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 얻으려 강제임신, 아기도 빼앗고..."

['고기 킬러' 채식 전도사 되다⑧] '우유', 새롭게 바라보자

등록 2014.03.20 19:35수정 2014.03.20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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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에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안도현, <스며드는 것>)


안도현 시인은 살아있는 꽃게로 간장게장을 담그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죽음에 직면한 꽃게의 마음을 상상해 보았다고 한다. 특히 뱃속에 알을 품은 꽃게의 입장을 상상하며 이 시를 썼다고 한다.

광고인 박웅현은 인생을 살면서 꼭 생각해봐야 하는 단어 여덟 개를 <여덟단어>(북하우스)라는 책에 소개했다. 그리고 그 여덟 단어를 하나씩 짚어보면서 책의 부제인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여덟 단어 중 하나인 '견(見)' 즉 '눈으로 보는 것'에 대해 설명하면서 위 시를 언급했다.

그는 살면서 수없이 꽃게를 먹었지만, 단 한 번도 안도현 시인과 같은 시선으로 꽃게를 바라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시를 읽고 난 후 더 이상 꽃게를 먹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똑같은 꽃게로부터 남들과 다른 것을 포착하는 힘이 바로 시인의 힘이라고 말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오직 새로운 시선만이 있을 뿐."

창조적인 직업 종사자로서 박웅현은 이 말을 자주 한다고 한다. 평소 무심하게 봐왔던 것도 '새로운 시선'으로 보는 순간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는 뜻이리라.


새로운 시선은 인류 역사에도 중요한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오랜 세월 당연시되던 피부색, 성에 따른 차별이 '부당하다'고 인식되기 시작한 것도 사람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덕분이었다. 이 새로운 시선은 동물에게로 확장되어 오늘날 '동물복지'나 '동물권'은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는 주제가 되었다.

하지만 "꽃게에게 감정이 어디 있냐"며 코웃음 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우유'에 대한 새로운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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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극 <얼Th링쓰>의 한 장면. ⓒ 극단 더더더


극단 '더더더'는 지난 14일부터 3일 동안 서울 동숭동에서 창작극 <얼Th링쓰>를 공연했다. 이 연극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우유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시했다.  

옛날에 탁월한 면역성분이 함유된 젖을 분비하는 여자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여자들의 숫자를 늘려 많은 젖을 얻었다. 그 후 여자들을 관리해서 보다 많은 젖을 공급하는 사람들이 등장했고, 그렇게 생산된 젖은 상품으로 판매됐다.

관리자들은 여자들의 젖이 행복한 환경에서 생산된다고 홍보한다. 그러나 사실 여자들은 황량한 창고에 감금된 채 강제 임신과 출산을 반복한다. 게다가 태어난 아기는 관리자에게 빼앗긴다. 여자들은 탈출을 시도해 보지만 그마저도 실패한다. 여자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극의 간단한 줄거리다. 극중의 여자들은 공장식 낙농장의 젖소를 상징한다. 연출을 맡은 이태양씨는 사람들이 음식에 들어가는 수많은 첨가물에는 경악하고, 시판되는 과자에서 이물질이 발견되는 사실은 뉴스거리가 되지만, 인간이 소비하는 동물들의 비참한 삶은 외면되는 현실에 문제의식을 느꼈다고 한다.

극의 제목인 <얼Th링쓰>는 '지구생명체'를 뜻하는 영어 'Earthlings'에서 유래한 것으로 지구에 사는 생명체 전부를 의미한다. 이태양씨는 현대 산업에서 희생되는 동물들의 현실을 다룬 다큐멘터리 <지구생명체>를 보고 충격을 받아 이를 연극으로 알리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녀는 연극을 본 사람들이 지구생명체는 인간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하고, 동료 지구생명체인 동물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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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극 <얼Th링쓰>의 한 장면. ⓒ 극단 더더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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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극 <얼Th링쓰>의 한 장면 ⓒ 극단 더더더


미국의 동물보호단체 '동물은 오늘 그리고 내일도 절대적인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ADAPTT)의 설립자인 게리 유로프스키는 2010년 조지아공과대학교 강연에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잔인함으로 말하자면, 저는 한 잔의 우유가 한 조각의 스테이크보다 잔인하다고 생각합니다. 젖소도 여느 암컷 포유류와 다르지 않습니다. 젖을 생산하려면 임신을 해야 해요. 낙농장 젖소는 반복적으로 강제 임신을 당합니다. 송아지가 태어나면 바로 빼앗기고 말이죠.

