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게 똥물 부은 할머니, 이제 이해가 된다

[밀양을 살다②]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밀양 아리랑'

등록 2014.05.05 18:57수정 2014.05.05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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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을 하는 주민들의 삶을 담은 책 <밀양을 살다>가 출간되었다. 농사 짓고 밥을 나눠 먹고 가족의 안녕을 염려하는 이들의 평범한 이야기, 그러나 국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는 파란만장한 이야기. 이들의 이야기는 침몰해 온 한국사회의 모습을 증언한다. 그리고, 그래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만들어야 할 '사회'는 무엇일지 스스로 보여준다. 책이 전하는, 밀양을 함께 살 사람들을 기다리는 목소리에 대한 응답을 들어보자. 그리고 응답하자. 이 연재는 밀양구술프로젝트와 오마이뉴스 십만인클럽이 공동으로 기획했다. [편집자말]
a '밀양할매'의 눈물  지난 1월 26일 오전 송전탑을 반대하는 희망버스 행사가 열리는 가운데 경남 밀양 영남루 인근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강순자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밀양할매'의 눈물 지난 1월 26일 오전 송전탑을 반대하는 희망버스 행사가 열리는 가운데 경남 밀양 영남루 인근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강순자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양태훈


필자에게 밀양은 가본 적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 곳이었다. 종교적 구원으로 덮을 수 없는 인간의 고통에 대한 영화 <밀양>(2007)의 제목으로만 기억되던 곳이었다. 그런데 2012년 1월 당시 74세였던 마을 주민이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며 분신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처음에는 "송전탑 하나 만든다는데 왜 극단적 선택까지 하며 반대를 하지?"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이후의 상황전개는 심상치 않았다. 조용한 시골마을에 수천 명의 경찰병력이 들이닥쳐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끌어내고 위협하고 있었다. 이에 대응하여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쇠사슬로 몸을 묶고 가스통과 휘발유를 준비하고 움막이나 3미터 깊이의 구덩이 속에서 잠을 자면서 반대투쟁에 벌이고 있었다.

이 어르신들은 정말 죽기 살기로 싸우고 있었다. "보상금 더 받으려는 떼쓰기", "전력난을 야기하는 집단이기주의의 발로", "통진당 등 외부세력이 주도한 정권반대행위" 등의 비난을 받으면서 말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보아야 했다.

신고리 원전3호기 가동을 위해 정부와 한전은 45층 건물 높이(140m)의 765kV 초고압 송전탑을 밀양 곳곳에 세우기로 결정했다. 다른 지역과 달리 송전탑이 민가와 농토에 가깝게 설계되어 있었다. 대형 원전사고가 일어난 일본의 경험, 원전폐쇄를 추진하고 있다는 독일의 계획 등은 정부와 한전에게는 아무런 의미 없는 딴 나라 얘기였다. 원전부품비리가 속속히 드러나도, 정부의 전력난 주장이 과장되었음이 드러나도 우리 사회에서 원전에 대한 맹신은 여전하지 않은가.

한편, 밀양 등에서 세워지는 송전탑은 밀양 등 시골지역이 아니라 수도권과 광역도시를 위한 전력공급을 위한 것이었다. 시골에 사는 주민의 행복과 안전은 도시 사람들의 편리함을 위하여 또는 산업발전을 위하여 희생되거나 양보되어야 마땅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국책사업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주민들과의 대화와 소통은 소홀히 하고 밀어붙이기에 나선 것이다.

정부 등에 맞서 싸운 밀양 사람들의 이야기

a  책 표지.

책 표지. ⓒ 오월의봄


<밀양을 살다>는 정부, 한전, 언론 등에 맞서 싸운 밀양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왜 "아니 아니다 시르 시르다, 아, 난리가 났네, 송전탑 밀양 아리랑"(김영자)를 불렀을까.

여든 여섯이 된 경상도 시골 할머니가 왜 "순사들이 지랄병하는거 보래이. 간이 바짝바짝 마른다", "박근혜 가시나, 더러분 놈의 가시나"(김말해)라며 울분을 토하고, 여든 여덟이 된 할머니는 "보불(화)"이 나서 똥물을 경찰들에게 퍼부었을까(조계순).


이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돈이 전부가 아닙니다. 절대 돈 거는 추접은 돈이고 필요 없는 돈입니다"(권영길)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이었고, 이들에게 밀양은 "없이 살고 가난하게 살아도 있는 그대로가 편안하고 좋았던 고향"(김옥희)이었다.

이들은 "처음 철탑부지로 선정됐다고 했을 때는 그냥 전봇대 하나 꽂히는 걸로 생각"하고 있었다(성은희). "도시 가면 재밌는 게 없어. 여기 오면 무진장 나를 사랑하게 되고 나를 기쁘게 하고 좋게 해... 엄청 재미있게 사는데 무슨 송전탑이 들어온다는 거야"(이사라)라는 인식은 싸움의 시작이었다.

이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고향은 지킬래예"(안영수, 천중정 부부)라는 마음은 확산되었다. "세상일에 관심 끊고 무심히 살수는 없습니다"(구미현)는 깨우침이 동반되었다. "하루에 헬기가 60번 70번을 왔다 갔다"(강귀영)하여 마음과 몸을 불안하게 만드는 상황에서, "아버님예, 너무 힘들어 죽겠심니더"(희경), "돈한테는 안 되는가봐요. 힘듭니다"(이종숙) 등의 탄식이 절로 나오면서도 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보상금을 앞세운 각개격파에 "인간적인 도리, 의리"(성은희)로 대응하고, "포기할 수 없지예, 우리가 끝은 아닐 테니까"(박은숙)라고 되뇌면서 말이다. 그리고 지금 이들은 "싸웠기에 후회가 없다"(김사례)고 말한다.

이 책에 나오는 밀양 사람들의 투박하지만 진솔하고 소박한 육성을 들으면, '외부세력'의 선동 운운하는 상투적 비난이 가소롭게 느껴질 것이다. 이들의 오성(悟性)과 덕성과 근성이 달리 보일 것이다. 화려하고 편리하지만 냉정하고 비정한 도시의 욕망과 문화에 익숙한 자신, 그리고 권력과 돈의 논리에 빠져 자연과 사람을 무시하는 자신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2013년 6월, 필자가 이사로 있는 '박종철기념사업회'는 '밀양 할아버지·할머니들'(밀양 765kV 송전탑 반대대책위원회)을 '제9회 박종철인권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수상인사를 하면서 엉엉 우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자신들의 싸움을 밀양 바깥에서 이해하고 인정해주었다는 점이 고마우셨던 것이다.

그러나 2013년 12월 유한숙(당시 74세)씨가 "송전탑을 보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유서를 남긴 채 음독자살했다. 올해 4월에는 고 유한숙씨의 친구인 윤여림(75)씨가 항암치료중인 몸으로 국회 앞에서 송전탑 반대를 위한 1500배를 진행했다. '밀양'은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로 시작하는 '밀양 아리랑'의 배경은 밀양부사의 딸 아랑(阿娘)의 죽음이다. 젊은 관노가 아랑의 유모를 매수하여 아랑을 영남루로 유인하였고, 아랑이 관노의 유혹을 거부하자 관노는 아랑을 살해하였다.

필자는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고 있던 밀양 주민을 유혹한 자는 누구인가, 이에 동조한 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주민들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자는 누구인가 생각해본다. 그리하여 '밀양 아리랑'의 가사와 곡조가 새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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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월의봄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입니다.
#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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