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한 '세월호'지난 달 16일 오후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한 인천발 제주도행 여객선 '세월호' 주위에서 수색 및 구조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해양경찰청 제공
사고 후 대통령은 '복지부동'을 질타했고, 언론은 한국사회에 만연한 '안전불감증'을 비판했다. 너무나 상식적이고 타당하게 들리는 평가이자, 국가적 재난 후 어김없이 되풀이되어 온 말이기도 하다. 타당한 분석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국 공무원들은 '복지부동'은커녕, 시키지도 않은 일까지 알아서 하는 사람들이다. 권력자의 비위를 맞추는 일이라면 말이다. 사고현장을 찾았던 대통령이 떠나고 나서 구조작업이 진척이 되지 않자, 실종자 가족들은 대통령을 만나겠다며 길을 나섰다. 경찰은 혼비백산해서 이들의 행진을 막았다. 청와대와 천 리 넘게 떨어진 곳에서 말이다.
한국사회는 결코 '안전불감증'의 사회가 아니다. 힘 있는 사람들은 신체의 안전은 물론, '심기'의 안전까지도 완벽히 보장된다. 예컨대 지난달 28일, 구조 상황을 지켜 본 윤부한 목포시 특전예비군 중대 중대장은 믿기 어려운 말을 했다. 사고 첫날인 16일, 1분 1초가 급한 상황에서 장관이 민간구조단의 출항을 지체시켰다는 것이다.
<미디어오늘>은 윤 중대장이 지목한 사람이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강병규 장관이 구조 현장을 방문했고, "격려를 한다고 급박한 시간에 장관이 배를 멈춰 세우고 악수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지연됐다"는 것이다. 수백 명의 목숨이 사라져 가는 순간에도, 장관이 나타나 손을 내밀면 달려 나가던 구조대도 멈추고 경의를 표해야 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그뿐 아니다. <JTBC>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구조업체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는 다른 민간잠수부가 발견한 시신을 자기들에게 '양보'하라고 요구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 요구로 인해 생존자를 구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점이다.
그 당시 '조류가 빨라 구조가 어려웠다'던 정부측 발표나 언론 보도와 달리, 한 민간잠수사에 따르면 "작업은 언제든지 가능하고 일단 유리창을 파괴하고 들어가면 그때부턴 얼마든지 살아있는 학생들을 찾기만 하면 되는 그런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언딘측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한다.
"이런 일을 다른 업체에 뺏기게 되면 내가 회사 사장으로부터 굉장히 실망을 얻는다, 당신도 회사생활을 해봤는지 몰라도 이런 경우 내가 뺏기게 되면 얼마나 큰 손실이 있겠느냐." 위계적 권력과 탐욕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주는 예가 아닐 수 없다.
한국정부의 사악한 전통무소불위의 권력과 탐욕. 한국사회가 이처럼 처참하게 망가진 이유일 것이다. 이 둘 앞에서 국민의 목숨은 그저 하찮게 보일 뿐이다.
세월호 사건은 '복지부동'이나 '안전불감증'보다는, 권력이 국민을 천대하고 국민의 목숨을 무시하는 탓에 발생한 일이다. 그런 탓에 쉽게 바뀌거나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불행히도, 국민 목숨을 함부로 다루는 이 사악한 전통은 초대 정부부터 21세기 현 정부에까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승만 정부는 '공산주의 확산을 막는다'며 국민 수천 명을 살해했고(보도연맹사건), 박정희 정부는 유신에 반대하는 국민을 간첩으로 몰아 18시간 만에 사형했으며(인혁당사건), 전두환 정부는 자신의 집권 반대 운동을 막기 위해 수천 명을 학살했다(광주민주화운동). 정권은 모두 '안보'를 내세웠으나, 정작 지키려 했던 것은 국민의 안위가 아니라 권력의 안위였다.
권력만 지킬 수 있다면 국민 목숨쯤은 간단히 저버릴 수 있다고 여겨 온 것이 한국 정부였다. 그리고 이 야만적 행위에 정부부처, 국정원(안기부), 검찰, 법원, 경찰, 군대, 언론, 관변단체 등이 수족이 되어 거들었다. 한국의 통치세력, 공무원, 친정부 언론에는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생명경시 유전자'가 남아있는 셈이다.
민주화 운동 이후 정부가 저지른 학살과 사법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고, 정부의 '체질'이 바뀌는 듯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 집권 이후 '어두운 과거의 복권'이 시작되었다. 대선여론조작 사건에서 보듯, 정부와 국정원, 군대, 경찰, 법원의 음습한 거래가 다시 시작되었고, 언론은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선전매체로 전락했으며, 정부는 교과서까지 손보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의 탄생은 '과거 복원 작업'이 성공적으로 완료되었음을 의미한다. 과거 권위주의적 국가로 회귀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고 이후 공무원들의 '눈치 보기'를 비판했지만, 공무원들의 눈치 보기가 가장 심해진 것이 현 정부 출범 이후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때 대통령과 '맞짱토론'까지 하던 검찰이 정부 지시를 묵묵히 따르는 '순한 양'이 된 게 언제부터인가.
한국정부의 비인간적 유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