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뿐인 안전정부, 예고된 참사였다

쪽지예산으로 지역구부터 챙긴 국회의원도 공범이다

등록 2014.05.07 15:32수정 2014.05.07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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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월 29일 세월호 참사에 대해 공식 반응을 내놨다. 사건 발생 13일 만에 국무회의 석상에서 간접 사과를 한 것이다. 아울러 재난대응 컨트롤타워 구축 방안과 관련해 국무총리실 산하로 가칭 '국가안전처'의 설치를 지시했다.

박 대통령은 "과거로부터 켜켜이 쌓여온 잘못된 적폐들을 바로잡지 못하고 이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너무도 한스럽다" "지금 국민들이 공무원들의 무책임과 의식에 분노하고 있다"라며 이번 사고 원인을 진단하고 "관피아나 철밥통이라는 부끄러운 용어, 관료사회의 적폐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까지 우리사회에서 완전히 추방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과연 박 대통령의 진단과 처방은 적확한가?

<국민행복시대>를 활짝 열겠다고 출범한 박근혜 정부. 이를 달성하기 위한 4대 전략 중 하나가 <국민안전>이고 재난재해 예방 및 관리 등 6개의 관련 국정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집권 1년 2개월을 넘어서서 지방선거라는 중간평가를 앞두고 있는 <안전정부>, 과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국정의 최우선으로 해왔는가?

일반적으로 우파 정권은 친 기업, 감세, 규제 개혁 등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 그러나 국가의 기본 임무인 안전 문제에 관한한 이념을 넘어선다. 911 테러 이후 부시는 17만 명에 달하는 거대 조직 국토안보부 창설에 서명하였고, 1979년 이래 미국 대통령 직속기구였던 연방재난관리청(FEMA) 등 22개 조직을 흡수시켰다. 2012년 대선에서 연방재난관리청 예산 40% 삭감을 주장했던 공화당 롬니 후보는 난처한 상황에 빠졌고 오바마는 무난하게 재선에 성공했다. 그만큼 <국민안전>은 매우 중요한 국가 의제이다.

오랫동안 보수정권이 지배해온 일본도 지속적인 감세 정책에도 재해예방비 지출만큼은 아끼지 않아왔다. 이명박 대통령직인수위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3~2007년까지 일본은 재해예방에 연평균 22조 6195억 원을 사용했다. 세출예산의 2.9% 규모이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는 재해예방비로 3조 5172억 원을 지출했다. 세출예산의 1.6% 수준이다.

지난 5월 1일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안전에 대한 국가 틀을 바꾸는데 예산을 우선 배정해야 하며, 그것도 사고 수습과 복구보다는 사전예방 중심으로 바꿀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2003~2007년 사이 일본은 76%를 예방비로, 24%를 피해복구비로 사용했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54%를 예방비로, 46%를 피해복구비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사후약방문에 혈세를 허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인 출신으로 절묘하게 금융위기 속에 임기를 시작한 이명박 전 대통령은 많은 조직을 통폐함으로써 작은 정부를 실천했다. 해양수산부 등 장관급 부처 세 자리를 없앴고, 국가비상대비 업무를 총괄·조정하는 총리실 산하 비상기획위원회를 행정안전부에 통합시켰다.

청와대도 국가안보 및 안전 콘트롤타워인 안보실과 NSC사무처를 폐지했고 경호실은 비서실에 흡수시켰다. 이 과정에서 1969년 출범한 비상기획위원회와 참여정부가 도입한 NSC사무처 등의 폐지는 국가적 재난상황에 대한 기민한 대처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많은 논란을 낳았으나 결국 대통령의 고집으로 관철되었다.

그러나 조직을 축소한 이명박 정부였지만 안전 예산만큼은 줄이지 않았다. 2010년 정부는 공공질서 및 안전 분야 - 재난관리 부문에 7523억 원을 지출한다. 2013년에는 본예산 기준으로 9809억 원, 추경을 거친 최종예산 기준으로는 1조 919억 원이다. 연평균 15.0%의 증가세이다. 같은 기간 세출 증가율은 연평균 6.3%이었으니 재난관리 예산 증가율이 얼마나 높았는지 피부로 확인할 수 있다.

재난관리 예산이 눈에 띄게 줄어든 안전정부

그런데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이름을 바꾸면서까지 <안전정부>를 표방한 박근혜정부가 처음으로 마련한 2014년 재난관리 예산은 9641억 8400만원으로 무려 1277억 4500만 원(13.2%)이나 대폭 축소됐다.

안전을 국정의 최우선으로 한다며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를 부활하고, 장관급 경호실을 분리시켰으며 4대악을 척결하겠다고 식품의약품안전처를 총리실로 이관한 박근혜 정부가 아니었던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겪은 문민정부가 후속 대책으로 제정한 재난관리법을 대대적으로 손질해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선 뵌 <안전정부>가 아니었던가?

2013~201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보면, 공공질서·안전 분야의 경우 연평균 3.9%의 지출 증가를 잡는데 이는 경찰인력 2만 명 증원 등 민생치안 역량강화에 기인한다. 그러나 2009년 이후 급증한 재해예방사업 투자는 축소·조정하겠다고 못을 박는다.

