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한방... 대학은 삼성 비판 못할 것이다

[주장] 실익 적은 총장추천제, 삼성이 도입한 진짜 이유

등록 2014.01.27 11:06수정 2014.01.27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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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은 15일 신입사원 채용제도를 전면 개편해 전국 200개 4년제 대학의 총·학장에게 인재 추천권을 부여하고 연중 수시로 지원자를 발굴하기로 했다. 사진은 지난 2013년 10월 13일 서울 대치동 단국대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에서 삼성그룹 직무적성검사(SSAT)시험을 마친 취업준비생들이 고사장을 나서는 모습 ⓒ 연합뉴스


삼성그룹이 19년 만에 채용 시스템을 변경했다. 올해부터 새로운 제도에 의해 신입사원을 선발하게 되는데 이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새롭게 도입되는 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총장 추천제'다. 그러나 추천장을 받았다는 것이 곧 합격을 의미하지 않는다. 서류전형만 통과된다. 삼성은 대학별로 추천받은 학생의 최종 입사비율을 관리하고 추후 대학별 '추천수 조정'에 반영할 예정이다. 이제 총장은 자신이 추천한 학생의 필기시험과 면접시험까지 관리해야 할지도 모른다.

더욱 커다란 문제는 앞으로 대학은 '취업줄'을 쥐고 있는 삼성을 의식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도 그러했지만 앞으로는 노골적으로 협조적 관계를 유지하려 할 것이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못했든 대학 교수들의 비판에서 삼성은 자유롭게 될 것이다. 취업이 삼성을 자유롭게 한 것이다.

추천 인원 서열화로 대학 통제 메커니즘 만들어

삼성은 대학을 '상아탑', 학문의 전당으로 그 가치를 인정하고 있는가. '총장 추천제'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학의 총장을 을(乙)로 취급하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에 던지는 질문이다.

대학별 총장 추천 인원은 상이하다. 서열화를 시킨 셈이다. 이를 통해 삼성은 대학을 통제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만들었다. 성균관대가 115명으로 가장 많고, 서울대·한양대가 110명, 경북대·연세대·고려대가 100명 씩이다. 영남에 위치한 경북대 100명, 부산대 90명인 반면, 호남을 대표하는 전남대는 40명을 추천할 수 있다. 영호남 차별이라는 비판이 일각에서 제기되는 이유다.

추천 대상인 학생의 조건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 학점, 영어능력은 최소 수준을 요구하고 있다. 4학년 1학기까지 취득 평점이 4.5점 만점에 3.0점 이상 학생이면 되고, 영어는 오픽(OPic) 일정 등급 이상이면 된다.


나머지는 '총장'으로 상징되는 대학의 자유 선발 영역이다. 대학은 '추천 사유'를 기재하는데 학생의 기본인품, 대학생활상, 회사와 사회에 기여가 될 것으로 판단하는 이유 등을 대학이 직접 작성하고 총장이 자필 서명함으로써 보증하는 형식을 갖춰 삼성에 제출하게 된다.

이제 피가 끊는 학생들은 삼성을 비판하지 못할 것이다. '안녕' 대자보를 붙여서도 곤란할 것이다. 총장이 튀는 행동을 하는 학생을 굳이 추천할 이유는 없다. 4년 동안 학생들은 총장으로 상징되는 대학본부의 권위와 충돌하지 않으려 조심할 것이다. 200여 개 대학 총장들은 5천 명의 학생에 대해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 추천서를 제출하게 된다.

4년간 숨죽여가며 대학생활을 한 노력으로 총장 추천서를 받았다고 가정하자. 이제 삼성에 입사하게 되는가? 아니다. 그 학생은 서류전형을 통과했을 뿐이다. SSAT(필기시험)와 면접전형이 그 학생을 기다리고 있다.

학생만 피곤한 게 아니다. 총장 역시 추천한 학생에 대한 A/S를 확실히 해야 한다. 삼성은 '추천한 학생의 최종 합격률 등을 고려해 총장 추천수를 조정할 것'임을 밝혔다. 추천 학생의 SSAT 실력을 미리 검증하든, 아니면 추천한 다음에 관리해야 한다. 그리고 면접시험 관리까지 해야 한다.

'총장추천제'를 담보로 한 대학-삼성 '침묵의 카르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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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의 삼성 깃발이 펄럭이는 모습. ⓒ 연합뉴스


그렇다면 총장 추천의 계량적 효과는 어떠할까. 만일 삼성그룹이 2014년 신입사원 채용 규모를 지난해와 같은 9천 명이라고 확정했다고 가정해 보자. 대부분 기업은 채용인원의 10배수를 필기시험으로, 3배수를 면접 대상자로 선발한다. 삼성그룹이 서류 전형 규모에 대해 정확히 밝히지 않아 통상적인 기준을 적용한다.

이 가정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9만 명을 대상으로 SSAT(필기전형)를 시행하고, 그 중 3분의 1 정도인 2만 7천 명 가량을 면접 대상자로 뽑은 다음 그 가운데 3분의 1인 9천 명을 최종 선발한다. 총장 추천서를 받은 5천 명은 떨리는 마음으로 SSAT 고사장에 앉아 있을 약 9만 명 내외의 지원자 중 일부일 뿐인 것이다.

운 좋게 SSAT를 통과하고 면접 전형까지 간다면 '총장 추천'을 받은 지원자가 유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추천서' 효과를 보게 된다는 의미이지, 그것이 100% 합격을 보장할 리 없다.

사실 총장의 추천을 받은 그들은, 학점과 영어점수가 월등하고 뭔가 내세울 만한 독특한 '스펙'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총장의 이름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서류전형을 통과할 '준비된 인재'에 해당한다. 왜 이렇게 힘들게 서류전형을 통과해야만 하는 것일까.

새로운 채용 제도 하에서 대학생들은 삼성 비판에 주저하게 될 것이다. 대학 교수들은 어떠할까? 대학 교수들이 자유롭게 삼성을 비판할 수 있을까. 추천인원 수가 조정될 것을 염려하는 총장과 학생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이 제도의 본질적인 문제점은 학자적 양심을 걸고 자유로운 비판을 해야 하는 대학이, 대학 교수들이 삼성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하고 있다는 대목이다. 교수들이 맘편히 삼성의 문제점, 지배구조 등에 대해 비판하려면 용기 그 이상이 필요해졌다.

앞서 보았듯이 삼성은 일방적으로 대학별 총장 추천수 인원을 '통보'했다. 대학은 수용할 수밖에 없는 위치다. 연·고대가 한양대보다 낮은 대접을 받았지만 '기준'이 무엇인지 대놓고 항의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추천 인원수를 늘리기 위한 방법을 문의했을 것이고, 삼성의 관대한 협조를 요청했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진보 성향의 한 교수가 언론 지면에 '삼성을 비판한다'는 칼럼을 기고할 수가 있을까.

앞서 보았듯이 '총장 추천서'의 실익은 크지 않다. 추천을 받으면 서류전형이 통과될 뿐이다. 새 채용제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로 삼성은 '총장 추천서'를 언급했지만 실제 기대되는 효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으로 분석된다.

'총장 추천서'라는 채용제도를 담보로 삼성과 대학 사이에는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될 가능성이 무척 커졌다. 그것이 사전에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은 없다.

삼성은 대놓고 언급하지는 않았다. 채용제도의 일환으로 '총장 추천제도'를 도입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 대학은 충분히 어떻게 삼성을 대우해야 하는지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삼성은 대학 사회에서도 갑(甲) 역할을 하려는 것인가.
#삼성 #새 채용제도 #총장 추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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