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운것은 팔할이 건장산이다

[뒤엽쟁이 대장간]

등록 2014.03.17 11:50수정 2014.03.17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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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은 기름진 평야 지대다. 지평선을 이루며 한없이 이어질 것 같은 그 들판의 끝에 야트막한 산들이 이어져 있다. 그 야산 줄기를 따라 남북으로 겨울철 거센 바람을 피하기 좋을 정도의 오목한 골짜기들이 형성되어 있다. 그 골짜기마다 작게는 20호에서 200호 가까이 되는 큰 곳까지 마을들이 여러 개 들어서 있다. 그 중에서 비교적 작은 편인 30호 정도 되는 장자마을이 내 고향이다. 장자마을은 장자골로 불리웠다.


마을 앞 넓은 평야를 동서로 가로지르며 인근 도시들을 이어주는 신작로가 지나간다. 일제시대 때 강제 공출한 쌀을 일본으로 신속하게 실어가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아스팔트로 포장했다는 바로 그 도로이다. 마을의 뒤로 건장산과 고척리산을 잇는 잘룩한 산허리를 끊어 낸 곳에는 내륙도시와 항구 도시를 연결하는 지선 철로가 뚫려 있다. 마을의 앞에는 신작로, 뒤에는 철도가 있는 셈이다.

철도와 간선도로 연변에 위치한 탓으로 일찍부터 새로운 문화에 접할 기회가 많아 시골이기는 하지만 이 지역은 비교적 개명한 편에 속했다. 그래서인지 교육열이 높아 도시에 있는 상급 학교로 진학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그 뜨거운 교육열이 배출한 대표적인 분이 인천 길병원 이사장이며, 가천대 총장인 이길녀씨이다. 그 분은 건장산을 사이에 두고 우리 마을 반대편 안터(내기) 마을 출신이다.

일찍이 초등학교 때부터 남달리 특출했던 그 분은 중학교 때 읍내를 벗어나 인근 도시로 진학했다. 그 후 지역의 명문여고를 졸업하고 당시로서는 지극히 드물게 서울대 의과대학에 합격했다. 그 때만 해도 남존여비 사상이 남아 있었던지, 없이 사는 집에서 딸내미를 고등학교까지 공부시켰으면 됐지 무슨 대학이냐며 마을에서는 말들이 많았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의 험담을 들을 정도로 유난히 교육열이 높았던 그분의 부친과 나의 부친은 친구 사이였다고 한다.

젊은 시절 두 분은 거의 같은 시기에 일본에 징용을 갔는데 해방 직후 나의 부친이 먼저 귀환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댁에서 일부러 사람을 보내어 소식을 묻기도 했다고 한다. 징용지가 한반도와 비교적 가까운 큐우슈우 지역이었던 나의 부친과는 달리 좀 더 먼 지역으로 가셨던 그 분의 부친도 다행히 얼마 후 무사히 귀국했다. 

어린 시절, 공부는 뒷전이고 당장의 놀이에 바쁜 우리들에게는 신작로보다는 건장산과 건장산에 연이어 있는 철길이 훨씬 중요했다. 신작로에는 차만 쌩쌩 달릴 뿐 별로 놀거리가 없었지만, 건장산과 철길은 놀거리가 무궁무진한 우리들의 놀이터였기 때문이다. 특히 철길은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마을 뒤 건장산 기슭을 따라 약 2Km 거리에 있는 철길 주변은 매우 후미진 곳이다. 이따금 두어 칸 객차를 달고 홀가분하게 달리는 기동차와 기다란 화물 열차가 검은 연기를 뿜으며 지날 뿐, 대낮에도 사람의 왕래가 뜸해서 한적한 곳이다. 그 골짜기의 지명은 그 인근 마을 이름을 따라 '뒤엽쟁이 골짝'이라고 불렸다.

어린 시절, 뒤엽쟁이 골짝이 중요했던 것은, 나와 또래 친구들이 두어 달에 한 번은 반드시 그 곳으로 '업무상 출장'을 가야 했기 때문이다. (계속)
덧붙이는 글 어린시절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몇 번에 나누어 올리겠습니다.
#뒤엽쟁이 골짝 #건장산 #이길녀 #가천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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