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아도 되나요?"라 묻는 아이... 당신의 대답은?

잘 노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란다는 사실, 잊지 마세요

등록 2014.01.11 15:12수정 2014.01.11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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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이들이 무리지어 노는 것. 이것은 아이들에게 강렬한 추억이 될 것이다.

아이들이 무리지어 노는 것. 이것은 아이들에게 강렬한 추억이 될 것이다. ⓒ sxc


큰딸 똥순이(큰딸 별명)는 지금 제 이모네에 가 있다. 지난 일요일에 갔으니 오늘(10일, 금요일)로 벌써 5일째다. 애초에는 둘째까지 함께 가기로 했었다. 그런데 둘째는 어린이집에서 하는 발표 준비가 더 좋았나 보다. 제 누나 따라가겠다며 떼를 쓰던 녀석이 막상 출발 당일에는 안 간다며 '쿨'하게 나왔다.


우리 집 아이들이 저희 이모네에 가는 일은 일종의 연례 행사 같은 것이다. 큰딸이 너댓 살 때부터였으니 4~5년 정도 되지 않았나 싶다. 이모네 여행은 주로 방학 때를 이용한다. 지난 여름에는 첫째와 둘째가 2주 넘게 이모네에서 보냈다. 작년 겨울에는 거의 한 달을 지낸 것 같다.

처형 집 아이들은 둘이다. 올해 초등학교 6학년, 5학년이 된다. 이 조카들이 어엿하게 큰형, 큰누나 노릇을 한다. 우리 집 아이들은 셋이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는 큰딸 아래로 여섯 살, 네 살 먹은 둘째와 막내가 있다. 고만고만한 것 같지만 서로 적당히 나이 차가 있어서 어울려 잘 논다.

아이들은 '언니' '형' '누나' 같은 호칭어를 자연스럽게 쓴다. 이들 친족 호칭어가 고루 섞여 있는 덕분에 가족 내 상하 서열에 대한 감각도 쉽게 익힌다. '형' '언니' '누나'로 불리는 녀석들은 그 호칭에 걸맞게 의젓한 행동을 한다. 동생들도 '형'이나 '언니' '누나' 말을 대체로 잘 따른다.

이들 무리의 '우두머리'인 6학년짜리 조카는 제 동생들을 데리고 온갖 곳을 다 다닌다. 놀이터와 인근 공원은 물론이고 집 앞 동산까지 아이들의 놀이 영역권에 속해 있다. 지난 겨울에는 자기들끼리 용돈을 털어 영화를 두 편이나 봤다. 그 뒤 다섯 살 먹은 둘째는 거의 한 달 간 그때 본 영화 이야기를 했다. 그만큼 강렬한 경험이자 추억이 된 것이다.

교과서만 보는 게 공부는 아니었다


초등학교 5학년 겨울방학 때였던가. 2학년짜리 동생과 함께 처음으로 서울에 갔다. 서울로 시집 간 큰누나가 한 번 올라오라고 해서였다. 아버지께서 쥐어 준 기차표를 들고 동생과 함께 기차에 올랐다. 무서웠지만, 어린 형제끼리만 하는 기차여행이라 가슴이 설렜다. 전철을 타다 신발을 빠뜨려 곤혹스러웠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기만 하다.

어린 시절 시골 집에는 방학 때마다 고모네 사촌 형제들이 내려왔다. 누나가 있었고, 남동생·여동생도 있었다. 우리는 목줄 풀린 강아지들처럼 들과 산으로 쏘다니며 놀았다. 개구리와 메뚜기를 잡았고, 개울에 가서는 피라미와 다슬기를 훑었다. 그렇게 정신 없이 놀다 보면 어느새 방학이 끝나 있었다.


그때라고 방학 숙제가 없었던 게 아니다.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도 지금보다 더 많았지 않나 싶다. 중학교 시절에는 매달 말에 월말고사도 치렀을 정도였다. '공부해야 잘 산다'는 말은 지금보다 훨씬 더 자주 들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공부가 인생의 전부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른들도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은 안 계셨다. 망아지처럼 뛰어 놀면서 더 많은 걸 느끼고 배운 걸 생각하면, 어른들이 말씀하시던 '공부'가 꼭 방학 숙제와 같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월말고사용으로 나오는 교과서 공부만이 분명 전부는 아니었다.

어느새 아이들에게는 '(학교·교과서) 공부가 인생의 전부'인 시대가 돼버렸다. 방학이 되어도 제멋대로 노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우리 집 아이들처럼 이모네에 가서 한두 주일을 보내는 건 세상 물정 모르는 일로 비웃음 사기 딱 좋다. 방학에도 아이들은 학원을 들락거리고 캠프를 기웃거리며 여전히 바쁘기만 하다.

장모님의 말씀에 울컥했던 이유

얼마 전이었다. 장인·장모님과 함께 새로 이사한 처남 집에 가는 길이었다.

"똥순이 영어도 좀 가르치고 허소."

