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태울 뻔, 산촌가옥 화재로 아찔

양양산불 악몽을 다시 떠 올리게 한 12일 화재현장

등록 2014.04.13 14:54수정 2014.04.13 14:55
0
원고료로 응원
지난 12일, 날씨가 흐린다고는 했지만 주말이라 모처럼 시간 여유가 생긴 친구가 오랜만에 들에 나가 보자고 한다. 자활센터로 출발해 사회적기업으로 발전시킨 친구로 그동안 봄맞이 일정 탓에 시간이 부족하다더니, 어느 정도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며 들꽃 촬영을 나가자고 해 준비하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한 약속인데 초등학교 6학년인 딸이 감기가 걸려 금요일 오전 수업만 받고 조퇴를 해 집에 왔다고 하니 난처하다. 아이 방에 들어가 살펴보고 나오는데 문자메시지 하나가 들어왔다.

<긴급알림>
미천골부근 개인가옥에 화재발생.
출동 할 대원은 장구 갖추고 속히 연락바람!

a

2005년 산불로 불에 타는 낙산사 2005년 4월 5일 식목일 새벽에 발생한 양양산불로 문화재가 많은 낙산사가 전소되는 등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 ⓒ 산림청 자료


이미 10여 년 시간이 흘러 기억에도 가뭇하지만, 불현 듯 2005년 발생한 양양산불이 떠올랐다. 식목일인 2005년 4월 5일 발생한 양양산불은 피해액이 총 345억 이상으로 조사되었는데 여기엔 소중한 문화재 22종까지 사라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당시 집계된 피해 내역을 살펴보면 주택 182채 등 건축물 소실 416채에 달해 53억6400만원의 피해가 발생했으며, 문화재 22종 소실에 82억5700만 원으로 집계되었다. 또한 농작물과 농업시설은 물론이고, 농기계와 가축 등 농업 및 축산업 피해가 21억500만원에 달했으며, 임야는 973㏊가 불에 타 34억8600만 원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와 함께 상가 64채, 숙박시설 5곳, 공장 2곳 등 소상공인 피해가 131억8300만 원으로 조사됐고 환경시설과 기타 시설 등에서 21억1700만 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이 산불로 191가구가 불에 타 412명의 이재민이 발생해 마을회관과 친척집 등에서 불편한 생활을 며칠간 했고, 복구를 위해 막대한 비용이 투입됐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어 이재민에게 응급생계비와 구호물자, 주택피해 위로금, 성품 배분 등의 응급조처와 함께 희망자에게는 주거용 컨테이너를 설치해 주었다.

당시 이재민들의 임시 주거를 위해 설치한 컨테이너에 수도공급을 위한 자원봉사를 1주일간 했다. 그 덕에 화마가 휩쓸고 간 피해지역을 샅샅이 둘러 볼 수 있었다. 그랬던 기억이 있기에 119양양센터를 통해 전송된 긴급 메시지에 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미천골로 불이 번지지 않기를 바라며 나섰다.


a

불길이 잡힌 현장의 의용소방대원들 양양군 서면 황룡마을에 있는 가옥이 잿더미로 변했으나 다행스럽게 산으로 번지던 불길은 막았다. ⓒ 정덕수


미천골 초입은 이곳 오색초등학교에서 30km가 떨어져 있다. 마침 출사를 나가자고 도착한 친구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사진 촬영은 뒤로 미루고 서둘러 출발했다. 도중에 출동준비를 하고 기다리는 후배도 태운 뒤 남설악터널을 지나 구룡령 방향으로 접어들고 오래지 않아 소방차가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한 대가 아니라 몇 대의 차량이 연속해서 내려오는 걸 보며 화재진압이 끝난 줄 알았다. 소방차 외에도 양양군청의 산불감시단 차량도 몇 대 내려오는 걸 보며 우리가 출동이 너무 늦은 모양이다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의용소방대원들도 제법 많이 출동했을 게 분명한데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미천골 방향으로 우선 가 보기로 했다.


미천골휴양림안내소에 도착해 확인하니 그곳에서는 불이 나지 않았다고 했다. 차를 돌려 미천골 초입으로 나와 차를 구룡령과 갈천마을 방향으로 조금 더 올라가 보기로 했다. 불은 미천골 입구에서 구룡령 방향 500여 미터 위치에 있는 주택에서 발생했다.

차를 주차하고 10여 대의 소방차가 도로를 점령한 현장으로 달려갔다. 이곳에 오는 도중 만났던 소방차들은 산으로 번지는 불길을 막으려 엄청난 양의 물을 주택에 인접한 산에까지 뿌리다보니 물이 부족해 물을 공급받으러 내려갔던 것이다. 양수시설이 없는 소방차들로서는 마을에서 식수로 사용하는 간이 상수도로는 탱크에 물을 채우기 어렵다.

a

화재현장에 출동한 소방차 의용소방대 소방차를 비롯 10여 대 이상의 소방차가 출동해 사자락을 바로 뒤로 하고 지어진 가옥에 난 불을 껐다. ⓒ 정덕수


불길이 어느 정도 잡히고 포클레인을 투입해 잔불정리에 들어갈 때서야 차에서 카메라를 꺼냈다. 119센터나 소방서에 보고를 위해서도 사진은 필수다. 도로와 전소된 주택을 촬영하려는데 마침 화재감식반이 도착했다.

