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판 밀실 낙하산 인사?

[주장] 계파 간 밀실 나눠먹기 인사로 자격 미달자 추천

등록 2014.03.07 18:04수정 2014.03.07 21:27
1
원고료로 응원
지난달 28일 2월 임시국회가 성과 없이 끝이 났다. 기대했던 기초연금법 처리는 여야 간 이견으로 4월 국회로 넘어갔고, 카드사 개인정보유출 사태를 계기로 추진된 신용정보법 개정도 무산됐다. 그러나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기가 막힌 안건이 회기 마지막 이틀에 걸쳐 슬며시 처리되었다. 방송통신위원회 위원 고삼석 추천(안)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이상환 선출(안)이 바로 그것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방통위 고삼석 추천안 의결

국회는 27일 본회의를 열어 방송통신위원 3인에 대한 추천(안)을 의결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방송통신위원 5인 중 3인에 대한 추천권은 국회가 갖게 되며 또 그 중 2인은 야당 몫이다. 그런데 민주당이 내정한 김재홍, 고삼석 두 후보자는 사실은 민주당 내 추천 과정에 있어서 상당히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다.

물론 민주당의 이번 3기 방송통신위원 추천은 형식적이나마 공모 절차를 거쳤다. 그러나 심사위원 구성에서부터 사단이 났다. 30년 언론민주화운동의 외길을 걸어왔고 2006년 방송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도 소관 상임위인 미래창조방송통신위원인 최민희 의원을 고의적으로 심사위원회에서 배제해버린 것이다.

대신 심사위원장을 맡은 전병헌 원내대표가 전문성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원내 부대표단에서 세 사람을 추가로 더 집어넣는 방식으로 사실상 자신이 심사를 주도했다. 그러자 심사기간 내내 전 원내대표와 학연이나 기타 특수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내정설이 언론에 흘러나오면서 혼탁 양상으로 가버렸다. 결국 심사가 끝나던 날, 최민희 의원은 SNS를 통해 "혼자 있어 불이익을 당해도 불의와 타협하지 말자. 어떤 압력이 들어와도 나는 내 할 일을 하자"라고 공개적으로 울분을 토로한다. 

그렇지만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자격 미달자를 엉터리로 추천한 사실이 청와대 검증 과정에서 들통(?)이 난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5조 1항을 보면, 방송통신위원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차관급 정무직이므로 당연히 청와대 인사검증 대상 직위이다.

같은 항 1 내지 5호에 보면 자격요건을 정하고 있는데, 관련 전공자로서 부교수 이상 또는 이에 상당하는 15년 이상 있었던 자, 판·검사 또는 변호사로 15년 이상 있었던 자, 관련 경험이 있는 2급 이상 공무원이었던 자, 관련 기관 대표 또는 임직원으로 15년 이상 있었던 자, 관련분야 이용자 보호활동에 15년 이상 종사한 자로 매우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청와대에 추천된 고삼석 후보자의 경우, 부교수는커녕 겸임교수 경력이 전부이고 연구경력을 합산해도 5년 남짓이다. 공무원 경력은 기껏해야 3급이 최고다. 관련기관이라고 하는 미디어미래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한 것도 5년이 조금 넘는다. 변호사 자격증은 없고, 이용자 보호 활동도 전무이다.

그런데 추천 정당인 민주당은 고삼석 후보자가 국회의원 비서관, 보좌관, 청와대 행정관, 연구소 활동 등을 합하면 총 18년 이상으로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5조 1항 4호에 따라 자격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주장한다. 과연 타당성이 있는 주장일까?