조수석에 앉은 장모님께서 말씀하셨다. 뒷좌석의 아내와 처형네 아이들(모두 시험 성적을 잘 받아 오는 아이들이다)이 공부를 잘해서 기특하다느니 하는 대화를 나눈 후였다.

"…."
"제대로 영어를 배우고 올라가지 않으면 힘들어하다고 하대. 어디 학원이라도 좀 알아보고 보내야지 않겠는가."

묵묵부답인 내게 장모님께서는 걱정스런 말투로 한 마디를 더 보태셨다.

손녀 생각해서 하시는 그 말씀을 어찌 모르겠는가. 하지만 문득 '울컥증'이 일었다. '내 자식 위한다며 영어 학원 보내면, 학원 못 다니는 아이들은 어떻게 한대요' 하는 말이 성대까지 올라왔다. '영어 학원 안 보내도 학교에서 잘 가르쳐 줍니다'는 말은 목젖 바로 아래까지 이르렀다.

나는 끝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손녀 위하는 장모님 가슴에 괜한 상처를 주기 싫었다. 그런데도 씁쓸한 마음은 내내 가시지 않았다.

"놀기만 해도 돼요?"... "그럼"

a  아이들은 잘 놀아야 한다. 잘 노는 게 진짜 공부를 하는 데 필요한 귀한 밑절미다.

아이들은 잘 놀아야 한다. 잘 노는 게 진짜 공부를 하는 데 필요한 귀한 밑절미다. ⓒ sxc


아이들은 잘 놀아야 한다. 잘 노는 게 진짜 공부를 하는 데 필요한 귀한 밑절미다. 아내는 간혹 큰딸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한다. 자기도 잘 모르는(!) 산수 문제를 똥순이랑 함께 낑낑거리며 풀기도 하는 것을 보면 우습기만 하다.

나는 큰딸이 학교에 입학한 뒤로 '공부하라'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큰딸이 학교에 갈 때도 '공부 열심히 하고 와' 대신 '잘 놀고 와' 하고 말한다.

어느 날이었다. 비가 내려서 차로 큰딸을 데려다줬다. 여느 때처럼 '잘 놀고 와'라고 인사했다.

"아빠, 근데 공부 안 하고 놀기만 해도 돼요?"

큰딸이 차에서 내리면서 물었다.

"그럼."

큰딸은 내 대답을 듣자마자 밝게 손을 흔들며 교문 안으로 들어갔다.

며칠 전, 막 이모네에 도착한 큰딸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똥순아, 사랑해. 밥 잘 먹고, 오빠 언니랑 즐겁게 잘 놀아. 이모 말씀 잘 듣고. 틈틈이 독후감도 쓰렴."

두어 시간 뒤에 답장이 왔다.

"아빠 사랑해요. 아빠의 그 말씀 잊지 않을게요."

아이들, 계속 놀게 할 생각이다

내 '잘 놀고 와' 교육론 덕분일까. 큰딸은 정말 잘 논다. 병원놀이, 시장놀이로부터 시작해 동굴놀이, 야외 냉장고놀이, 이불 기차놀이 등등으로 진화해온 똥순이의 '놀이사(史)'는 다채롭기만 하다. 담임 말로는 학교에서도 친구들이랑 가장 잘 노는 축에 낀다고 한다.

그래도 큰딸은 두 동생들 앉혀 놓고 차분히 책을 읽어줄 때가 많다. 어렸을 때부터 텔레비전 대신 책을 장난감 삼아 보내온 버릇 덕분이지 싶다.

어린이집에 다닐 때는 가방에 책을 딸려 보내곤 했다. 큰딸에게는 장난감처럼 갖고 놀라고 말했다. 책은 아침에 똥순이가 직접 고르게 했다. 그래서일까. 큰딸은 지금도 스스로 책을 챙겨가는 '의정스러운'('대견하고 의젓하다'는 뜻의 전남 토박이말) 짓을 한다. 동생들도 그런 누나, 언니를 그대로 따라 한다.

방학에 아이들을 놀린다고 나무라고 걱정하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다. 학원 보내지 마라, 잘 노는 게 중요하다 등등의 말을 하면, '얘들 좀 더 나이 먹어봐, 그렇게 놀리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걸?'이라는 이들도 있다. 마치 '너만 잘난 체하지 마라, 우리도 잘 안다'며 따지는 듯한 기세다.

하지만 아이들이 좀 더 나이를 먹어도 그렇게 되지 않으려 한다. 불안의 바이러스로 기생하는 교육 망국병을 누가 만들었든지 간에 그것을 키워가고 유지하는 이들은 결국 우리 부모들이 아닐까 때문이다. 우리 집 아이들의 이모네 순례도, 저희 이모가 받아주는 한, 결코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아이들이, 사촌들과 함께 하나하나 쌓아가는 추억만으로도 인생의 큰 힘을 갖게 되리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교육 #공부 #'잘 놀고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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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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