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는 어디 있는 걸까요?

[서평] 조중희 작가의 포토에세이 <천사의 미소>

등록 2014.05.15 11:48수정 2014.05.15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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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곧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프랑스의 식물학자 드 뷰폰의 말입니다. 또 "말은 곧 사람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명심보감>의 글귀입니다. 글이든 말이든 그 사람의 인격과 됨됨이를 표현하는데 이보다 더 또렷한 것은 없습니다. 글도 말도 그 사람의 생각에서 나옵니다. 생각이 곧 그 사람을 말해주기에 이런 말들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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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희의 포토에세이 <천사의 미소> 표지 ⓒ 그리심

제가 지금 평하려는 <천사의 미소>는 글이 있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고 사진들로 빼곡합니다. 생각의 표현인 말이나 글에 더하여 사진까지 있으니 작가의 의도와 인격, 됨됨이가 고스란히 배어있기로는 그 여느 책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사진 한 장 한 장에 작가의 마음이 담겼습니다. 그 곁에 두런두런 써놓은 글귀들은 조 목사님의 다정도 병인 마음이 한 겹 두 겹 내려앉아 있습니다.


서평을 신문에 올리는데 이골이 난 사람이지만 이번 서평 제의를 받곤 어찌나 부대꼈는지 모릅니다. 글로 쓰는 서평이 아니라 말로 하는 서평이니 말입니다.

거기에 더해 그간 해오던 서평은 글로만 편집된 책들이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책이 아닌 사진 에세이집이니 말입니다. 사진에는 문외한이고 보니 어지간히 힘이 부친 게 아닙니다. 또 짧게 하려니 더욱 힘빼물어야 했습니다.

렌즈는 어떤 종류를 썼는지, 조리개의 수치는 얼마 정도였는지, 셔터 속도는 어떻게 했는지 모릅니다. 촬영모드가 수동이었는지, 조리개 우선이었는지, 셔터 우선이었는지, 화질이나 ISO 감도는 몇이었는지 정말 모릅니다. 그러니 이런 사람이 사진에 대하여 무슨 평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적어도 평이란 잘됨과 잘못됨을 논해야 하는데. 그래서 잘잘못을 논하는 서평은 아예 접기로 하겠습니다.

누가 그랬더라고요. "사진은 권력이다"라고 말이에요. 그런데 목사님의 사진들에서는 권력의 'ㄱ'자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차라리 옹골지고 고단한 눈빛만 하나 가득이었습니다. 그 눈빛을 보는 작가는 그들이 천사들이라나요. 그런데 유감인 것은 사진 속 인물들 그 누구도 천사는 아니었습니다. 꾸밈없고 노골적이고 태고의 때 묻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천 개의 미소 머금은 눈들로 그들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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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희 목사, 책 안에 들어 있는 사진작가 조중희 목사입니다. ⓒ 김학현


'도둑놈 눈에는 도둑놈만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천사의 눈에는 천사만 보이는 거죠. 사진 속에 천사가 있는 게 아니라 사진을 담은 작가의 마음이 천사 천 4명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책의 사진 속에서 천사를 찾다가는 낭패를 봅니다. 천사는 사진 밖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었던 겁니다.


말라타파이 시장 한 켠에서 만난 찌든 구김살의 할머니가 오드리 헵번이랍니다. 우쿨렐레로 '제비'를 연주하던 할머니의 미소 속에서는 젊은 시절 그 노래를 애창하던 친구를 떠올리며 마냥 향수의 오르막길을 내달립니다. 글쟁이도 사진쟁이도 아니라면서 줌렌즈 포커스 단단히 맞춘 사진집을 들이밀면서 행복에 겨운 글들을 마구 쏟아댑니다. 프로가 아니라 목사여서 행복하답니다.

주저리주저리 미소 품은 사진 한 장, 사랑 머금은 에세이 한 쪽, 그렇게 작가는 자신이 천사가 되어 있다는 걸 모르는 멍청이입니다. 왜 하필이면 필리피노인가 물은 적이 있습니다. 대답은 초상권 때문이라나요. 그들은 요구하지 않는 초상권이 우리나라 족속들은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진 속 인물들의 미소가 더욱 싱그러운가 봅니다. 돈 없어도 웃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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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프니 위에서도 마냥 즐거워 미소짓는 필리피노들입니다. ⓒ 김학현


필리핀을 60여회 방문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십시오. 그것도 선교 오지들을 말입니다. 선교의 열병을 앓지 않고는 불가능한 사진들을 조 목사님은 낚아 올린 것입니다. 그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사진은 그냥 사진이 아니라 선교열정의 아우라였습니다. 그 곁에 첨언한 글귀들은 그냥 사랑의 언어가 아니라 사람을 천사로 만드는 기적의 마법이었습니다.

제게는 그저 천진스레 웃는 눈빛들뿐이었는데 작가 앞에선 행복한 어부도 되고, 모내기하는 아이는 생명을 심는 아이가 되고, 쌍꺼풀과 눈동자에 마음을 빼앗기는 아이도 됩니다. 심지어는 심부름으로 고추를 사가는 아이를 보고 막걸리 심부름하던 어린 시절 자신을 오버랩 시키기도 합니다. 어떤 아이의 미소는 황금미소이기도 합니다. 작가에겐 미소도 같은 급이 아니었습니다.

작가는 만원 지프니 위에 가득한 아이들에게서도 미소만 찍었습니다. 작가의 사랑 고픈 마음은 그것밖에 안 보였던 모양입니다. 립스틱 짙게 바른 가슴 넉넉한 청년을 게이라고 흉측하게 대하지 않고 셔터 속에서 본성으로 다시 태어나게 만드는 현란한 솜씨는 그저 프로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삶이 그대로 온몸에 톱밥으로 이겨진 목수를 볼 때도 예수님의 마음으로 콜라 한 잔을 내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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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일까요? 여자일까요? 아니면 중성? 앞에 보이는 모습은 분명히 여자인데... ⓒ 김학현


부럽습니다. 미친 당신이. '고병호도, 하재홍도, 조중희도 다 미쳤다'고 말하는 당신이. 이게 보통 교회에서, 보통 목사에게서, 보통 성도에게서 나올 수 없는 사진집이요, 열정이기에 미친 당신이 부럽습니다. 캐논 EOS-1, 그리고 빼곡히 스탬프가 찍힌 여권 한 장, 그걸 마치는 글에 내건 사진쟁이 당신이. 선교지엘 60번이나 드나든 선교쟁이 당신이. 부럽습니다.

부럽습니다. 카메라 하나면 모든 피조물을 천사로 만드는 당신이. 모든 사람의 눈빛을 천사의 미소로 만드는 당신이. 바울 곁의 사람들이 훌륭한 사도 바울을 만들었듯이 책 말미에 후원자들의 이름을 수도 없이 기록할 수 있는 사진쟁이 당신이. 자존심을 세워준 세종중앙교회가 목회지인 당신이. '이제 마음을 내려놓을 시간이 되었다'며 알 수 없는 선문답을 하는 당신이, 참 부럽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사진작가인 조중희 목사의 포토에세이 <천사의 미소> 출판기념회 때 낭독하기 위해 작성된 글입니다. 당당뉴스, 뉴스앤조이에도 송고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천사의 미소

조중희 지음,
그리심어소시에이츠, 2014


#천사의 미소 #포토에세이 #조중희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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