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짝> 폐지를 반대한다

'진짜 사람'의 날것 그대로의 애증 담겨있는 프로그램, 존속해야

등록 2014.03.07 16:03수정 2014.03.07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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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경악하게 한 끔찍한 사건이 또 발생했다. SBS <짝> 출연진이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아직 수사 중이라 어떤 코멘트를 하기는 어렵기에 삼가 고인의 명복부터 빈다.

그동안 <짝>은 많은 논란을 낳으면서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번 사건으로 일부 시청자들은 그동안 쌓여 있던 <짝>에 대해 불편함 심경을 드러내고 있다. 다음 아고라에 프로그램 폐지를 청원한 한 시민은 "출연자들을 경쟁 구도 속으로 몰아넣고 누군가를 소외시키는 것"등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자연스런 감정 교류가 아니라 출연자들의 스펙으로 모든 게 결정되는 것 같은 것"도 큰 문제라고 언급했다(SBS는 7일 오후, <짝> 폐지를 최종 결정했다-편집자 주) .

지난 6일 언론사들과 인터뷰한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이번 사건을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빚은 참극"이라고도 했다. "연애할 때 보통의 경우에도 거절을 받으면 상당한 심리적 상처를 받을 수 있다"며 "이것이 방송을 통해서 모든 국민이 알게 된다고 생각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수치감이 크다"라고 말했다.

반면에, 폐지를 반대하는 네티즌 의견도 만만치 않다. 다음 아고라에 의견을 제시한 의견 가운데는 "보기 싫으면 안 보면 된다. 현실을 직시한 프로그램일 뿐이다"라고 주장하는 네티즌도 있다. 또한 "무조건 방송사 귀책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 애정 문제 비관으로 인한 자살은 현실에서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밝힌 네티즌도 있었다.

자살한 고인에게 관대한 사회 분위기를 지적하는 네티즌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자살하면 고인에게 관대해지는 경향이 있다. '오죽했으면 자살하겠냐' 그런 거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자살은 정당화 될 수 없는 것이다. 요즘 정신적으로 나약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우울증이 있다면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지 왜 자살을 선택하는 것인가?"

SBS <짝> 방송 게시판에도 찬반의견이 분분했다. 대체로 폐지를 주장하는 의견이 많았지만, 프로그램을 지지하는 의견도 눈에 띄었다. "돌싱 특집을 보고 많이 울었다, 우리 부부관계도 좋아졌다"라며 제작진에게 힘내라는 의견을 밝힌 이도 있었고, "<짝>은 솔로들에게 희망을 주고 좋은 경험을 하게 해주는 프로그램이다"라고 언급한 네티즌도 있었다.


실제로 짝 프로그램은 그동안 통속적 기준으로 부러워할 만한 스펙을 지닌 사람들이 많이 출연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오로지 스펙으로 짝이 결정된다고 단정 짓기는 어려운 면도 있다. 오히려 자기가 '잘 생겼다', '스펙이 뛰어나다'는 점을 내세워 피상적으로 소통하다가 매너가 좋고 진심어린 마음으로 프러포즈하는 경쟁자에게 기회를 뺏기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또한 여성이 예쁘기만 하면 남성들에게 인기가 많을 것이라는 상식을 비웃기라도 하듯, 외모보다 성격이 좋은 여성을 선택하는 남성들도 많았다.

일부 출연자는 애정촌 생활을 통해 내면이 성숙해졌다고 밝히기도 했다. 얼마 전 방송돼 화제를 모았던 한 여성은 입소 첫날 인터뷰에서 "누가 봐도 멋진 사람을 좋아한다. 정우성은 사람"이라고 말하며 스스로 외모지상주의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방송 말미에 "그동안 내가 얼마나 허상을 쫓아 살아왔는지 알았다"며 "정말 좋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깨닫게 되었다"라고 말해 시청자들의 감동을 자아내기도 했다.


또한 학력이 높은 여성과 낮은 학력의 남성이 짝이 되는 경우도 있어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필자도 이 방송을 통해서 사람들의 연애에 대한 관심사와 분위기를 알 수 있었다. 고백하자면, 한때 스스로 선수라고 자부했던 필자의 자신감이 방송을 보면서 얼마나 미숙하고 치기 어린 감정이었는지 깨달으며 진심으로 소통하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또한 과거 프러포즈에 실패했던 원인을 얼핏 파악하며 그동안 지니고 있던 이성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벗겨낼 수도 있었다. 이 방송을 보면서 자신을 더욱더 객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오로지 스펙과 외모로 짝이 결정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모든 방송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시청자들의 감동을 이끌어내는 방송도 적지 않았다. 어떤 방송을 볼지에 대한 선택권은 시청자에게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서서 시청권을 통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건 발생이 보도된 이후, 폐지 여론을 등에 업고 일부 언론에서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문제점을 비평하는 기사가 뜨고 있다. 일반인들에게 대중의 관심이 몰리면서 과도한 스트레스를 줄 수 있기에 병폐라는 것. 하지만 일반인이 출연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보다 상품화된 연예인으로 포장된 프로그램들이 사회적으로 더 큰 해악이 아닐까.

기존의 여러 드라마와 연예 프로그램이야말로 시청자들로 하여금 현실 망각의 마약을 주입시킨다. 성형외과 전문의들 말에 따르면 연예인들의 S라인 몸매는 일반인들이 그냥 다이어트를 한다고 손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업계의 전문적인 관리나 의학의 힘을 빌렸거나 타고난 상위 1%의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이든 간에 어쨌든 연예인들은 '판매'를 위해 철저하게 기획된 '인간 상품'이다. 부유한 사회 자본에 비현실적인 외모까지 갖춘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방송들은 일반인들의 나르시시즘을 부추기는 차원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자기 비하를 조장한다.

방송은 끊임없이 대중의 결핍감을 자극해 지속적인 상품 소비를 유도한다. 그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방송이 존재하는 이유이자 사회에 끼치는 가장 큰 병폐이기도 하다.

하지만,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상품화되어 있지 않은 일반인이 출연하는 것이기에 시청자가 느끼는 판타지의 차원이 다르다. '아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도 저렇게 보니 멋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아주 비싼 제작비로 만들어진 인간 상품'에 의해서 상처받던 자기 비하의 감정이 일반인이 출연하는 리얼 프로그램을 보면서 조금씩 회복되는 기분을 느낀다. 그동안 미디어의 그림자였던 일반인들도 얼마든지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게 대중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이유이자, 유명한 연예인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제치고 일반인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시청률 1위를 점하는 현상의 이면인 것이다.

만약 <짝>을 폐지하는 것이 맞는다면, 먼저 기존의 드라마와 연예프로그램 등도 모두 폐지해야하는 것이 맞다. 사회적 병폐로 따지면 기존의 숱한 막장 드라마와 연예 프로그램들이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 연예인들의 비현실적 일상을 중계하는 방송들보다 '진짜 사람'의 날것 그대로의 애증이 담겨 있는 리얼 프로그램이 한결 바람직하다.

때문에 프로그램 자체의 폐지보다 출연자들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요소를 없애고 개개인의 사생활과 감정을 좀 더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새롭게 정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는 일반인들을 위해 깔아줄 수 있는 멍석(방송 아이템)은 앞으로도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세상을 등진 출연자의 가족이 받은 충격과 상처에 대해서는 누가 뭐라고 해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방송사 측에서 각별한 배려를 기해야 할 것 같다.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보다 정확한 수사 결과가 나와 이승에서의 모든 고통을 풀고 저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기도 드리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개재했습니다.
#SBS짝 #짝출연자자살 #연예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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