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판정, 김연아만이 아니다

유우성씨 증거 조작 사건을 보고

등록 2014.03.17 09:17수정 2014.03.17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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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청소년 특별면 '너아니'에 실렸습니다. '너아니'는 청소년의 글을 가감없이 싣습니다. [편집자말]
소치올림픽 피겨 여자싱글 경기가 열린 지난 2월 21일. 김연아 선수는 석연찮은 판정으로  러시아의 소트니코바에게 밀려 은메달을 땄고, 페이스북 등 SNS는 '도둑맞은 금메달'을 향한 사람들의 분노로 가득했다. 심판 결과 공개조사 관련 청원에는 하루 만에 155만여 명이 서명하기도 했다. 김연아가 "오로지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어서 (결과에)무덤덤하다"고 밝혔음에도, 국민들의 분노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피겨 여왕의 마지막 무대를 더럽힌 '원칙을 벗어난 편파 판정'. 그것이 사람들이 가장 분노하는 것이었으리라.

그런데 편파 판정으로 직업과 미래까지 송두리째 잃어버린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의 피의자 유우성씨 이야기다. 유씨는 10년 전 북한 사회에 회의를 품고 탈북, 온갖 고생 끝에 2011년 서울시청 복지정책과 공무원이 되어 기초생활수급자를 관리하는 일을 해왔다. 사회적 약자들을 도우며 살고 싶다는 유씨의 꿈은, 그때까지만 해도 순조로웠다.

그러나 작년 1월, 국정원 수사관들이 유우성씨의 집에 들이닥쳤고 그는 영문도 모른 채 서울구치소에 갇혔다. 동생 유가려씨가 "오빠가 간첩"이라고 자백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후 유가려씨가 고문 때문에 허위진술을 했다고 밝혔음에도, 검찰은 유씨의 북한-중국 출입경기록을 비롯해 탈북자들을 증인으로 내세우며 유씨를 압박했다. 중국 정부가 '검찰의 문서는 위조'라고 밝혔고, 남편이 출소한 해도 기억하지 못하는 탈북자가 북한에서 유씨를 봤다고 증언하는 등 증거의 신빙성이 매우 떨어지는데도 검찰은 물러서지 않고 있다.

생각에 잠긴 유우성씨 간첩 증거조작 사건 당사자 유우성씨가 15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민변, 민주법연, 참여연대 등이 주최한 '국정원과 검찰의 간첩 증거조작 사건 국민설명회'에 참석하고 있다.

생각에 잠긴 유우성씨 간첩 증거조작 사건 당사자 유우성씨가 15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민변, 민주법연, 참여연대 등이 주최한 '국정원과 검찰의 간첩 증거조작 사건 국민설명회'에 참석하고 있다. ⓒ 권우성


이제야 언론들이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을 조명하면서 '사건 조작'이 의심되고 있지만, 이미 유씨 가족들의 삶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암투병 중인 아버지는 "아들이 힘든데 맘 편히 수술 받을 수 없다"며 수술을 미루고 있고, 동생은 1년여의 재판 내내 증거자료를 찾으러 다니느라 일을 하지 못했다. 공무원직 해고 이후 생계를 위해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려던 유우성씨 역시, 학부모가 유씨의 얼굴을 알아봐 또다시 일을 잃고 말았다.

또 다른 편파판정과 무관심 속에 직장과 가족, 그리고 꿈을 빼앗긴 사람들이 있다. 심판은 더 나은 삶을 찾아 남한으로 온 사람에게 '홈 텃세'를 부리는 검찰과 국정원. 그러나 페이스북은 잠잠했고, 그 어떤 모금이나 서명운동도 없었다.

우리는 왜 간첩몰이로 고통 받는 탈북자의 이야기보다 러시아 피겨 심판의 과거사에 더 분노하는가! 언론이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더욱 비중 있게 다루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시민들이 이웃의 '도둑맞은 미래'를 살피고 분노할 수 있는 지성을 갖추길 바란다. 그리고 기원한다. 삶이라는 미끄러운 빙판을 위태롭게 살아가는 제 2, 제 3의 김연아들이, 또다시 무관심 속에 이런 얼토당토않은 판정으로 피해를 입지 않기를.
덧붙이는 글 이 칼럼은 <한겨레신문>에서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아하! 한겨레> 322호에 실렸습니다.
#김연아 #유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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