마당에서 포클레인이 움직이는 반경을 피해 대원들이 정돈하는 모습과 현장을 촬영한 뒤 자리를 옮겨 주택 바로 뒤의 불이 옮겨 붙었던 산으로 올라갔다. 마침 감식반도 산으로 올라와 사진촬영을 하며 현장을 살펴본다.

a

잔불정리 번지는 벌길은 가옥을 전소시켰으나 산으로 옮겨붙은 불길은 더 이상 크게 번지지 않도록 잡았다. ⓒ 정덕수


도시와 달리 산촌마을들은 산과 거리가 크게 떨어지지 않게 집들이 있다. 뒤란이 아예 산인 경우도 많다. 불이 난 주택도 조침령과 구룡령 사이의 백두대간으로 연결되는 산자락에 위치해 있다. 그나마 도로 바로 옆에 터를 잡은 집이라 소방차가 진입하기에는 아무런 장애가 없다는 게 다행이다.

만약 출동이 조금만 더 늦었더라도 주택에서 발생한 불길은 산으로 옮겨 엄청난 피해를 냈을 것이다. 바위가 많고, 더구나 아직 잎이 덜 핀 나무들이 많은 탓에 산으로 옮겨 붙은 불길을 제때 잡지 못했다면 화재진압을 위해 출동했던 이들도 많이 다쳤을 상황이다.

a

화재현장에서 만난 삶의 흔적 산나물을 채취해 가용돈을 벌고 자녀들과 나누는 산촌에 사는 노인들의 일상이 화마로 사라졌다. ⓒ 정덕수


봄철이라 농가에서는 나물을 채취해 소득을 올린다. 나물을 삶아 말리기 위해 널어놓은 게 보인다. 자식들 입에 넣어줄 생각으로 고단함을 무릅쓰고 들에서 채취한 며늘취(금낭화)와 고비다. 말리기 위해 널어놓은 나물의 상태를 보아 화재와는 관련이 없다.

a

전소된 가옥과 중장비 화재감식반과 함께 전소된 가옥의 뒷산에 올라가 현장을 둘러봤다. ⓒ 정덕수


양철로 지붕을 덮었지만, 예전엔 이 집은 굴피(졸참나무의 껍질을 벗겨 낸 것)로 지붕을 했던 전형적인 강원도식(북방식) 농가주택구조다. 이 강원도식이나 북방식농가주택은 외부에 마루가 없고 부엌에서 마루를 통과해 안방과 사랑방으로 연결되도록 지어진다.

부엌에서는 무루와 안방은 물론이고 소를 키우는 외양간까지 연결되어 가축도 겨울엔 더불어 온기를 나눌 수 있다. 기둥과 서까래는 오래전 그대로다. 화재가 발생한 원인은 누전이지 싶으나 감식반이 조사해 밝혀낼 일이다.

a

잔불정리 살구꽃 복사꽃이 만개한 4월, 희망 가득한 봄날 오전에 화마로 꿈을 잃은 주민은? ⓒ 정덕수


현장엔 양양 119센터와 양양의용소방대도 먼 길 마다않고 출동했고, 서면의용소방대를 비롯해 오색지역대와 화재가 발생한 지역에서 활동하는 서림지역대는 물론이고 서면여성의용소방대까지 70명 이상이 출동했다. 가재도구 하나 건지지 못하고 가옥 전체를 화마에 잃은 어르신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위로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평생을 더불어 살아오신 한 어르신들의 낙심을 몇 마디 말로 위안이 되겠느냐만 그나마 여성대원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활동 아닐까 싶다. 어르신들의 자녀들과 함께 학교를 다녔고 명절이면 세배를 다녔던 자식의 친구들이 의용소방대원들이고 여성대원들이다.

물에 흠뻑 젖은 새까맣게 타 숯덩이가 된 구조재를 포클레인으로 들추니 매캐한 연기가 하늘을 뒤덮는다. 살수차로 물을 뿌리며 잔재들을 뒤집어 만약에 모를 불씨 하나까지 모두 정리한다. 더 이상 추가로 불이 번질 위험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다시 각자 생활하는 현장으로 돌아가는 대원들을 보고서야 철수하기로 했다.

a

황룡마을 화재현장 양양과 홍펀을 연결하는 또 다른 도로인 56번 국도가 화재진압에 도움이 되었다. ⓒ 정덕수


각 소속대별로 점심식사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지역대는 대부분 집에 일들이 있어 급히 귀가한다고 연락을 해왔다. 동승한 후배에게 양해를 구하고 친구와 함께 다른 식당으로 향했다. 시원한 막국수가 오히려 정신을 맑게 해 줄 것 같다는 판단에서 서면사무소에서 멀지 않은 곳의 막국수집으로 갔다.

화재현장과 그리고 각자 생업에 종사하다 연락을 받고 출동해야 하는 대원들, 주택은 모두 화마로 잃었지만 더 이상 큰 불로 번지지 않은 것에 다만 위안을 삼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습들이 교차한다.

같은 차로 출동했던 이들과 막국수 한 그릇씩 나누고 우리도 예정된 들꽃 촬영에 나섰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http://www.drspark.net/의 ‘한사 정덕수 칼럼’에도 동시 기재됩니다.
#황룡마을 #낙산사 전소 #백두대간 #양양산불 #의용소방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더 많이 느끼고, 그보다 더 많이 생각한 다음 이제 행동하라. 시인은 진실을 말하고 실천할 때 명예로운 것이다. 진실이 아닌 꾸며진 말과 진실로 향한 행동이 아니라면 시인이란 이름은 부끄러워진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이게 뭔 일이래유"... 온 동네 주민들 깜짝 놀란 이유
  2. 2 3일마다 20장씩... 욕실에서 수건을 없애니 벌어진 일
  3. 3 참사 취재하던 기자가 '아리셀 유가족'이 됐습니다
  4. 4 이시원 걸면 윤석열 또 걸고... 분 단위로 전화 '외압의 그날' 흔적들
  5. 5 [단독] '윤석열 문고리' 강의구 부속실장, 'VIP격노' 당일 임기훈과 집중 통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