저는 젖소의 참혹한 울부짖음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들었어요. 젖소는 송아지를 돌려달라고 창자가 끊어질 듯이 통곡합니다. 여기 계신 여성분들도 아기를 빼앗기면 그렇게 울부짖지 않겠어요?

그런데 왜 송아지를 빼앗을까요? 젖소가 송아지에게 먹이려고 만드는 젖을 사람들에게 팔아야 하기 때문이죠."

어미 소의 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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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식품 중 하나인 우유. ⓒ 조세형


약간의 역지사지와 공감능력을 발휘하면 지금까지 '먹을 것'으로만 여겨왔던 것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럼에도 동물의 감정을 한사코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아래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어떨까. 미국에서 할리 치버라는 수의사가 겪은 실화다.

미국 코틀랜드 카운티에서 낙농장 수의사로 일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나는 막 출산을 한 브라운 스위스종 젖소에게서 젖이 충분히 나오지 않는다는 농장 주인의 연락을 받았다.

문제의 젖소는 간밤에 풀밭에서 다섯 번째 출산을 마치고 송아지와 함께 실내 사육장으로 돌아왔다. 젖소가 우유를 짜러 간 사이, 송아지는 농장 관행에 따라 어미로부터 영영 격리되었다. 

출산 직후의 젖소는 하루 47리터 가량의 우유를 생산하지만 그 젖소는 젖이 충분히 나오지 않았다. 나는 딱히 원인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며칠 후 농장 주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풀밭으로 가는 젖소의 뒤를 밟았다가 젖이 모자란 원인을 알아냈다고 했다.

그 젖소는 원래 송아지를 두 마리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한 마리만 사육장에 데려가고 다른 한 마리는 숲에 숨겨두었다고 한다. 젖소는 숨겨둔 송아지를 아침저녁으로 찾아가 젖을 먹이며 보살폈고, 그 때문에 젖이 모자랐던 것이었다.

젖소는 송아지를 주인에게 데려가면 영영 이별이라는 것을 지난 네 번의 출산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두 마리를 전부 숨기면 의심을 받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출산을 마친 젖소가 홀로 사육장에 돌아오는 건 이상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젖소는 한 마리만 사육장에 데려가고 다른 한 마리는 숨겨두었던 것이다. 두 마리 모두 구하고 싶었겠지만, 한 마리라도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힘든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 사례는 동물행동학자들이 동물의 지능과 감정에 관해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곤 한다. 이 사건은 젖소가 새끼를 빼앗긴 고통을 기억하고 있었으며, 한 마리라도 구하려고 복잡한 추론을 했음을 보여준다. 할리 치버는 네 자녀 중 어느 하나도 잃지 않고 키워낸 엄마로서 젖소의 슬픔에 깊이 공감한다고 덧붙였다. 

이 이야기를 접하고도 동물에 대한 그 어떤 배려도 용납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얼Th링쓰>의 줄거리를 조금 바꿔보자.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탁월한 지능과 과학기술을 지닌 외계생명체가 지구를 정복했다. 이 외계생명체는 동물은 물론 인간고기도 즐겨먹는다. 그들은 인간을 '사육'하여 '식료품'으로 공급하기 시작했고, 인간은 큰 고통을 겪게 되었다.

스스로 '우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이 외계생명체는 인간을 지구의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하등한' 존재로 여긴다. 인간은 외계생명체가 인간을 먹지 않도록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 밥상 위의 동물들을 그저 '먹을 것'으로만 보는 시선을 고수하는 한, 우리에게 외계생명체를 설득할 자격이 있을까. 

(* 다음 글에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위 기사에 소개된 할리 치버의 이야기는 온라인 시사지 <글로벌 애니멀>의 기사를 번역하여 간추린 것입니다.
원문주소: http://www.globalanimal.org/2012/04/13/cow-proves-animals-love-think-and-act/71867/

위 기사에 언급된 게리 유로프스키의 강연 한국어 자막판은 유튜브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http://youtu.be/71C8DtgtdSY
#얼TH링쓰 #동물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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