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가 멈추고 난 뒤 더 유명해진 간이역

폐역에서 여행자들의 쉼터로 살아난 남양주 '능내역'

등록 2014.07.02 15:22수정 2014.07.02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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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는 오지 않지만 또 다른 추억이 되고 있는 간이역, 능내역. ⓒ 김종성


중앙선은 경춘선과 조금 다른 노선이었다. 대성리, 청평, 강촌을 거쳐 춘천에 도착하는 기차는 대개 우르르 떠들썩했다. 하지만 양평, 원주를 거쳐 멀리 태백, 제천, 해운대까지 가는 중앙선 기차는 언제나 호젓했다. 열차에 올라 창가에 앉으면 들떴던 기분도 가라앉았다. 딱히 목적도 없이 편도로 끊은 기차표엔 간현이나 희방사, 석항 같은 낯선 지명이 찍혀 있곤 했다. 덜커덩, 열차의 디젤 내연기관이 몸을 두드리는 리듬도 좋았다.

청량리에서 출발했던 중앙선 열차는 도농역까지 도시 변두리 풍광 속을 달리다 덕소역에서 탁트인 한강의 모습을 곁에 두기 시작했다. 열차는 팔당역을 지나면서 비로소 콘크리트 세상의 경계를 벗어났다.


전철노선이 된 지금도 그렇지만 중앙선 기차여행의 출발점은 왠지 팔당역인 듯한 인상이 짙게 남았다. 2008년 12월 팔당역부터 국수역까지, 다음 해엔 용문역까지 복선전철이 놓이면서 팔당-능내-양수역을 잇는 강변 철로가 폐선 즉, 버려진 철로가 돼버렸다. 팔당역에서 능내역까지 약 5㎞, 또 능내역부터 양수역까지 약 5.5㎞. 두물머리의 아름다운 물빛을 굽어보며 달리던 예쁜 철길이었다.

버려진 폐철로의 변신, 남한강 자전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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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 자전거 도로는 폐선이 된 중앙선 철길을 살려 만든 이채로운 길로 보행로도 같이 나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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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 열차가 달려 지나갔던 터널을 이제 보행자와 자전거 라이더들이 달려간다. ⓒ 김종성


국내 최초로 폐철로를 이용한 자전거길을 만든 것은 발상의 전환이었다. 그냥 놔두면 흉물이 될 상황에서 자전거도로라는 아이디어를 찾아낸 것이다.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전거도로 옆에 보행로도 같이 냈다. 마침 일제강점기 때 건설된 옛 중앙선은 강변을 따라 꼬불꼬불하게 놓였다. 기찻길 자체가 강변을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명당이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던 폐철로는 사람들로 다시 붐비기 시작했다. 열차를 타고 빠르게 스쳐가던 풍경 속을 이제는 타박타박 걸으며 혹은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페달을 밟으며 간다. 팔당역에서 내리면 MTB, 사이클, 미니벨로 등 다양한 디자인의 자전거 대여소가 많이 있어 빌려타기 좋다(팔당역∼능내역의 거리는 약 5Km). 중앙선 전철은 다른 전철노선과 달리 평일에도 자전거를 태울 수 있으니 본인의 애마 자전거와 대동해도 좋겠다.

능내역을 제대로 즐기려면 역시 자전거를 타고 가야 한다. 남한강 자전거길은 기차가 달리던 중앙선을 복선으로 만들면서 쓸모없게 된 옛 기찻길을 그대로 활용해 만든 덕분에 자연을 덜 해치면서 만든 길이라 보기도 좋고, 기차가 지나가던 강변과 터널, 시골마을 등 다양한 풍경을 고스란히 눈과 마음속에 담을 수 있어서 좋다.


팔당댐이 들어선 강변의 쓸쓸하고도 고요한 정취를 보여주던 자전거길에 갑자기 산허리를 뚫은 시커먼 터널이 나타나 나도 모르게 숨이 턱 막혔다. 길이 약 250m의 봉안터널이다. 예전에 자전거 여행 중에 나타난 터널을 지나가다가 겪은 고통이 트라우마처럼 떠올랐다. 다행히 터널 속에서 귀청을 찢을 듯 울려 퍼지던 자동차들의 굉음소리 대신 따뜻하고 은은한 조명 불빛이 맞아준다.

늘 켜져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이 지나가면 거기 반응해 조명이 조절된다. 터널을 나오면 수고했다는 듯 굽이쳐 흐르는 남한강 물줄기와 주위를 둘러싼 유려한 산세가 한 폭의 그림처럼 여행자를 맞아준다.


터널에서 나와 얼마쯤 더 달려가면 많은 시민들이 나들이 삼아 들리는 추억의 강변 카페 '봉주르'가 있다. 주말이면 입구 부근 옛 6번 국도에 차량 체증을 일으킬 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그 체증에 답답한 나머지 옆자리에 탔던 여친에게 괜히 짜증을 부렸던 미안한 기억이 몇 번 있는데, 자전거를 타고 강변을 달려서 그곳에 닿는 기분이 묘했다.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되살아난 폐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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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하고 소박했던 옛 간이역의 정취가 남아있어 좋은 능내역.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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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운 사진들로 더욱 운치를 자아내는 능내역은 작은 갤러리가 되었다. ⓒ 김종성


남한강 자전거길과 함께 새로이 탄생한 능내역은 자전거 여행자들의 좋은 휴식처가 돼주고 있다. 남한강 자전거길이 자전거 이용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바로 능내역 때문이기도 하다. 간이역의 색깔을 그대로 남겨두어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공간으로 변신하였다.

