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한 정부에 격분세월호 침몰사고 16일째를 맞은 1일 오전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을 방문한 정홍원 국무총리와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이 최선을 다하고 있으나 수색작업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이해를 구하자, 격분한 실종자 가족들이 정부의 안일한 대처를 질타하고 있다.
남소연
개항 이래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렸다는 팽목항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움직이는데도 놀랄 만큼 차분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희생자 가족들을 배려한 자원봉사자들의 조심스러운 마음은 말소리, 발소리, 물건 나르는 소리, 심지어 숨을 쉬는 소리조차 삼갈 만큼 조심스럽고 긴장된 모습이었다. 그래서 부스마다 사람들은 보이는데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외딴 항구에 몇 백 명의 사람들이 상주하면서 아무런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는 것은 업체들의 전폭적인 지원과 자원봉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수색이 중지되어 있는 까닭에 이런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은 실종자들과 그들의 가족에게 직접 닿지 못해 안타까움만 더하고 있었다.
언론사 기자들의 취재 의욕도 꺾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수색작업의 중단으로 항구에서 타진할 소식이 없었다. 기껏해야 바다를 보며 오열하는 가족들의 뒷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전부였으나 그마저 이젠 여의치 않았다. 실종이 장기화 되면서 가족들은 지쳐서 오열할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허름한 횟집 3층 옥상, 전망 좋은 위치를 선점한 모 언론사 기자는 카메라를 바다가 정면으로 보이는 지점에 세워 놓고 만반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성과' 없이 하루가 지나고 있고 그날 밤 수색 계획은 없지만 그의 카메라는 마치 저격수의 총신처럼 맹골수로쪽을 정조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 그는 끝내 단 한 장의 사진도 포착할 수 없었다. 이틀 동안 희생자 시신 한구를 수습한 것 외에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속절없이 시간은 흐르고 다음 소조기를 기다린다는 소식만 연이어 보도하고 있었다.
진도VTS, 변침, 구명정, 평형수, 에어포켓, 바지선, 다이빙 벨, ROV, 소조기, 정조시간대. 낯선 해양 전문 용어들이 요 며칠 우리 전 국민들에게는 생사를 가름 짓는 생존의 언어들이었다. 그러나 간절한 국민들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생소한 이름의 첨단장비나 야심찬 작전들이 적시적소에 수립되거나 투입되고 활용되는 것을 볼 수 없었다. 희생자들을 삼킨 것은 최고 6노트 맹골수로의 거센 조류만은 아니었다. 정부, 선사, 인양업체, 해경 등의 음모와 무능, 이기심이 아이들에게서 에어포켓을 앗아갔다.
방파제 한쪽에는 조촐한 제단이 차려져 있다. 제단 위에는 참배객들이 하나둘 올려놓고 간 청소년용 기호식품들이 진설되어 있다. 빗방울이 거세지면서 캔음료와 과자 등 포장 음식만 남기고 제단위의 음식들은 치워졌다.
그러나 언제 그칠지 모르는 빗속에서 피자업체의 출장 요리사는 완성된 피자 위에 도핑 장식을 정성스레 하고 있었다. 그 옆, 떡갈비 차량 요리사 역시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떡갈비를 굽고 있었다. 피자와 떡갈비가 경쟁하듯 나란히 구워지고 있었다. 제단 위에 다시 올릴 피자와 떡갈비였다. 빗속으로 퍼져 나가는 화덕 연기와 더불어 가장 잔인한 계절 월도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실내체육관과 팽목항을 잇는 셔틀은 20분 간격으로 운행되고 있었다. 차로 30분 거리의 실내체육관, 팽목항 구간 도로에는 가로수들마다 노란 리본이 빽빽하게 걸려 있었다. 진도를 상징하는 캐릭터인 진돗개 형상의 손에도 노란 리본이 쥐어져 있었다.
진도는 원래 '다시래기'의 섬이었다. '다시난다'는 의미의 '다시래기'는 진도의 독특한 장례의식이다. 진도에서 죽음은 다시 태어나기 위한 이승의 마지막 생의 절차이다. 그러므로 장례식은 마냥 슬퍼할 일만은 아닌 축제의 장이었다. 그래서 엄숙해야 할 장례식에 한바탕 굿판을 벌이며 망자의 넋을 위로하고 부활을 축원했다.
그 독특한 장례의식은 '다시 태어남'을 의미하는 '다시래기'라는 이름의 독특한 장례풍습으로 전승되었다. 실제로 진도의 상가에서는 얼마 전까지도 문상객들이 북 장단에 맞춰 밤새 노래하는 진풍경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다시래기'의 섬 진도에서 올 봄 누구도 부활을 기원하지 않는다.
'이런 나라에 다시는 태어나지 말아라.' '이 세상 잊고, 저 세상에서 행복하렴.' '춥고 힘들었지? 다시는 이 나라에 태어나지 마.'진도 실내체육관 벽면을 가득 채운 추모 문구들 중에는 유독 이승과의 절연을 비원하는 글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망자로 하여금 다시는 이 나라, 이 세상에 태어나지 말 것을 기원하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분노와 절망을 읽을 수 있었다. 부활의 섬 진도에서 뭍사람들은 망자들의 이승과의 단절을 기원하고 있다.
진도에서 작동을 멈춘 이기심과 탐욕의 자본주의실종자 가족들을 수용한 실내체육관은 난민촌을 연상케 했다. 온기 한 점 없는 차가운 체육관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칸막이도 없는 뻥 뚫린 공간에서 가족들은 2주째 집단생활을 하고 있다. 텔레비전을 통해 보았던 격앙된 가족들 모습도 오열하는 장면도 그날은 볼 수 없었다. 가족들은 자리에 힘없이 눕거나 앉아 있었다. 이젠 울고 저항할 기력조차 없어 보였다. 우두커니 앉거나 누워서 체육관 정면의 커다란 텔레비전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현지에서도 가족들이 의지할 것이라곤 오로지 언론보도 뿐이었다. 그러나 언론조차도 잘못된 보도로 가족들에게는 커다란 상처만 안겨주었다. 이번 참사로 인해 언론에 대한 가족들의 불신은 극에 달해 있다고 했다. 그런 기자들과 1, 2층으로 나뉘어 가족들은 2주일째 한 공간에서 부대끼고 있다.
망연자실 탈진해 있는 가족들 사이를 '미음 드실 분', '빨래 해드립니다' 등의 팻말을 든 자원봉사자들이 오가며 가끔씩 가족들의 동정을 살폈다. 피해자 가족들을 최대한 배려하려는 자원봉사자들의 지혜와 정성이 그 팻말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정치인, 관료, 기업들의 미개한 상태는 국민들의 성숙한 의식수준에 한참 뒤쳐져 있다. 재난을 당한 진도 현장에 와서 보면 누구나 그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