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한 풀어주세요" 거리로 나온 세월호 유족들

[현장] 서울 각지에서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 위한 대국민 서명 촉구 나서

등록 2014.05.29 21:39수정 2014.05.30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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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을 도와주세요 서울역 입구에서 한 유가족이 진상규명과 특별법제정을 위한 대국민 서명을 시민들에게 촉구하고 있다 ⓒ 조혜지


세월호 참사 피해 유가족들이 직접 거리로 나섰다. 서울역에서부터 신촌, 여의도, 영등포까지.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곳을 먼저 떠올렸다. 적게는 10명에서 많게는 20명씩 한 조가 되어 국회를 떠났다. 서명운동은 오후 3시부터 5시 30분까지 쉼 없이 진행됐다.

오후 4시의 서울역 우측 입구. "우리 아이들 좀 도와주세요!" 목소리를 가다듬을 새도 없이 연거푸 외친다. 지하철과 연결된 입구라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아이들을 구조하라' 여덟 글자의 어깨띠가 가늘게 떨린다. 엄마는 떨고 있었다. 하지만 '왜'를 묻는 기자의 질문의 답에는 떨림이 없었다.

"집에서 애들 밥 해 먹이고 등교 보냈던 평범한 주부였다. 낯선 사람들에게 말 거는 게 떨리고 두려운 게 당연하다. 그래도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면 용기를 안 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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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규명! 서울역 입구, 유족들이 시민들의 진상규명과 특별법제정에 대한 서명을 부탁하고 있다 ⓒ 조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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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아이들의 부모입니다 길을 지나던 시민들 대부분 거리낌 없이 서명에 동참했다 ⓒ 조혜지


'재난과 안전에 너와 내가 없습니다.'
'이 나라에서 살고 싶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한을 제발….'

흰 하드보드지 위에 급히 써내려간 글들이 시민들의 발목을 잡았다. 아버지들은 계속해서 피켓에 내용을 추가했다. '세월호 유가족입니다. 서명에 동참해주세요' 문장 아래 묵직한 아빠 글씨체로 '진상규명' 네 글자를 진하게 보탰다.

같은 교복을 입은 여고생 둘이 쭈뼛쭈뼛 다가와 수줍게 볼펜을 쥐었다. "고마워요" 엄마의 목소리에 물기가 배었다.

"국회에 있어봤자 따로 진전도 없고. 마냥 앉아만 있을 수 없어서 나왔어요."


국회 사무실 한편에서 여야 국회의원들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자니 답답했다고 했다.

"진짜 유가족 맞아?"


넥타이 차림의 회사원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유가족 뒤로 몸을 피하며 속닥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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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가 우선이다 유족들이 자체 제작한 어깨띠 ⓒ 조혜지


오후 4시 30분. 볕이 그대로 내리쬐는 신촌 현대백화점 정문에선 양산을 쓴 젊은 여성들이 허리를 굽혀 서명에 동참하고 있었다. 같은 반 학부모 세 사람과 자원봉사로 참여한 10명이 유가족을 도왔다. '검은티 행동' 회원이라는 회사원 김나영(29, 여)씨는 시민들에게 전단을 나눠주며 "페이스북 공지를 보고 급히 동료 한 사람과 함께 같이 왔다. 곧 다시 들어가봐야 한다"고 말했다.

어김없이 유족을 의심하는 불편한 장면이 연출됐다.

"너희가 무슨 유가족이야! 다 돈 받고 하는 거지. 자식이 죽었는데 저렇게 다 돌아다녀?"

길을 지나가던 한 70대 노인이 유가족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유가족들은 익숙한 듯 아무 말 없이 계속 서명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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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참해주세요! 신촌 현대백화점 정문 도로 중앙에서 한 유족이 피켓을 들고 시민들의 서명 참여를 촉구하고 있다 ⓒ 송규호


오후 5시 지하철 여의도역 5번출구 앞.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바쁘게 지나가는 시민들로 붐볐다. 하지만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을 무시하고 지나치는 시민들은 드물었다. 한 시민이 굳은 표정으로 테이블 가까이 다가와 "진짜 유족이 맞냐"고 물었다. 한 유가족이 그렇다고 대답하니 양손을 잡고 "힘내세요" 했다. 어떤 시민은 인근 편의점에서 캔커피를 여러 개 사다가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서명을 하는 시민과 유족 간에 오가는 말은 많지 않았다.

유족들의 서명을 돕고 있는 김은진씨는 "이제 서명의 주체는 시민단체가 아니라 가족들이다"라며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유족들에 비할 것이 못 된다"고 말했다. 영등포역에서 서명을 돕고 있는 심상영씨는 기자와 한 전화 통화에서 "유가족 20분들과 함께하고 있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많은 시민들이 참여해주고 계신다"라며 "유가족 분들은 다시 국회로 돌아가신다고 들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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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가 우선이다' 유족들을 하나로 이은 말 서울역 입구에서 진상규명과 특별법제정 촉구 서명을 부탁하는 유가족들 ⓒ 조혜지


"띠링."

오후 5시 28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여야 합의가 이뤄졌다는 속보가 서명 테이블 위의 휴대폰을 울렸다. 유족들은 소식을 전해 듣고 국회로 갈 채비를 했다. 서울역에서 함께 서명을 도운 백가윤 참여연대 간사는 "국민대책회의는 어떤 결과든 유가족 분들의 판단에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유가족들이 차례로 국회행 버스에 올랐다. 지친 얼굴이었지만 눈빛만큼은 또렷했다. 버스에 오르던 한 유가족은 "국회의원들로부터 합의 내용에 대해 설명을 듣고 본회의까지 지켜볼 예정"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세월호 #천만인서명 #진상규명 #특별법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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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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