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넘본 야심가, 정도전

[서평] <정도전을 위한 변명>을 읽고

등록 2014.02.26 18:44수정 2014.02.27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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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정도전을 위한 변명> '혁명가 정도전, 새로운 나라 조선을 설계하다'라는 부제가 비운의 정치가 정도전을 어떻게 조명하고 있는지 암시하고 있다.

<정도전을 위한 변명> '혁명가 정도전, 새로운 나라 조선을 설계하다'라는 부제가 비운의 정치가 정도전을 어떻게 조명하고 있는지 암시하고 있다. ⓒ 휴마니스트

미국 네바다주의 라스베가스의 숱한 카지노에서는 백불짜리 칩으로 바카라나 블랙잭을 하는 중국인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갬블링용 칩 하나는 보통 오불부터다. 그렇게 오불 단위로 있는데 백불짜리를 여기저기 툭툭 베팅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게 다 중국인들이라는 얘기다. 세계 어느 도시를 가도 차이나타운이 없는 곳은 없다.

미국과 동서 유럽의 여러 나라에도 중국인들의 모습은 다양한 직업과 외모로 차이나 파워를 자랑하고 있다. 아시아는 또 어떤가. 우리나라도 화교들의 숫자가 상당하다. 동남아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중국출신 사업가나 정치가들에 의해 움직인다. 중국은 남미를 비롯하여 아프리카에도 주요 투자 나라로 이름을 올리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몇 년 전부터 G2로 우뚝 선 중국의 현재를 바라보면서 씁쓸함을 금할 길이 없는 이유가 있다. 그것이 우리나라의 현재 모습이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 주인, 조유식이 1997년 말에 출간했던 <정도전을 위한 변명, 휴마니스트>가 이달 10일에 2판 1쇄를 발행했다. 사람들이 정도전에 주목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 소개된 정도전을 대하면서 시각이 독특하다고 생각했는데 상당부분 <정도전을 위한 변명>을 참고했다고 이 책의 추천사에서 박화백은 밝히고 있다. 책을 접하면서 궁금증도 해소하고 새로운 역사적 사실도 추론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역사가 한반도에 국한되어 있음이 어디서부터 기인된 것인지를 알게 된 것이 기쁘다. 정도전이 꿈꾼 나라는 결코 한반도에 국한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고려의 패망과 조선의 개국 과정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정도전도 중요하지만, 죽기 직전까지 그가 준비했던 요동정벌에 올인했던 정도전에 주목하게 된다.

한국방송공사에서 방영 중인 사극 <정도전>에서는 고려가 친원이냐 친명이냐를 놓고 이인임을 필두로 한 권문세가와 목은 이색의 제자들이 주축이 된 신흥사대부들의 갈등을 그리고 있는 중인데, 이때 정도전은 북원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명에 사대외교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도전은 원이 세력을 잃고 북으로 쫓기고 있는 중이고 명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중화의 판도를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선이 건국되는 시점에서 명태조 주원장은 정도전과 그 세력의 성장에 주목한다. 반원친명 정책의 주역이던 정도전이 명의 주원장의 눈엣가시가 되는 과정이 재미있다.

1383년 정도전은 동북면도지휘사(지금의 함경도)로 있긴 했지만 사실상 지방호족과 다름없던 이성계를 찾는다. 이 운명적 만남은 9년 뒤인 1392년, 조선 개국이라는 실로 엄청난 결실을 맺는다. 덕장 이성계와 천재적 참모 정도전의 환상적 콤비는 한나라의 왕과 재상으로 만족하지 않았다는 데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위화도 회군으로 요동정벌을 가다 말고 칼날의 방향을 고려로 돌린 이성계를 욕하는 사학자와 국사선생님들이 많았던 것을 기억하자.


명태조 주원장은 자신의 사후, 자식과 손자의 보위를 위해 1차적으로 3만명, 그리고 2차적으로 약 만 오천 명의 신하를 죽였을 정도로 잔혹한 군주였다. 그런 주원장이 이성계와 정도전이 요동을 차지하기 위해 군사를 훈련하고 요동으로 스파이를 파견하고 요동의 여진족을 회유하여 조선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등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그냥 두고 볼 리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도전의 의지는 확고했고 이성계는 이런 정도전을 초지일관 지지했다. 저자는 "지난날 외이(外夷)로서 중원에 들어가 임금이 되었던 거란의 요, 여진의 금, 몽고의 원도 외이요 조선도 외이인데, 그들이 이룬 일을 조선이라고 못 이룰 바 있느냐"는 요동출병에 대한 변을 인용하고 있다. 또 저자는 "정도전의 생각은 가히 '화이동일론'이라 평할 만하다. 조선이 중국에 꿀릴 것이 무엇이며, 조선이라고 중원 천하를 평정하지 못하라는 법이 있느냐는 이 담대한 주장은 조선사 500년에 빛나는 독보적인 자주사상이다'라는 견해를 덧붙이고 있다.

이 책에서 정도전은 야망으로 가득했던 인물로 소개되고 있다. 야망으로 가득 차 있는 인물이면서 가슴은 따뜻한 인물로도 소개되고 있다. <불씨잡변>을 통해 유교를 국가의 기틀을 잡는 이념으로 내세웠지만 여기엔 교조적 원칙보다는 애민사상과 지식인(정치인)들의 수신(修身)에 무게가 실려있다. 정권을 잡은 이후 지금의 광화문 근처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집을 소유하고 일신이 평안해졌으나 그런 물질적 풍족에 만족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때 광개토대왕 이후 잃었던 우리땅을 되찾자는 고토(故土)회복의 일환으로 명과 이방원 일파의 대내외적 협공에도 굴하지 않고 요동정벌을 일관되게 추진했다.

"조존(操存), 성찰(省察) 두 가지에 공력을 다 기울여 서책에 담긴 성현의 참 교훈을 저버리지 않고 떳떳이 살아왔소. 삼십 년 긴 세월 온갖 고난 다 겪으면서 쉬지 않고 이룩한 공업(功業) 송현 정자에서 한 잔 술 나누는 새 다 허사가 되었구나."

<삼봉집>에 수록되어 있는 시(詩)로 저자는 정도전이 이방원에 의해 칼을 맞기 전 지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도전이 죽은 지 8일만에 이성계는 왕위에서 물러난다.

정도전은 이방원에 의해 폐서인까지 된지 오백 년 만인 대원군 때 신원됐고, 조선시대 인물들 중 정도전을 위인으로 인정한 인물은 영조와 정조, 그리고 대원군 뿐이라고 한다. '만고의 역적이자 간신'으로 정도전을 규정한 인물은 노론 영수 송시열이었다고.

저자는 이렇게 책을 맺고 있다.

'정도전이 죽은 다음 해 명에서는 주원장의 손자인 2대 황제 혜제와 혜제의 삼촌 연왕 사이에 내전이 일어났다…. 중략… 1399년부터 시작된 내전은 3년의 세월을 끌며 명 조정을 마비시키다가 1402년 주원장의 넷째 아들인 연왕이 조카 혜제를 죽이고 3대 영락제로 즉위하고서야 끝을 맺었다. 정도전이 조금만 더 버티고 살아 있었다면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정도전이 살아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면 전세계에 차이나 파워를 자랑하고 있는 그들은 코리언이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정도전을 위한 변명 - 혁명가 정도전, 새로운 나라 조선을 설계하다

조유식 지음,
휴머니스트,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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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새로운 조선을 꿈꾸었다

#삼봉 #이성계 #정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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