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잡이 머릿속, 오른손잡이와는 딴판

[재미있는 과학이야기 10] 확실한 것은 '우열'아닌 '차이'

등록 2014.04.02 20:20수정 2014.04.0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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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번에는 네가 던져 봐."

40대 초반의 P씨는 연년생으로 초등학생인 두 아들과 휴일이면 야구공 주고받기를 즐긴다. 큰 아들은 오른손, 작은 아들은 왼손잡이이다. 그는 두 아들이 던지는 공의 궤적이 다른 걸 당연하게 여긴다. 평소 가족과 야구경기를 자주 시청하는 그는 오른손 투수와 왼손 투수의 구질이 다르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P씨가 전혀 모르는 매우 '중요한' 사실이 있다. "던져봐"라는 말을 듣는 순간, 아들들의 뇌에서 일어나는 반응이 그 것이다. 오른손잡이인 큰 아들은 아빠의 말을 왼쪽 두뇌로, 왼손잡이인 작은 아들은 오른쪽 두뇌로 인식하는 등 서로 양상이 크게 다르다는 점을 그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던져 봐" 외에, "잡아라", "문질러 봐" 등 손동작이 따라야 하는 단어를 들었을 때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의 두뇌 반응은 십중팔구 다르다. "평소 주로 사용하는 손이 다르니, 뇌 반응 부위도 다를 수 있지, 뭐"하고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여성과 남성의 사고방식이 다른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화성인' 남자, '금성인' 여자라는 말이 생길 정도다. 헌데 최근 들어 태생적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의 두뇌 특성 또한 그 차이가 상당하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흑인, 황인, 백인을 가릴 것 없이 공통적인 현상이다. 여자와 남자처럼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 또한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사람일 수 있다는 말이다. 

국내 프로야구에서 왼손으로 공을 던지는 선수의 비율은 20% 안팎으로 일반인구의 5~10%(추정치)에 비해 훨씬 높다. 미국 프로야구에서는 왼손잡이가 25%로 더 많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야구 경기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운동선수 가운데는 일반적으로 왼손잡이가 많다. 특히 테니스, 복싱 등 일대일로 맞서는 스포츠 종목에서 더 그렇다. 이 때문에 왼손잡이들이 평균적으로 운동신경이 더 좋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a 왼손잡이 오른손잡이 차이 L은 좌반구를 R은 우반구를 나타낸다. 똑같은 자극에 나타나는 반응 부위가 왼손잡이(노란색)와 오른손잡이(푸른색)에서 전적으로 다르다.

왼손잡이 오른손잡이 차이 L은 좌반구를 R은 우반구를 나타낸다. 똑같은 자극에 나타나는 반응 부위가 왼손잡이(노란색)와 오른손잡이(푸른색)에서 전적으로 다르다. ⓒ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


왼손잡이 가운데는 또 예체능 능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두뇌의 우반구가 발달된 사람의 비율이 오른손잡이에 비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가 하면 미국에서 이뤄진 한 조사는 왼손잡이의 지능지수가 오른손잡이보다 평균 1점 정도 높다고 밝히고 있다. 반면 정신분열증이나 각종 신경증에는 왼손잡이가 더 취약하다는 사실이 의학통계를 통해 확인되는 실정이다. 


올해 25세인 K씨는 오른손잡이지만 왼손도 잘 쓴다. 그는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왼손으로 밥을 먹고 글씨를 썼다. 그런데 엄마와 누나가 그 즈음 왼손을 쓰는 걸 자주 놀렸다. 주변 친구들도 거의 다 오른손잡이이고, 놀림을 받는 게 싫어 오른손으로 바꿨다"고 털어 놓았다.

그의 뇌는 평소 어떤 방식으로 작동할까. 전문가들은 타고난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의 중간쯤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한다. 하지만 말 그대로 추정일 뿐이다.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는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기도 하지만, 태아 때 산모의 뱃속환경은 물론 후천적인 강요나 학습에 의해 정해질 수도 있다. 뇌가 우리 몸을 움직이는 중추지만, 역으로 신체의 어떤 부위를 집중적으로 사용하느냐가 뇌 기능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영어 단어, 'right'에는10가지 이상의 뜻이 있다. 이 가운데 '오른쪽'과 '옳은' 이라는 뜻이 가장 빈번하게 사용된다. 왼손잡이들로서는 곰곰이 생각하면 부아가 치밀 수도 있는 일이다. 헌데 영어만 오른쪽을 우대하는 건 아니다. 최근에는 좀 달라진 듯 하지만, 예전에는 우리 사회에서도 오른손을 '바른손'이라고 흔히 지칭하곤 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른손을 더 쳐주는 현상은 공통적이었다.

하지만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에 대한 최신 연구들은 양손의 우열을 함부로 속단할 수 없다는 결론으로 수렴된다. 흥미롭게도 버락 오바마를 포함한 미국의 최근 역대 대통령 7명 가운데 5명은 왼손잡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왼손잡이가 더 뛰어난 셈이다.

그러나 이 역시 짜맞춰야 할 퍼즐 가운데 일부분일 뿐이다. 확실한 것은 우열이 아니라 차이이다. 왼손이냐, 오른손이냐 하는 겉으로 드러난 차이가 아니라 인간의 사고를 지배하는 뇌의 구조와 기능 차이에 더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독일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팀은 최근 유명 학술지(<네이처 리뷰스 뉴로사이언스>)에 기고한 논문에서 뇌 과학자들 사이의 '공공연한 비밀'을 까발려 학계의 관심을 모았다.

이 논문의 요지는 "왼손잡이들도 연구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뇌신경 등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통계에서 변수를 줄이기 위해 왼손잡이를 배제하는 일이 잦은데, 이를 정면에서 꼬집은 것이다. 왼손잡이를 연구에 포함시키면, 데이터가 들쭉날쭉해진다는 건 학계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연구자로서는 당연히 명쾌한 결론을 끌어내기 어렵다.

뇌의 작동 방식이 다르다는 말은 곧 사람이 다르다는 얘기와도 통한다. 막스 플랑크 연구소팀은 "왼손잡이의 비율이 인간 가운데 상당하고, 그들 또한 정상적인 사람의 한 부류"라고 지적했다. 오른손잡이에 대한 뇌 연구 결과를 인간 전체의 그 것인 마냥 포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왼손잡이에 대한 부지불식간의 차별이 학계에서조차 엄존하는 게 현실이다. 왼손잡이에 대한 공정한 배려가 가능한 날은 언제쯤일까.
덧붙이는 글 위클리 공감(http://www.korea.kr/gonggam/)에도 실렸습니다. 위클리 공감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하는 정책 주간지입니다
#왼손잡이 #오른손잡이 #뇌 구조 #소수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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