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시작... 세월호 피해자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착한 사람들의 '무관심'

등록 2014.04.26 09:29수정 2014.04.29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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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에 나온 <분닥 세인트>라는 영화가 있다. 극장 개봉은 하지 않고, 비디오로만 나온 것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이 영화에 열광했다. 보기 드물게 세련된 액션신과 윌리엄 데포의 연기력은 압권이었다. 그 중에서도 도입부에 나왔던 어떤 가톨릭 신부의 강해 장면은 지금까지도 또렷이 뇌리에 남아있다. 그 신부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착한 사람들의 무관심이다'라고 강변한다.

태안 기름 유출 사건이 있었다. 온 국민이 경악했고, 그만큼 한 마음으로 두 팔 걷고 나섰다. 해안 곳곳마다 자원봉사자와 각종 도움의 손길이 넘쳐 났다. 7년이 지난 지금 그 많던 자원봉사자도, 구호물품도 없지만, 아직 태안 주민들의 전쟁은 끝난 게 아니다. 못 믿겠지만 아직도 당시 사고에 대한 피해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우리가 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관심을 거둔 그 순간 태안 주민들은 거대 대기업과 정부를 상대로 더 큰 싸움을 힘겹게 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여일이 지났다. 모두가 침통한 심정으로 가슴 아파하고 있을 것 같은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분당의 다국적 커피숍 2층에는 시끌벅적한 소음과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이들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비극에도 우리의 삶은 계속 되어야 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니까. 이 글을 읽게 될 당신들의 삶도 마찬가지다.

진짜 문제는 이것이다. 나는 충분히 참사 피해자들에 대해 가슴 아파했고, 그 가족들에게 할 도리를 다했다는 스스로에 대한 면죄부. 그것이 자원봉사였든, 구호물품이나 위문편지였든, 하다못해 SNS의 노란 리본과 애도의 대화명이든, 그것으로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이 진짜 위험한 것이다.

사실상 세월호 실종자들의 생존 가능성에 대한 희망고문이 끝난 지금, 피해자의 가족들은 앞으로 지금보다 훨씬 더 큰 진짜 전쟁을 맞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말이다.

서로 책임지지 않기 위해 꼬리 자르기를 시도할 정부, 다른 이슈로 국민의 시선을 돌리려고 하는 언론, 도의적 책임은 통감하나 법적 보상의 문제는 보험사와 얘기하라는 해운사, 지루한 법정공방으로 끌고 가려는 보험사. 남겨진 가족들은 어쩌면 더 힘들고도 지리한 싸움을 이들과 해야 할지도 모른다. 태안 기름유출 사태처럼 말이다.

우리는 이제 피해자 가족들을 위한 진짜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그들에 대한 관심을 끊지 않는 것이다. 최근 며칠 간 피해자 가족들에게 가졌던 연민과 미안함의 절반이라도 계속 가지고 그들의 싸움에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


시간이 지나고 언론의 관심이 끊겼다고 그 사건이 다 해결된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태안 주민들의 싸움이 끝난 것이 아닌 것처럼,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의 진짜 싸움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그들을 진정으로 돕고 싶다면, 그들에 대한 관심을 끊지 말자. '피해자 가족들이 오열하고 있다는 뉴스가 잠잠히 있는 피해자 가족들에게 울려 퍼졌다'는 한 트위터리안의 말처럼 언론은 이미 그 본연의 기능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


피해자 가족과 남겨진 학생들에 대해 연민을 가지고 성금을 보낸 것으로 민주 시민과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책무를 다했다고 생각하지 말자. 물론,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젊은이들은 짝을 찾고, 직장인은 성과를 내고, 동네 자영업자들은 매출 증대에 고심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에게 쥐어준 알량한 양심적 면죄부를 근거로 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관심을 끊어버리는 순간, 이런 사고는 언제든지 되풀이 될 수 있다. 권위주의와 자리보전에만 급급한 저들을 심판하고, 국가 재난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우리의 관심이 계속 되어야 한다. 그 관심이 남겨진 피해자 가족들이 겪게 될 진짜 싸움에 무엇보다 큰 힘이 될 것이다.

검색창에 세월호 피해자에 대한 정부의 처신과 해운사의 대응을 지속적으로 검색하고,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가끔씩은 그 가족들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청년들은 정부의 미온적인 대응과 기업의 악랄한 행태에 대해 분노하고 행동하자.

기성세대들은 그런 청년들을 지지하고 더 나아가 함께 행동하자. 그래야 언론은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질 것이고, 정부와 기업은 보상에 대해 성의 있는 태도를 보이는 흉내라도 내게 될 것이고, 사회 안전망은 변화될 것이다.

우리가 관심을 끊는 순간, 수 년 후 또 다른 비극의 주인공은 나와 우리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본 글은 구미지역 언론협동조합 뉴스풀(newspoole.kr)에 동시 게재되었습니다.
#세월호 #피해자 #무관심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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