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견보다 못한 시내버스... 그리고 침묵한 우리

[주장] 안내견 승차거부한 버스 운전기사... 승객들은 왜 가만히 있었나

등록 2014.06.20 09:49수정 2014.06.20 10:19
3
원고료로 응원
15년 전,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당시 조교로 근무했던 나는 같은 과 학부생이 큰 개와 함께 강의실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았다. 수업시간 내내 주인의 발치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개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개가 착용한 조끼에 쓰여 있던 '안내견' 문구를 보고 처음으로 시각장애인 안내견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 후 2009년, MBC 스페셜 <노견만세>라는 TV 프로그램을 보았다. 은퇴견 '대부'를 통해 안내견들이 보통 개들과 달리 맘대로 뛰거나 짖지도 못하고 평생 어떤 희생과 봉사를 하는지 알고 나서 숙연함을 느꼈다.


안내견의 존재는 우리 사회에 꽤 알려진 편이다. 그렇다면 그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얼마나 성숙했을까? 며칠 전 안내견과 함께 시내버스 승차거부를 당한 어느 시각장애인에 관한 기사를 읽고 '후진국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관련 기사 : "시각장애인, 안내견과 버스 올랐는데 "어디서 개를 데리고 타... 당장 내려!"").

시각장애인 A씨는 동행한 개가 안내견임을 알렸지만, 버스 기사는 다 필요 없으니 당장 내리라며 승차를 거부했다고 한다. 그 기사는 A씨에게 '승차를 허락하는 시혜'를 베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을 뿐, 자신의 행동이 A씨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사실은 몰랐던 것 같다. 

사정을 모르고 거부한 것도 아니다. A씨가 정당한 사유 없이 안내견의 승차를 거부할 수 없음을 설명했는데도 기사가 벌금을 낼 테니 당장 내리라고 말한 것, 다른 승객들의 동의를 받고서야 겨우 승차한 A씨에게 개를 데리고 타려면 묶어서 박스에 담아서 타라고 소리를 지른 행동은 인간적인 모멸감마저 느끼게 한다. 안내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멸시 때문이다.

시각 장애인의 눈이 되어주는 안내견의 승차를 거부하는 것은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에게 휠체어 없이 버스에 타라고 요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안내견을 버스에 태우지 않겠다는 것은 시각 장애인은 버스를 타지 말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몸이 불편한 사람에 대한 배려는 고사하고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망각한 행동이다.

시내버스는 공공 교통수단이다. 그러나 시각 장애인의 승차 권리를 침해하는 기사의 행동에는 '공공성'이 명백히 결여되어 있다.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안내견보다도 못한 시내버스가 아닌가?


하지만 이런 사건은 해당 기사와 업체만 비난하고 끝날 일이 아니다. 작가이자 인권운동가인 엘리 위젤은 1986년 노벨 평화상 수상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편을 들어주십시오. 중립은 압제자를 돕지 절대로 희생자를 돕지 않습니다. 침묵은 괴롭히는 자에게 용기를 주지 결코 괴롭힘을 당하는 자에게 용기를 주지 않습니다."


약자에 대한 폭력 앞에서 '도덕적 중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중립을 고수하는 것은 강자의 편을 드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행동하는 양심"이 되라고 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했고, "방관하는 것도 악의 편"이라고 했다.

A씨가 지적했듯이 안내견 승차 거부에 대해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관심은 뜨겁지만 이런 문제는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A씨는 '사회적 무관심'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시각 장애인이 모욕을 당하는 동안 그 많은 승객 가운데 함께 항의해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약자에 대한 폭력을 보고도 침묵하는 우리들은 소위 '돈'이 되는 일이 아니면 굳이 나서지 않는 자본주의 사회의 비겁한 군상이 아닐까?

승차거부에 대한 시각장애인의 저항을 그들만의 외로운 싸움으로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편을 들어주고 항의해야 한다. 심정적으로는 아무리 약자의 편일지라도 침묵을 지키는 한 강자의 편을 드는 것과 다름없다.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들의 몫이다.
#시각장애인 #안내견 #승차거부 #약자 #차별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2. 2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3. 3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4. 4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5. 5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