2003~2007년 사이 재해재난 예방투자는 평균 3766억 원이었는데 2008~2012년에는 평균 9647억 원으로 2.6배가 증가한다. 이 사이 피해액은 평균 1조 7767억 원에서 5345억 원으로, 복구비도 2조 8823억 원에서 1조 687억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역시 예방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종합적인 재난관리 시스템을 구축한 것은 참여정부였다. 2003년 초 대구 지하철사고를 계기로 드디어 2004년 소방방재청을 재난관리 전담기구로 출범시키고, 2005년 말 국가안전관리기본계획을 수립해 예산 활용에 관한 중기계획을 세운다. 소방방재청 개청 이후 사전 재해예방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기 시작했으며, 2009년 이후 특히 증액되어 연구개발비와 정보화예산이 크게 확대됐다.

그러던 것이 <안전정부>를 표방한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첫 번째 제출한 예산서에서 재해재난분야 항목이 대폭 삭감된 것이다.

해경 예산도 안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면 이번 세월호 참사의 주무 관청인 해양경찰청 예산은 어떤가?

2014년 해양경찰청은 1조 1136억 원으로 전년 대비 2.8%(300억 원) 증가율을 보인다. 그러나 1만 620명의 인건비 예산 5358억 원(7.6% 증가율)을 제외하면 실제 사업비는 오히려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한다.

주요사업비도 약 5400억 원인데, 대형함정 건조와 항공기 도입 등 해양 경비 강화를 위해 약 2250억 원, 장비유지비 1630억 원, 노후함정 대체건조비로 1340억 원 등으로 배정하고 나면 거의 남는 예산이 없다. 특히 4대 해경 전략 목표 중 하나가 <해양 안전>이었는데 이에 대한 투자비는 전체 예산의 단 1.6%인 181억 원에 불과했다.

그나마 구조장비 구입예산은 연안 해역 구조에 적합하다는 7억 원짜리 122구조대 보트 1대, 5억 원짜리 고속제트보트 3대, 3천만 원짜리 수상오토바이 30대 등이 전부였다. 진도VTS로 유명해진 연안해상관제센터 구축예산도 2012년 수준(76억 원)보다 못한 59억 원에 그쳤다.

그런데 해경은 연안 구조정 도입예산을 2011년 49억 원, 2012년 44억 원, 2013년 23억 원 등 해마다 축소해 오고 있다.

2013년 해경은 재정운용방향으로 <국민이 공감하는 안전한 바다 조성>으로 설정했다. 그동안의 성과를 알리기 위해 2005년 도입한 <해양사고 대응시간 목표제>가 도입 초기 77.9분이나 걸리던 대응시간이 2012년 6월 현재 12분으로 무려 60분 이상 단축했다고 자랑하고 있다.

또한 선박·비선박 해양사고 구조율 목표치는 2013년 96.7%에서 2014년 96.8%로 소폭 늘려 잡았다. 그러나 해경은 2014년 <해양사고 예방활동비>로 전년대비 무려 36.4% 삭감한 35억 원으로 편성했다.

금년부터 자연재난 전담기구로 지정된 소방방재청 예산도 마찬가지다. 재해위험지역정비 사업비가 3405억 원으로 편성, 제출되었는데 전년 대비 1188억 원, 25.9%가 삭감된 금액이다.

교통사고 사망자가 매년 5천 명 이상인 대한민국. OECD 국가 최고의 사망률을 기록 중인 오명을 씻기 위해 매년 관련예산 2천억 원 안팎을 특별회계로 편성하여 지출해왔다. 그러나 2014년에는 위험도로, 교통사고 잦은 곳 등 구조개선을 위한 안전행정부의 지역교통안전환경개선비도 753억 원으로 책정됐는데, 전년 대비 1567억 원, 무려 67.5% 삭감이었다.

안전 불감에는 여야가 따로 없었다

상임위 및 예결위 예비심사에서 그토록 안전을 호통 치던 야당도 결국은 제 밥그릇 찾기에는 한 통속이었다.

2004년 1월 1일, 해를 넘겨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2014년 최종예산은 당초 정부 안보다 1조 8805억 원 가량 감액했지만, 주로 의원들의 민원성 사업으로 이루어진 SOC예산이 오히려 4274억 원이나 늘어났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힘 있는 의원들을 중심으로 지역구 쪽지예산 밀어 넣기에 바빴고 야당마저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직결되는 예산이 깎이는데 외면하였다.

지역구 챙기기에는 여야도 지위 고하도 따로 없었다.

새누리당은 황우여 대표가 인천 신항 준설공사 등 61억 원을 증액했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청도경찰서 민원실 신축 등 51억 5천만 원을 추가로 확보했다. 예결위 간사인 김광림 의원은 경북도청 신축지원 등 안동지역에 총 335억 원을 늘렸다.

홍문종 사무총장은 의정부 하수관거 정비사업 등으로 39억 원을 타갔다. 보궐선거로 등원한 친박 실세 서청원 의원은 갈천~가수 간 국가지원 지방도 설계비 지원 등 7억 원, 김무성 의원도 동삼지구 연안 정비비로 6억 5천만 원을 챙겼다.

새정치민주연합도 예외가 아니었다. 전병헌 원내대표는 자신의 지역구인 노량진 수산시장 건립예산으로 156억 원을 얻어갔다. 박기춘 당시 사무총장도 남양주 법조타운 신축비로 30억 원을 더 늘렸다. 

세수 부족이 예상된다고 하여 감액한 예산에서 유독 SOC 분야만 평소보다 엄청 늘려놓은 이 후안무치는 다 6.4 지방선거를 의식한 탓이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 국회법에 따라 "국민의 복리 증진을 위해 노력하며,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겠다."고 국민 앞에 선서한 그들이 아니었던가?

여야 정치지도자들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도 그들의 당리당략과 선거 승리가 더 소중한 것인가? 기가 찰 노릇이다.
#세월호 #안전정부 #쪽지예산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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