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리그, 출판기념회

[송준호 교수의 길거리 사회학 ④]

등록 2014.02.28 13:47수정 2014.04.15 18:07
1
원고료로 응원
길거리 사회학은 스마트폰에 잡힌 우리 사회의 보편화된 인식이나 현상을 다루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죽기 전에 자신의 이름으로 쓴 책 한 권 갖는 것이 평생소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 속뜻이야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책 한 권을 내는 일이 '평생소원'에 비유될 만큼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다. 그런 평생소원을 끝내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 거의 대부분인 것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가수 태진아는 '사랑은 아무나 하나 어느 누가 쉽다고 했나'라고 목청을 높인 바 있다. 물론 사랑은 아무나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쉽다. 하지만 제대로 된 사랑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책도 아무나 낼 수 있다. 하지만 책다운 책은 경우가 좀 다르다.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펴내려면 먼저 글이 있어야 한다. 200자 원고지로는 대략 1000장, 컴퓨터로 작성할 경우 A4 100장 정도는 써야 책의 구색을 맞출 수 있다.

그런 다음 그걸 출판사로 가져간다. 이때 책을 만드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출판비를 모두 자신이 부담하는 경우다. 다른 하나는 출판사에서 비용을 다 대가면서 내주는 경우다.

자기 돈으로 책을 펴내려면 대략 500만 원에서 1000만 원 정도의 거금이 들어간다. 그런데 명망 있는 출판사에서는 아무리 돈을 많이 싸 들고 쫓아가도 책을 내주지 않는다. 원고의 수준이 높고 내용이 편집방향에 맞으면 돈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글을 쓴 이에게 원고료를 별도로 챙겨주기까지 한다. 책을 출판한 뒤에는 판매량에 따라 인세도 준다.

자기 돈으로 책을 내려면 아예 처음부터 그런 책을 전문으로 내주는 출판사를 물색하는 게 좋다. 책이 만들어지면 그걸 수백 권 공짜로 줄 것이다. 왜냐하면 내 돈 들여서 만든 거니까. 그러면 그 책을 가져다가 가까운 친지들이나 친구들에게 '재미로' 나눠주면 된다. 출판비용을 뽑겠다고 아는 이들에게 강매를 하는 경우도 더러 있는데 그거야말로 민폐다.

물론 이런 식으로 '평생소원'을 이루고자 하는 이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갈고 닦아서 문장력을 키워야 한다. 남들이 쓴 책도 수백 수천 권 읽어야 한다. 그런 다음 자신이 쓰고자 하는 주제를 정해서 거기에 맞게 수많은 밤을 밝혀가며 글을 써야 한다.


아니면 이참에 아예 정치하는 길로 나서든가….

전문 작가가 아니면서도 책을 자주 펴내는 이들이 바로 정치인들이다. 그들이 책을 펴내는 시기는 대체적으로 정해져 있다. 중요한 선거를 몇 달 앞두고서다. 작가들은 책을 내도 좀처럼 하지 않는 출판기념회를 그 사람들은 꼬박고박 연다.


아니, 그게 아니다. 오히려 정 반대다. 그들 대부분은 출판기념회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 앞서 봤던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들여서 책을 만든다. 책의 장정도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요즘에는 '출판기념회' 대신 '북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문패를 바꿔 걸기도 한다).

자의든 타의든 그들의 '북 콘서트'에 참석한 이들 중 누구도 그 책을 본인이 직접 썼을 거라고 믿는 이는 없다. 대필료도 적잖이 들어갔을 것이다. 뒷면에 적혀 있는 정가도 책의 구색을 갖추기 위한 장식에 불과하다. 어차피 서점에 내놔도 팔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도 있긴 하다. 가령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의 <운명> 같은 책은 꽤 많은 부수가 서점을 통해 정상적으로 유통되었다고 한다.

정치인의 북 콘서트에서 '봉투'로 '책값'을 치르고 '기념으로' 한 권씩 받은 책을 집에 가져가서 읽는 이들 또한 드물다. 그런데 행사에 필요한 책 수천 권을 찍어내려면 적잖은 나무들이 발목을 잘려야 한다. 많은 이들의 지식과 영혼을 살찌우지 못할 바에는 나무라도 살리는 게 좋은 정치인의 자세 아닐까. 아, 물론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그리고 우리들 대부분은 잘 알고 있다.

그림과 같은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가 그의 지지세를 유권자들과 상대 후보에게 널리 과시하는 자리라는 것을, 보무도 당당하게 진군나팔을 불어대는 일종의 선거 출정식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 자리에서 거둬들이는 '책값'이야말로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유일하게 눈감아주는, 말하자면 합법적인 정치자금이라는 사실을….
#정치인 #출판기념회 #북콘서트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참사 취재하던 기자가 '아리셀 유가족'이 됐습니다
  2. 2 김흥국 "'좌파 해병' 있다는 거, 나도 처음 알았다"
  3. 3 23만명 동의 윤 대통령 탄핵안, 법사위로 넘어갔다
  4. 4 김건희 여사 연루설과 해병대 훈련... 의심스럽다
  5. 5 [단독] '윤석열 문고리' 강의구 부속실장, 'VIP격노' 당일 임기훈과 집중 통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