자격조건을 규정해 놓은 유사한 법률인 감사원법을 한번 살펴보자. 차관급인 감사위원은 감사원법 제7조 규정에 따라 고위공무원단에 속하는 공무원 또는 3급 이상 공무원으로 8년 이상, 판사·검사·군법무관 또는 변호사로 10년 이상, 대학에서 부교수 이상으로 8년 이상, 주권상장법인 또는 정부투자기관에서 20년 이상 근무한 사람으로서 임원으로 5년 이상으로 자격을 못 박고 있다. 그런데 변호사 5년, 정부 투자기관 10년, 3급 공무원 5년 등등으로 근무했다며, 따로 따로는 안 되지만 다 합치면 자격이 되니까 감사위원 시켜달라고 우길 수 있는 것인가?

국회가 선출 또는 추천하는 공직은 원내지도부가 그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여야 모두 오랜 관행으로  돼 있다. 지금 민주당 원내대표는 전병헌 의원이다. 그는 국민의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관으로 있으면서 행정관으로 일했던 고삼석 후보자를 만났으리라 쉽게 짐작된다. 지난 대통령선거 때는 문재인 후보의 매니페스토 본부장을 맡았으니 IT미디어정책자문단에서 미디어정책을 다룬 고삼석 간사와 자주 부딪쳤을 것이다.

또 하나 중앙선관위원 이상환 선출안 통과

2월 28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중앙선관위원 이상환 선출(안)을 통과시켰다. 우리 헌법이 정하고 있는 중앙선관위 위원 정수는 9인이다. 이 중 3인을 국회가 선출한다. 이번엔 2인을 개선하는데, 여야 간 의석 차이가 크지 않아 1인(이상환)을 민주당이 추천하고 1인(김용호)은 여야 합의로 추천했다.

사실 국회가 추천해야 할 공직자는 의외로 많다. 헌법재판관과 중앙선관위원, 국가인권위원을 비롯하여 방송통신위원, 사학분쟁위원, KBS 이사 등 외부공직과 국회 사무총장, 국회 도서관장 등 국회 내 정무직이 있다. 이를 모두 합하면 100자리 가까이 된다. 2000년 국민의정부가 인사청문회 제도를 도입하면서 국회 선출 공직도 본격적으로 검증 작업이 시작되고, 본회의 의결을 요하는 41개 직위는 더러는 부결도 되고 하는 등 인사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다.

이번 중앙선관위원 추천은 인사청문특위를 별도로 구성해서 진행됐다. 여당 의원들은 이상환 후보자의 '민주당 경력'을 물고 늘어졌다.

김종태 의원은 "2008년 총선 때 민주당 총선기획단 부단장을 지냈고,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대선후보 경선기획단 위원으로 활동했으나 보고가 누락돼 있다. 이는 지나친 당색을 감추기 위한 경력세탁이 아니냐?"라며 추궁했다. 안덕수 의원도 "역대 중앙선관위원 중에 당적을 가졌던 경우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랜 당적을 가졌던 사람이 들어가는 것은 이런 전통을 깨는 것이다"라고 압박했다. 

이에 대하여 이상환 후보자는 "민주당에서 맡은 경력이 대개 비상설 기구여서 문제가 없다"라고 답변했다. 또한 청문위원으로 참여한 한 민주당 의원은 "지적된 이 후보자의 경력들은 상설 당직이 아니라 선거 직전에 만들어진 임시 기구나 비상설 기구의 당직이었다. 기획단이나 경선 룰을 만드는 기구 같은 경우에는 경력 증명을 안 해준 것이 지금까지 민주당의 관례인 것 같다"며 노골적으로 두둔했다.

그러나 과연 이상환 후보자의 청문회 답변은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이상환 후보자는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제14조가 규정하고 있는 위증 등의 죄로 처벌 될 수도 있는 허위 답변을 했다.

우선 2009년 9월 발간한 '이상환의 정치이야기'라는 책을 보면, 저자 소개가 나온다. 평민당 정책전문위원(공채 1기), 국민회의 정책연구1실장, 국회정책연구위원, 김대중대통령직 인수위전문위원, 민주당 정책위부의장 등 정당경력을 자랑스럽게 밝히고 있다.

