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도착한 뒤 선비 복장을 갖춘 도민준(김수현 분).
SBS
그렇다면 사법부가 증인의 증언을 늘 비중 있게 여겨왔느냐? 그것은 또 아닌 것 같다. 경찰 내부고발자인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증언에는 신뢰성이 없다며,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의 축소·은폐 지시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 전 경찰청장에게 무죄 판결을 한 것을 보면 말이다. 대한민국 사법부의 잣대가 고무줄임을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
몇 번 양보해서 이아무개씨의 진술과 녹취록을 철저히 신뢰할 수 있다고 해도 과연 이석기 의원의 발언이 과연 '대한민국의 존립과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위협할 만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제 권총이나 수류탄 같은 실제 무기 하나 나오지 않았던 '시대착오에 빠진 그들만의 리그'에서 말이다.
결국 진짜 내란을 위한 무기나, 파괴하겠다는 국가시설의 설계도 따위의 직접증거 하나 없었던 이 사건은 징역 12년과 자격정지 10년의 중형 판결로 1심이 끝났다. 재판부도 판결문을 통해 "폭동의 세부적인 계획은 없었다"고 밝혔다. 재판부도 내란을 위한 세부계획 따위 없는 그들만의 모임이라는 점을 알았음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범죄의 세부적인 계획에 대한 확인도, 범죄의 직접증거도 없는 사람에 대해 사법부는 징역 12년이라는 판결을 내릴 수 있다는 말인가? 물론 이석기 의원은 여러 언론에서 다룬 대로, 국민감정으로 보았을 때 굉장히 시대착오적인 사람일 수 있다. 때문에 그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판단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시대착오만으로도 내란음모죄가 성립될 수 있다면, 시대를 오판하는 것만으로도 12년의 징역살이를 해야 한다는 것이 대한민국 사법부의 판단이라면, 나는 이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
20~30대 남성이라면 TV 만화영화 '다간'이나 '썬가드'를 기억할 것이다. 나는 만화를 참 좋아했는데, 그것도 착한 주인공이 마지막엔 꼭 승리하는 로봇 만화를 그렇게 좋아했다. 그 만화의 영향 덕분인지 청소년기에 들어서도 나는 '정의는 이긴다'는 명제를 의심해본 적이 별로 없다. 하지만 27살인 지금은 '정의는 이긴다'는 명제가 진리가 아님을 알고 있다.
만약 시대착오적인 생각 자체가 죄가 될 수 있다면, '정의는 이긴다'는 명제를 믿었던 나는 유죄인가?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 교회를 열심히 다니며 천국과 지옥과 하나님을 믿었던, 중세 서양인들과 같이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했던 나는 유죄인가?
그렇다면 요즘 방영 중인 인기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주인공 김수현도 국가정보원에 고발해야 할 것 같다. 몇 백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는 점을 보았을 때, 봉건사회를 옹호하는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지 않은가? 생각이 죄가 되는 사회라면 어린 시절의 나도, 김수현도, 무사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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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죄가 되는 사회, 김수현도 무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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