그런 정취를 좇아 주말이 되면 많은 이들이 능내역으로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룬다. 단선철도 시절의 옛 중앙선의 일일 수송량보다 더 많은 인파가 주말이면 능내역 인근으로 몰려와 남한강변을 따라 트레킹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있다.

능내역(陵內驛)은 남한강 자전거길 사이에 위치한 철도역으로, 중앙선 열차의 신호장이었다. 신호장(信號場)이란 단선 철도 시절, 효율적인 열차운행을 역과 역 사이에 교행이나 대피를 할 수 있는 선로와 신호장치를 설치한 장소를 말한다.

1956년 남양주 중앙선의 간이역으로 시작하여 2008년 폐역되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추억과 애환, 그리움을 기차에 실었던 공간이다. 2008년 이후로 기차가 다니지 않게 되었지만, 기차가 멈추고 오히려 더 이름난 역이 됐다.

현재 능내역사는 리모델링되어 관광용 및 갤러리, 쉼터로 사용 중이다. 역 앞을 지나는 철로는 폐쇄되었다가 보행로 및 자전거도로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길이 되었다. 흉가처럼 방치되거나, 문화재로 지정만 해놓고 굳게 잠가 둔 다른 폐역과 달리 능내역엔 늘 사람들 소리가 왁자하다.

더불어 역내에 있는 갤러리는 옛 철로구간인 능내역의 역사와 추억을 담은 공간을 조성해 보는 이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고 있다. 제1전시관인 추억관에는 폐역되기 전 사용했던 열차시간표와 운임표를 다시 설치하는 등 능내역 대합실의 모습을 최대한 살려 능내역의 지난 세월을 그대로 재현했다.

제2전시관인 행복관에는 능내역 관련 기록과 사진, 영상이 전시되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는데 특히 40~50년 전의 주민들의 사진으로 재구성된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통학생, 동네 주민, 촌로 등 지난 세월 능내역을 배경으로 찍은 수많은 사람의 사진이 걸려 있는 '추억의 사진 전시장'인 셈이다. 사진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금세 훈훈해진다. 역 담벼락 앞에 전시해 놓은 빛바랜 사진과 나무 의자들도 잔잔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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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내역 앞에 퇴역한 기차 한량을 이채로운 카페로 만들어 놓았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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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원 보호지역의 청정마을 능내리는 다산 정약용의 고향이었던 마현마을이있다. ⓒ 김종성


청정지역에서 '다산'의 발자취를 돌이켜볼 수도

수십 년간 중앙선 기차길을 달렸던 실제의 기차가 이채롭게도 능내역 자전거길 옆에 놓여져 있다. 전시용으로 그냥 세워져 있는 게 아니라 카페로 변신해 여행자들의 좋은 쉼터가 되었다. 기차 외벽에는 자전거 타는 풍경이 예쁘게 그려져 있다.

기차 한 량이 덩그러니 서있을 뿐인데 자전거 도로가 낭만적인 분위기로 바뀐다. 여행하고픈 마음을 부르는 것이어서 그런지 기차와 자전거가 왠지 잘 어울린다. 곳곳이 녹슬고 칠이 벗겨진 열차의 모습이 산전수전 다 겪으며 복무를 하다가 퇴역한 군인 같다.

시큼한 김치가 들어간 잔치국수, 감자전 등을 파는 역 앞의 작고 수수한 식당들도 사람들이 붐비고 활기가 느껴져 보기가 좋다. 매운탕, 토종닭과 오리를 주 메뉴로 영업해온 오래 된 동네 식당들이었는데 보행로, 자전거길과 맞닿으면서 여행자들을 위한 가벼운 간식거리 메뉴로 바꾸었단다.

능내역 앞마을 능내리에 있는 다산유적지도 들러볼 만하다. 능내역에서 남한강 쪽으로 10분 가량 자전거 페달을 밞으면 다산 정약용 선생이 태어난 마을에 도착한다.

다산은 능내역에서 1km 떨어진 마현리(馬峴里)에서 태어났고, 병조참의 등 요직을 거쳐 승승장구 하다가 정조 임금이 승하하자 전남 강진에 귀양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다가 노년에 귀향해 마현 마을(지금의 능내리)에서 눈을 감았다. 다산은 조선을 대표하는 실학자로 천주교 박해 사건인 신유사화에 연루돼 전남 강진 다산초당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500여 권의 책을 저술한 인물이다.

다산 생가가 있던 다산유적지에는 복원한 생가 '여유당'과 소나무가 병풍처럼 아늑하게 감싸고 있는 부부 합장묘를 비롯해 기념관, 사당, 실학박물관 등이 들어서 있다. 다산유적지 부근은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는 청정지역으로,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선현(先賢)의 발자취를 돌이켜볼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자전거여행 #능내역 #중앙선 #남한강 자전거도로 #마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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