또 2000년 7월에 발간한 '주요 정치 합의문서 자료집'에서는 민주당 국회정책연구위원 경력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1994년 3월 24일자 한겨레 기사를 보면, 이상환 전문위원이 기획해서 민주당 내무위 보좌진 12명이 3개월 동안 작업해 "경찰행정의 주요 문제점과 개선방안"이라는 경찰백서를 펴냈는데, "당시 최형우 내무장관으로부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전하고 있다.

이상에서와 같이 이상환은 1988년 평민당 공채 전문위원으로 들어가 민주당을 거쳐 국민회의에 이르기까지 최소한 10년 가까이 전문위원 또는 국회정책연구위원 등 상근 당직을 맡았다. 그리고 국민의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에 들어가 정무비서관과 정무기획비서관으로 일했다.

이번 중앙선관위원 추천을 주도한 사람은 관례대로 전병헌 원내대표였다.

전병헌 원내대표는 평민당 전문위원 출신으로 이상환 당시 전문위원과 함께 근무했다. 1997년에는 김대중단일후보 공동선대위 공동실무조정회의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 후, 인수위 전문위원 실을 같이 썼고, 국민의정부 청와대 정무비서관으로 동고동락했다. 가까이서 함께 한 세월만 어언 14~5년이다. 

한편, 이상환 위원은 2010년 4월 야당 추천 몫으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상임위원(차관급)에 임명된다. 이때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강래 의원이었는데, 그는 국민의정부 청와대 정무수석 출신으로 이상환 위원의 직속상관이었다.

이처럼 이상환 위원은 25년 이상을 민주당 당직자와 민주당 추천 공직자로 살아왔지만, 새누리당 의원들의 정보 부족과 본인의 거짓 답변, 그리고 추천 정당의 비호 속에서 끝내 오점을 남기고 선출됐다.

인사청문특위는 국회 본회의 심사보고에서 "이상환 후보자의 청와대 정무비서관, 민주당 정책위 부의장 등의 경력이 중앙선관위원 직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2014년 2월 28일은 중앙선관위가 모욕을 당한 날이다. 1963년 중앙선관위가 발족한 이래 정당경력자를 배제하는 것은 하나의 전통이 되어 왔다. 헌법 제114조 규정에 따르면 선관위원은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에 관여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이는 선거와 국민투표의 공정한 관리 및 정당에 관한 사무를 엄정하기 처리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오랫동안 당적을 가졌던 사람이 선관위에 가서 일하게 되면 공정한 관리자로서보다는 출신 정당에 편향된 활동을 할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추천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불문율로 여겨왔다. 그래서 그동안 여당도 정치적으로 편향된 인물은 했을망정 노골적으로 당 출신 인사를 추천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것을 민주당이 깬 것이다.

국회에서 인사에 관한 사항은 무기명 비밀투표로 진행된다. 이 날 함께 진행된 김용호 선출(안)은 반대가 24표, 12%가 나왔다. 그러나 이상환 선출(안)은 반대가 64표, 32%나 나왔다. 무려 3분의 1 가까운 숫자가 반대표를 던지는 이례적인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민주당은 공천과 당직 인사에 있어 계파주의의 폐단이 오랫동안 지적돼 왔다. 국회 선출 공직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밀실 인사', '정실 인사'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릴 때마다 매번 정부와 여당을 향해 '수첩인사', '낙하산 인사'를 질책하면서 자당이 추천하는 작은 공직 하나라도 엄정하게 하지 않으면 과연 누구를 나무랄 수 있겠는가?

그래서 민주당 내부에서도 공정한 인사를 실천하려는 노력이 꾸준히 시도돼 왔다. 대선 패배 직후 민주당 비상대책위는 정치혁신실행위원회를 설치하고 각종 혁신(안)들을 내놓는다. 작년 4월, '국회 추천 공직후보 임명절차 개선방안' 간담회를 열어 당이 공직자를 추천하는 절차를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만든다는 원칙을 확인하고 이를 당규에 반영하기로 했다.

