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호 할머니와 나

마냥 행복한 줄 알았는데 가슴 시린 아픔 간직

등록 2014.03.03 14:09수정 2014.03.04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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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청소년 특별면 '너아니'에 실렸습니다. '너아니'는 청소년의 글을 가감없이 싣습니다. [편집자말]
조용하고 화목한 마을에 자리 잡은 우리 집에 이사온 지도 1년이 훌쩍 넘었다. 조용한 이유가 우리 마을에 할머니 할아버지 분들만 많이 사셔서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두 항상 입가에 미소를 짓고 사시는 정겨운 분들이시다.

그 분들 중에 우리 집 옆에 호호 할머니가 계시는데 나는 그  할머니를 무척 좋아한다. 갓 만드신 호박죽이나 추어탕, 쑥떡, 김장김치 등을 가져다 주시는데 솜씨도 좋고 하나같이 정말 맛있다.

감사하다고 말씀드릴 때마다 할머니는 그저 '호호호' 하고 곱게 웃으셔서 나는 할머니를 호호 할머니라고 부른다. 이렇게 우리 옆집 할머니는 정이 많은 분이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를 인터뷰하기로 마음 먹고 눈 녹은 포근한 아침에 찾아 갔다.

나는 순간 발걸음을 멈췄다. 할머니께서 밭에 남은 배추를 정리하며 눈가에 눈물을 훔치시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항상 우리 가족을 미소로 맞이 해주시는 호호 할머니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점심에 다시 찾아가 보았다. 이런 저런 얘기를 건네 보니 할머니께서는 이번에 배추가 잘 팔리지 않아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남은 배추를 정리하고 계시던 거였다. 그래서 나도 배추 정리하는 일을 도와드렸다. 배추들이 담긴 손수레를 밀어드리며 조심스레 여쭤보았다.

"할머니, 할머니가 제일 좋아하시는 일이 뭐예요?"

할머니께서는 잠시 정자나무 너머로 보이는 아들 분의 얼룩 진 차를 바라보시며 대답하셨다.


"나는 우리 아들하고 고놈 손주 맛있는 밥 해주는 게 젤루 좋지."

할머니의 대답은 나로서는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저번 주에 학교 갔다가 집에 올라가는 길에 호호 할머니 아들 분이 할머니와 말다툼하는 광경을 보았기 때문이다.  


"할머니, 그럼 할머니는 저처럼 어렸을 때 꿈이 뭐였어요?"

나는 다시 다른 질문을 드렸다. 호호 할머니는 허탈하게 웃으며 대답하셨다.

"나는 잘익은 감 원 없이 먹는 게 소원이었지."

호호 할머니는 계속 내가 예상치 못한 대답을 해주셨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감 먹는 게 왜 꿈이셨을까?'

할머니와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할머니 댁 앞이다. 시든 배추가 수북이 쌓인 손수레를 대문 넘어로 들어드렸다.

"그럼 할머니 지금 꿈은 뭐에요?"

할머니께서는 그저 웃으셨다. '호호할머니' 답게 말이다. 하지만 평소처럼 환하게 웃는 모습과는 뭔가 달라 보였다. 할머니는  웃으시기만 하고 대답은 없으셨다. 그래서 나는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한 채 인사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오늘 이웃 할머니와 다소 진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내가 보던 이웃할머니는 마냥 행복한 할머니였는데 왠지 할머니는 가슴 시린 아픔을 가지고 계신 것 같아 나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추운 날씨에도 항상 허리를 굽혀 일하시는 호호 할머니께서 나이를 뛰어넘는 꿈을 가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집 마당에 앉아 우리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데 손을 호호 불고 가마니를 메고 가는 누군가가 눈에 띄었다. 다시 일을 나가셨나 보다.

호호 할머니를 비롯한 우리 마을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트리와 같다. 우리 마을이라는 나무 위에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하고 풍성한 장식물을 꾸며주고 가꿔주는 행복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크리스마스 선물과도 같이 모두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들임을 이번 인터뷰를 통해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 이 글은 2013 곡성사랑 글짓기 우수학생 선발 대회 대상작입니다.
#이웃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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