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막지 말라" VS "밥도 굶고 나왔는데... 미쳤나"

[현장] 새벽 충돌 후 고정마을회관서 주민과 경찰 대화... 여전한 입장차

등록 2014.01.20 16:45수정 2014.01.20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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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차량 앞에 주민들이 앉아서 통행을 막았다. ⓒ 김종술


"우리가 (한국전력) 저 사람들하고 싸우는 거 안 막기로 했잖아요. 약속을 지켜야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똑같은데 나 잡아가라…. 이게 무슨 법이고. 양심이 있으면 이래 못한다. 정부가 우리를 강탈해 가잖아요. 너희는 헌법을 무시하고 사람을 죽이고 있다. 잡아가라, 잡아가라…."

20일 오전 6시. 밀양 송전탑 공사 중단을 요구하는 상동면 고답·고정·모정·여수마을 등 80여 명의 주민이 고정삼거리 앞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도로를 점거했다. 이들이 타고 온 차량과 경찰차, 주민들이 뒤섞이면서 도로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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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차량 앞에 주민들이 앉아서 통행을 막았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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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작업자를 경찰 차량에 태우고 간다“는 주민들의 불만에 경찰이 문을 작업자가 없다는 것을 확인시키고 있다. ⓒ 김종술


어둠이 채 가시지도 않은 오전 7시 18분. 도로를 막아선 주민들을 향해 지휘관은 "고착해, 밀어, 할머니들 모셔"라고 명령했다. 이에 주민들은 고함을 질렀고, 경찰은 "그만 하세요, 경찰차를 막으면 안 되잖아요"라고 소리치면서 여기저기서 소란이 일었다. 주민들은 급기야 경찰이 차량에 한전 작업자를 태우고 이동한다면서 경찰 버스를 확인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렇지만 순식간에 상황은 끝나 버렸다. 한전 작업 차량이 다른 길로 우회한 것이다. 이에 새벽부터 길목을 지키던 어르신들 사이에서 허탈한 마음에 "와 한전을 보호하는데"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오전 7시 25분. 때마침 현장을 걸어서 이동하던 김수환 밀양경찰서장을 향해 대화를 요청했다.

기자는 지난 8일 국가인권위·정보과장·주민들 간 합의에서 "경찰 차량을 막지 않고 한전 차량을 막는 것은 경찰이 개입하지 않기로 했다"는 내용이 있었다는 주민들의 주장에 대해서 물었다. 김수환 서장은 "그런 적 없다. 한전 차량을 막는 것은 불법인데 주민들이 (경찰·한전·주민) 차량을 막지 않기로 했었다"고 밝혔다.

"경찰이 한전만 보호" - "한전 편만 드는 것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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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에 앉은 주민을 경찰들이 투입되어 옮기고 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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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앞을 막아선 주민이 경찰에 들려 나오면서 부상자가 발생하고 있다. 대책위이계삼 사무국장이 그만 나오시라고 설득하고 있다. ⓒ 김종술


오전 7시 51분 고정마을회관에는 고답, 고정마을 이장과 김수환 서장, 정보과장 등이 대화에 들어갔다. 대화 도중에 흥분한 주민이 두세 차례 항의를 하기도 했다.


고답이장은 "우리가 (농로) 가는 좁은 길에 경찰이 서 있어서 불편하다. 농사를 지으러 가는 길목에서부터 '농사지으러 가느냐! 안 가느냐!' 하면서 서로 피곤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농번기도 다가오고 우리가 농사를 편하게 짓도록 좀 더 산 위쪽으로 올라가 달라"고 요청했다.

김수환 서장은 "우리가 보기에는 공사를 막을 게 명백하고 산에 올라가면 다칠 우려도 있어서 농로에서 막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막은 것인데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최대한 위쪽으로 올라가겠다. 차는 막지 마라, 한전에서 112신고가 들어오면 우리도 곤란하다"는 태도를 밝혔다.

그리고 "주민이 차량을 막으면 사법처리를 할 수밖에 없다. 나도 고향 사람 사법처리 하기 싫다. 그리고 우리는 한전 편만 들지도 않는다. 우리도 어르신들 다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한다. 다칠까 봐 노심초사한다"고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그러자 고답이장은 "우리도 어르신들에게 자제하도록 하겠다. 하지만 힘없는 할매·할배가 가진 게 욕밖에 없다. 그리고 극한 상황에서 감정에 치우쳐서 순간적으로 하는 것을 이해해 달라, 지난번에 칼 같은 것에 손이 벤 상처가 생겼다. 그래서 감정이 더 격해져서 그런 것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수환 서장은 "손이 벤 것을 확인하기 위해 감찰 수사를 했었다. 의사에게 찾아가 확인을 했는데 칼에 베인 것 같지는 않다고 들었다. 혁대나 지퍼에 걸렸는지는 모르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정보과장은 주민이 가지고 나오는 마이크를 문제 삼았다. 그는 "(스피커폰) 마이크를 사용하면 주민들을 업(흥분) 시킨다. 말로 하면 개인한테 전달되지만 마이크는 대중에게 전달되어서 경찰도 함부로 마이크 사용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이크로 서장님 나오시라, 정보과장님 나오시라 하면서 자극을 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당사자인 주민이 말했다.

"제가 (스피커폰) 이거를 들고 나와서는 큰 충돌이 없었습니다. 이거 없을 때는요. 고답에서 할매들 많이 (병원) 실려 갔습니다. 내가 가지고 오는 이유가 충돌을 없애기 위해 가지고 온 것으로 우리도 폭력 싫어합니다. 선동하는 것도 아닌데 이해를 해 달라"고 요청했다.

고답이장은 "할매·할배가 감정이 북받쳐서 하는데 우리가 막아라, 막지 마라 하지 못한다. 우리는 한전이 올라가는 것까지 안 막겠다고는 약속을 못 한다. 반대운동이 오래되면서 주민들끼리 연락해서 오는 것도 우리가 막지 못한다"며 "그리고 우리가 국가에 복지 혜택을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내 살던 곳에 살게만 해달라는 것이다. 송전탑이 들어오면 사느냐 못사느냐 문제로 상당히 어려운 시점인데 할매들이 욕을 좀 심하게 했다고 치더라도 어려운 실정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를 해줘야 하는데 너무 강압적으로 팔을 틀어 버린다든지 너무 심하게 들어다가 탁 놓아 버리면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자 정보과장은 "할매들의 입장은 다 알지만, 도로를 장시간 막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법을 위반하는 행위를 안 하시는 게 좋은데 하더라도 분풀이를 하셨으면 좀 빠져 주시면 좋은데 우리도 받아 들일 것은 받아 들이겠다"고 약속했다.

회관 입구에 있던 한 주민은 "주민이 일방적으로 한전에 피해를 보면서 공사를 못 하게 막고 있는데 경찰이 한전만 보호하면서 우리보고 경찰차도 한전 차도 막지 말라고 한다면 우리가 새벽부터 밥도 굶어 가면서 나왔는데 미친 것인가? 우리는 우리의 뜻대로 끝까지 싸우다가 죽을 것이다"라고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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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이 고정삼거리 부근에서 아침 6시부터 차량을 막았다. ⓒ 김종술


#밀양 송전탑 #김수환 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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