녀들이 대한문미사에 가장 많이 갔다"는 말도 했고, "문정현 신부님을 돕기 위해 제주 강정에 두 명의 수녀를 파견하고 있다"는 말도 했습니다.

나는 수녀님이 그 얘기를 좀 더 자세히 해주기를 바랐지만, 수녀님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배려해서인지 긴 얘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일행 중에는 제주도 강정 얘기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 같고, 대한문미사를 처음 듣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서, 나는 조금 서운한 마음이기도 했습니다.                   
    
김현남 수녀님의 웃음강의 후 우리 일행은 김 수녀님의 아코디언 연주에 맞춰 노래를 네 곡이나 불렀습니다. 김 수녀님의 아코디언 연주는 일품이었습니다. 큰 대회에서 수상을 한 경력도 있다고 했고, 어디를 가든 아코디언을 가지고 다닌다고 했습니다.  

우리 일행은 저녁식사 후 다시 강당에 모여 저녁기도를 바치고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각 분과와 단체별로 지난 1년 동안의 사업 보고와 2014년 50주년 해의 사업계획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a 친교의 시간 하루 일정을 마치고 수도원 식당에서 미사주로 사용하는 마주앙 포도주를 마시며 일행 모두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

친교의 시간 하루 일정을 마치고 수도원 식당에서 미사주로 사용하는 마주앙 포도주를 마시며 일행 모두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 ⓒ 송정희


그리고 다시 식당으로 옮겨 가서 오후 11시 30분까지 친교 시간을 가졌습니다. 주임신부님이 가져온 미사주로 사용하는 '마주앙' 포도주를 마시며 즐겁게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수도원 안이라 고성방가를 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더 없이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건강 때문에 술을 못 마시는 나도 포도주 한 잔을 오래 음미하며 끝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오전 우리 일행은 또 두 시간 동안 김현남 수녀님의 강의에 흠뻑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김 수녀님은 이번에는 웃음강의가 아닌, 50년 수도생활 가운데서 접할 수 있었던 하느님과의 만남을 소개하는 강의를 했는데, 그 강의를 들으면서도 우리는 수없이 폭소를 하곤 했습니다.

김현남 수녀님의 강의가 너무도 재미있고 감동적이어서 우리만 듣고 가는 것이 너무 아쉽고 아깝다는 의견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김 수녀님을 우리 본당에 한 번 초청을 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져서, 올해 12월 대림 제2주일에 김 수녀님이 우리 본당에 오시기로 수녀님과 약속을 했습니다.

a 수도원성당 미사 1박2일 피정 일정을 마치고, 수도원 성당에서 '주님공현대축일' 미사를 봉헌했다.

수도원성당 미사 1박2일 피정 일정을 마치고, 수도원 성당에서 '주님공현대축일' 미사를 봉헌했다. ⓒ 송정희


다음날 우리 일행은 오전 11시 30분 '주님공현대축일' 미사를 봉헌했고, 점심식사 후 낮 1시 30분쯤 성가소비녀회 수도원을 출발, 태안으로 돌아왔습니다. 생각하면 꿈결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1박 2일 출타가 부담스러워 사목위원·단체장 피정에 참가하지 않으려는 나를 설득하여 참여케 해주신 주임신부님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나로 하여금 처음으로 수도원 구경도 하게 해주고, 하룻밤 편안하게 잠도 자도록 해주며, 이틀 동안 웃음천국과 감동 속으로 몰입하도록 해주신 성가소비녀회 수도원과 수녀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천주교 수도회 #성가소비녀회 #천주교 대전교구 태안성당 #대한문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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