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살 빈민이 하루 아침에 재벌로, 그의 비밀은?

[리뷰] 조세핀 테이 <브랫 패러의 비밀>

등록 2014.02.05 13:19수정 2014.02.05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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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랫 패러의 비밀> 겉표지
<브랫 패러의 비밀>겉표지검은숲
남은 인생동안 다른 사람의 역할을 하면서 산다면 어떨까. 배우들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다른 사람을 연기하는 것 처럼 변하는 것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다른 신분, 다른 이름, 다른 출생을 가진 사람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그때까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 사회적 지위, 재산, 인간관계, 가족관계 등을 모두 버려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는 것을 주변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에 따른 스트레스도 보통이 아닐 것이다. 그렇더라도 거기에 따른 대가가 그만큼 커다랗다면 한 번쯤 시도해볼만 하다. 예를 들어서 갈데 없던 노숙자가 어느날 재벌가의 상속자로 변신할 수 있다면, 그래서 한 밑천 잡을 수 있다면 대부분은 진지하게 고민해볼 가능성이 많다.

나중에 발각되더라도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고 단지 다른 사람을 사칭했을 뿐이다. 고소를 당하고 재판에 회부되더라도 그래서 최악의 경우 감옥살이를 하게 되더라도,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라면 여기에다가 한 번 인생의 승부를 걸어볼 수도 있다.

한 떠돌이에게 찾아온 행운의 기회

조세핀 테이의 1949년 작품 <브랫 패러의 비밀>의 주인공 브랫 패러에게 바로 그런 기회가 찾아온다. 이제 곧 성년이 될 스물 한 살의 브랫 패러는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른채 고아원에서 성장했고 그 이후에는 여기 저기를 떠돌면서 온갖 직업에 종사하며 입에 풀칠을 해왔다.

그러다가 런던에 올라와서 빈민가에 작은 방을 하나 얻고 무작정 거리를 걷다가 한 인물을 만나게 된다. 앨릭 로딩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힌 그는 브랫 패러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앨릭은 브랫의 외모가 애시비 가문의 맏아들인 패트릭과 꼭 닮았다고 말한다.


패트릭은 8년 전 부모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충격을 받아서 유서처럼 보이는 쪽지 한 장을 남긴채 해안가의 절벽에서 사라져버렸다.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패트릭에게는 사이먼이라는 이름의 쌍둥이 동생이 있고, 이제 사이먼이 성년이 되면 애시비 가문의 많은 재산은 사이먼에게 상속이 이루어진다.

앨릭은 브랫에게 애시비 가문으로 찾아가서 패트릭이 살아 돌아온 것처럼 행세하라고 말한다. 외모를 꼭 빼닮았으니 아무도 몰라볼 것이라고 하면서 패트릭의 성장과정과 애시비 가문의 이모저모를 상세하게 알려준다. 요컨대 가짜를 진짜로 만들기 위한 교육을 한 것이다.


브랫은 갈등하면서도 패트릭의 행세를 하기로 마음을 정한다. 어차피 자신은 떠돌이일 뿐이다. 애시비 가문으로 들어가서 자신이 패트릭이라고 말했다가 가짜라는 것이 들통나면 그냥 망신당하고 쫓겨나면 그만이다. 하지만 성공하면? 그때는 그야말로 인생역전이 이루어진다. 그에 대한 보상으로 앨릭에게 한 몫 떼어주면 되는 것이다.

진짜인 척하는 가짜의 이야기

'신분이 뒤바뀐 사람의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이런 이야기가 재미있는 이유는 신분변화가 곧 신분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 한 구석에는 나에게도 그런 기회가 오지 않을까 하는 은근한 기대감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로또복권에 당첨되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위험부담은 있다. 다른 사람을 속인다는 것은 꽤나 긴장되는 일이다. 게다가 남은 인생동안 계속 다른 사람을 속이려면 그것은 마치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것과 같다. 그 안에는 떨림도 있고 스릴도 있고 쾌감도 있다.

자신이 거짓말을 한다는 느낌도 없이 술술 거짓말을 늘어놓아야 한다. 상대방이 거기에 계속 속아넘어간다면 그것만큼 만족감을 주는 것도 없다. 소소한 절도범들이 굳이 필요가 없는데도 옛 버릇을 못버리는 이유가 있다.

숨 막히는 긴장감,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느껴지는 흥분, 성공했을 때의 도취감이 그들을 중독시키는 것이다. 어찌보면 나름대로 이해가 될 것도 같다. 살면서 언제 한 번 통쾌하게 남을 속여 보겠나.
덧붙이는 글 <브랫 패러의 비밀> 조세핀 테이 지음 / 권영주 옮김. 검은숲 펴냄.

브랫 패러의 비밀

조세핀 테이 지음, 권영주 옮김,
검은숲, 2012


#브랫 패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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