공직 후보자를 공모한 뒤 국민도 참여하는 후보추천위에서 후보자를 결정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1년이 다 돼 가도록 후속 당규 제정 작업은 여전히 답보 상태이며, 이번 중앙선관위원 경우처럼 관행대로 원내지도부가 밀실에서 사실상 낙점하는 방식을 답습하고 있다.  

한편, 국회는 2월 20일 본회의를 열어 유영하 변호사를 국가인권위원으로 선출했다. 새누리당 몫의 유영하 위원은 반대가 무려 38% 속에서 가결됐다. 대부분의 반대표는 야당의원들이 던진 것이다. 검사 출신인 유 위원은 BBK 사건 당시 김경준씨의 기획입국에 관여했고, 한나라당 후보로 세 차례나 총선에 출마한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이다.

본회의에 앞서 민주당은 강창희 국회의장에게 유 위원의 전력이 국가인권위원으로 부적절하다며 지명 철회를 요구했다. 이 유영하 국가인권위원 추천은 친박계 최경환 원내대표가 밀어붙인 인사였지만 민주당도 이상환 중앙선관위원 추천이라는 약점 때문에 결국 끝까지 물고 늘어지지 못한 것이다.

국회사무처는 법률안 접수·처리, 예산결산심사, 국정감사 및 조사, 본회의 및 위원회 회의에 관한 지원, 국회의원의 의정활동 지원 등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따라서 사무총장은 누구보다도 의정지원의 권위자, 행정업무의 전문가가 맡아야 한다. 그러나 13대 이래 국회 사무총장은 1988년 박상문 입법차장이 내부 승진한 케이스를 제외하면, 모두 여당출신 전직 국회의원의 취직자리였다.

그것마저도 활발한 의정활동을 펼치지 않은 사람이 간혹 포함되었다. 이른바 보은 성격의 인사였다. 최근 정진석 사무총장이 지방선거 출마를 이유로 사직하고 국회를 떠났다. 곧 후임이 정해지는데 우리의 예상이 크게 틀리지 않는다면, 십 중 팔구는 또 다시 밀실에서 적당히 전직 국회의원으로 채우게 될 것이다.  

우리는 기득권을 버리고 부산으로 달려가 세 번을 번번이 패배했지만, 끝내 대통령 승리를 일궈낸 '바보 노무현'을 기억한다. 생전에 노무현 대통령과 통추를 함께했던 원혜영 의원은 작년 12월, 야당 몫 국회 도서관장을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제안하면서 "기득권에 안주해서는 희망이 없다. 민주당 혁신의 기조는 버림에 있다"고 주장한다.

민주당엔 노무현의 후예들을 자처하는 이들은 많지만, 기득권 포기라는 진정한 '노무현 정신'을 실천하는 정치인을 찾아보기 힘들다. 야권 통합신당 탄생이 임박해 있다. 국민은 두 눈 부릅뜨고 있다. 또 하나의 기득권 정당이 탄생하느냐? 아니면 전혀 새로운 정당을 만드느냐? 국민은 민주당이 작은 기득권 하나라도 내려놓는 모습을 정말로 보고 싶어 한다.
#방송통신위원 #중앙선거관리위원 #낙하산인사 #밀실인사 #민주당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은혜 모른다" 손가락질에도... 저는 부모와 절연한 자식입니다
  2. 2 "알리·테무에선 티셔츠 5천원, 운동화 2만원... 서민들 왜 화났겠나"
  3. 3 80대 아버지가 손자와 손녀에게 이럴 줄 몰랐다
  4. 4 "내 연락처 절대 못 알려줘" 부모 피해 꽁꽁 숨어버린 자식들
  5. 5 2030년, 한국도 국토의 5.8% 잠긴다... 과연 과장일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