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귀 좀 기울여 주시게!"

[중국어에 문화 링크 걸기 77] 請

등록 2014.06.10 14:45수정 2014.06.10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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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請 청할 청(請)은 젊은(靑) 사람이 윗사람을 알현하고 자기의 뜻을 말(言)한다는 것이며, 자신의 뜻을 말하기 때문에 ‘청하다’는 의미도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청할 청(請)은 젊은(靑) 사람이 윗사람을 알현하고 자기의 뜻을 말(言)한다는 것이며, 자신의 뜻을 말하기 때문에 ‘청하다’는 의미도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 漢典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가난한 선비 출신 인상여(藺相如)는 '완벽(完璧)'이란 고사로 유명하다. 인상여가 진(秦)나라와의 담판에서 화씨벽(和氏璧)을 무사히 지켜내자 조나라 왕은 그의 지혜와 용기에 감동해 인상여에게 높은 벼슬을 주었다. 그러나 조나라 노장 염파(廉頗)는 그것이 늘 못마땅하여 인상여에 불만이 많았고, 인상여는 그런 염장군을 보면 자리를 피하곤 했다.

어느 날 인상여의 하인이 왜 당당히 맞서지 않고 자리를 피하냐고 묻자 인상여는 "진나라가 조나라를 침범하지 못하는 것은 나와 염파장군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둘이서 싸운다면 진나라만 좋아할 일이 아니겠느냐? 내가 늘 염장군을 피하는 것은 국가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고, 개인적인 감정은 뒤로 미뤄놓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염파는 그동안 자신의 옹졸한 태도가 너무 부끄러워 스스로 윗도리를 벗고 가시를 짊어지고 인상여를 찾아가 죄를 빌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유래한 성어가 바로 '부형청죄(負荊請罪)'이다.

청할 청(請, qǐng)은 의미부 말씀 언(言)과 소리부 푸를 청(靑)으로 이뤄진 형성자이다. 말씀 언(言)은 말을 뜻하는 추상적 부호와 내민 혀, 그리고 입(口)이 합쳐진 모양이고, 푸를 청(靑)은 풀(屮)이 땅(一)을 뚫고 돋아난 형태인 생(生)과 붉은 빛을 띠는 광석의 총칭인 단(丹)의 결합으로 푸른색이 나는 광석(丶)을 의미한다. 푸르다는 것은 곧 어리고 젊다는 의미인데, 바로 청(請)의 뜻이 원래 젊은 사람이 윗사람을 알현하고 자기의 뜻을 말한다는 것이며, 자신의 뜻을 말하기 때문에 '청하다'는 의미도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중국사의 유일한 여황제인 측천무후 시절, 주흥(周興)이 반란을 모의한다는 첩보를 입수한 측천무후는 내준신(來俊臣)에게 사건을 맡겼다. 내준신은 주흥을 식사에 초대해(請客) 죄를 고백하지 않는 죄수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고 하자, 주흥은 사방에서 불을 지핀 뜨거운 항아리에 죄수를 넣고 심문하면 된다고 자신이 고안해낸 방법을 알려주었다.

이에 내준신은 주흥에게 반란죄를 물어 "그대가 항아리 속으로 들어가시오(請君入甕)"라고 하여 주흥의 자백을 받아냈다고 한다. 주흥은 자기가 놓은 덫에 스스로 걸린, 자업자득(自業自得, 중국어에서는 自作自受라고 한다)의 신세가 된 셈이다.

이백(李白)은 <장진주(將進酒)>에서 "그대에게 한 곡조 노래를 불러주려네/ 그대 나를 위해 귀를 좀 기울여주시게나(與君歌一曲/請君爲我側耳聽)"라고 노래한다. 술을 권하는 풍류의 노래이면서도 정중하고 멋들어지게 상대방의 경청을 구하는 품의가 느껴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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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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