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높은 미술관에서 보는 '가장 낮은 이야기'

사회참여 지향 예술인 그룹 '아트(Art)제안'을 소개합니다

등록 2014.05.27 11:44수정 2014.05.27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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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제안 북정미술관에서 창립전이 열리고 있다.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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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제안 가장 높은 미술관, 가장 낮은 이야기 ⓒ 김준희


성북구 꼭대기 북정마을에는 '북정미술관'이 있다. 일찍이 시인 김광섭이 <성북동 비둘기>에서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라고 말했던 그 성북동에 있는 미술관이다. 예전에 일반 가정집이었던 건물을 조금 개조해서 미술관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일반적인 갤러리라고 하면 떠오르는 '화이트 큐브(White Cube)'와는 거리가 멀다.

하얀 벽면에 하얀 조명으로 장식된 갤러리가 아니라, 군데군데 금이 가고 패여있는 시멘트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이다. 이 동네는 아직도 재개발이 덜 된 30여 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미술관 옆의 작은 상점에서는 대낮인데도 평상에 앉아서 술잔을 기울이며 언성을 높이는 동네 주민들이 있다.


"이 미술관은 닫아도 닫은게 아니고 잠가도 잠근게 아니에요. 여기 동네 주민분들이 이 미술관을 지켜주세요. 밤에 주무실때 되면 닫고 들어가시고 아침에 일어나면 열어두시고. 이런 곳에서 전시를 하니까 동네 주민분들하고 소통이 잘 되는 것 같아요."

북정미술관에서 창립전을 진행하고 있는 예술인 그룹 '아트(ART)제안' 하민수(53) 대표의 말이다. '아트제안'은 현 시대의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고 사회참여적인 예술을 실현하려는 예술인들의 그룹이다. 하민수 대표를 포함해서 박설아, 오진령, 최준경 등 총 11명의 작가들로 구성되었고 연령대는 3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하다.

사회참여를 위한 '아트제안'의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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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제안 하민수 대표 ⓒ 김준희


"2013년 6월에 작가들이 전부 모여서 첫 모임을 가졌어요. 제가 이 중에서 가장 연장자라서 작품활동 열심히하는 후배작가들을 만나는 것으로 시작했고요. 후배작가들 주변에 생각을 같이 할 수 있는 작가들을 한 명씩 섭외하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이보다 더 인원이 많았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저희가 사회참여적인 예술을 지향하니까 '자신의 성격과 맞지않다'는 이유로 그만둔 작가들도 있어요."

하 대표는 이 그룹을 만들기 위해서 오래 전부터 고민해왔다. 미술하는 작가들의 성향이 기본적으로 개인적이고, 사회와의 적극적인 소통이 원만하지 못하다고 생각해 왔던 것. 그렇다면 동네 주민들과의 소통이 원활한 북정미술관을 선택한 것도 이해가 된다. 현대사회의 문제 중 하나는 바로 '소통의 부재' 아니었던가.


"과거에 민주화운동이 한참일 때는 '민중미술'을 지향했던 단체가 있었죠. 그 분들은 실질적으로 그 문제에 뛰어들어서 함께 투쟁을 했던 분들이고요. 지금은 그런 시대는 아니죠. 반면에 지금은 자본주의 패러다임이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을 포함한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그런데도 작가들은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병폐에 등을 돌리고 있다는 점이 안타까웠던 거예요."

예술인들의 사회참여, 이제 예술인들이 바깥으로 나온 것이다. 그룹의 이름을 '아트제안'이라고 이름 붙인 것도 이와 연관되어 있다. 그 의미 중 하나는 예술의 사회적기능을 회복하자고 제안한 것. 아트제안의 창립전 주제는 '가장 높은 미술관, 가장 낮은 이야기'이다.


"가장 높은 미술관의 의미는, 이 미술관이 지상에서 높은 곳에 위치해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동시에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들, 찾아야 할 것들을 가장 높은 것이라고 본거예요. 가장 낮은 이야기의 의미는, 우리가 자본의 논리에 밀려서 무시하고 뒤로 미루어 놓았던 것들, 인간성이나 인권 또는 생명 등이 사실 제일 중요한 거였다는 거잖아요. 그 낮은 이야기를 끌어내자는 겁니다."

높은 곳에서 보여주는 낮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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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제안 박설아 <북정미술관 최후의 만찬>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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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제안 하민수 <거울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았는가?> ⓒ 김준희


북정미술관은 작은 방 여러 개로 구성되어 있고 그 대문은 천경환 건축사의 작품이다. 미술관 안에는 그림과 사진, 설치미술 등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미술관에서 만난 박설아(30) 작가는 <최후의 만찬>이라는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박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재개발을 하는 과정이나 결과들에 대해서 좀 생각해봐야 할 것들이 많다고 보았어요. 무조건적인 반대도 찬성도 아니지만, 좀 더 인간적인 과정이 있어야 하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상처를 덜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작품 안에 기존 <최후의 만찬>에 있던 12제자 대신에 4대 성인을 포함해서 철학가 등을 넣었어요. 좀더 고민해보자, 생각해보자, 라는 취지로 그리게 된 작품이에요."

하 대표의 작품은 '거울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았는가?'를 주제로 하고 있다. 가운데에 거울을 놓고 양 옆으로 각각 세 명의 사람들이 거울을 보며 그에 반응하고 있다. 거울을 보면서 일종의 반성을 하고 자신을 돌아보자는 의미다. 이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도 마찬가지다. 잘못된 것이 있다면 싫더라도 반성을 해야 건강한 세상이 만들어진다는 것. 거울없는 세상은 엉망진창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번 전시회는 6월 30일까지 열린다. 그 이후에는 다음 전시회를 위해서 정기적으로 멤버들끼리 모여서 자본주의에 대한 공부, 인문학에 대한 공부가 진행된다. 하 대표는 예술의 사회적기능에 대해서 말한다.

"예술은 일종의 언어예요, 기호죠. 이것은 시각화된 언어인 거예요. 말을 하는 건데 모여서 크게 말하는 거죠.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 일종의 시위가 될 수 있는 거죠. 그동안 미학적인 얘기만 했다면, 이제는 밖으로 나와서 세상의 얘기를 하자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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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제안 오진령 <매달린 사람들, 그 거꾸로 된 세상으로 부터>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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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제안 최준경 도시가 아름다운건 보이지 않는 눈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 김준희


덧붙이는 글 북정미술관 : 서울시 성북구 성북로 23길 136-1, 북정마을
대중교통 이용시 :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출구 앞에서 마을버스 3번 이용, 북정노인정 하차.
#아트제안 #북정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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